미국 말과 미국 문화, 그 미묘한 차이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국어 성적이 좋았습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국민학교 5학년 때 저희 담임 선생님을 너무나 좋아했는데 그 (여) 선생님이 국어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국어 시간이 제일 좋았고, 성적도 잘 나왔고, 그래서 선생님한테 칭찬받는 것이 좋았고, 그 선순환이 쌓였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국어 성적만은 공부를 하던 하지 않던 항상 좋은 성적이 나오는 효자 과목이었습니다.
영어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언제부터 배웠는지도 잘 모르겠네요, 중학교 때였던 것 같긴 한데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을 보니 특별히 어떤 계기가 있다거나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대학교 갈 때 학력고사 성적도 잘 생각이 안나는 것을 보니 뭐 잘하지도 못 하지도 않았지 싶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을 가서 1학년 때 펑펑 놀고, 군대 갔다 와서 복학을 했더니 비디오방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자취하던 시절이라 딱히 시간 보낼 곳도 없고, 연예도 안 했으니 시간이 많이 남았겠죠. 그래서 그 비디오방이라는 곳을 가서 매일 영화를 보는 것이 가장 큰 낙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주로 할리우드 액션 영화를 봤던 것 같은데, 뭐 굉장히 어려운 대사가 있었겠습니까? 액션 영화니 때려 부수는 통쾌한 스토리였겠죠. 그런데 워낙 많이 보다 보니까, 어느 날부터 자막에 나오는 내용이 뭔가 좀 어색하거나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확신이 있었다기보다, '어? 좀 이상한데?' 이런 정도 느낌이었는데, 그래서 그다음부터 자막만 믿지 않고 조금씩 내용을 들으려고 했고, 그렇게 몇 년 하니까 조금씩 귀가 트이는 느낌이었죠. 뭐 그래도 여전히 동네 비디오방에서 영화 보면서 자막 보다가 틀리게 번역된 거 보면 뭔가 대단한 것을 찾은 것 같은, 그런 수준의 영어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미국 영화를 보다가, 저도 모르게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동경이 쌓인 것 같습니다. 도저히 그럴 형편은 안되는데, 졸업하면 미국에 유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싹트게 되었지요. 물론 당장 이룰 수 있는 꿈은 아니었으니, 4학년이 돼서 취업을 하게 됐는데, 돈을 많이 주는 미국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회사에 이미 다니고 있는 선배가 있어서 돈을 많이 준다는 정보를 얻는 것이 좋은 운이라고 한다면, 면접에 합격을 한 부분, 특히 영어 면접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한 것은 뭐 제 실력이라고 해도 좋을 거 같습니다.
미국계 반도체 장비 회사의 한국 지사에, 기술 지원 엔지니어를 뽑는 것이었는데, 당시 강남에 있던 사무실에서 면접을 보는 것 외에, 회사에서 지정한 곳에서 영어 면접을 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서강대 외국어 교육원인가 뭐 그런 곳에 오라고 해서, 한 사람씩 들어가서 외국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그 외국 사람이 저의 영어 대화 실력을 평가해서 회사에 보내는 시스템이었던 것 같아요. 그 외국 시험관과 나눈 대화의 내용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데,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a year'라는 표현을 못 알아들어서 고생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그 사람이 'How much money do you want to make a year?' (일 년에 돈을 얼마나 벌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물어봤다고 치면, 그 앞의 표현은 다 알아 들었는데, 마지막 'a year'가 무슨 뜻인지를 몰라서 여러 차례 물어보고 그 사람이 여러 번 다른 표현으로 설명을 해 주어서 겨우 '일 년에'라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듣고 대답을 했지요.
그렇기에 저는 제 영어 인터뷰 성적이 별로 좋이 않았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뽑고 나서, 미국 본사에 교육을 보내는 데, 그 보내는 선발 기준과 순서가 영어 인터뷰 성적이었다고 합니다. 근데 제가 1월에 입사해서 4월에 미국 출장을 갔으니 거의 첫 팀으로 가게 된 거죠. 그래서, 군대 제대 후 3년 동안 본 수많은 미국 영화가 큰 도움을 주었다고 짐작했습니다. 그때 일주일에 4번 혹은 5번 이상씩 비디오방에 갔던 것 같은데, 일 년에 50주라고 하고 평균 일주일에 4번 미국 영화를 봤으면 200번, 한 영화가 2시간이라면 일 년에 400시간, 그걸 군대 갔다 와서 2학년 복학하고 졸업 때까지 3년 했다고 하면 1,200시간 동안 영화를 본 거니 짧은 시간은 아닌데, 또 그렇다고 이게 어마 어마한 영어 공부 시간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영어 공부한 것이 아니고 미국 영화가 재미있어서 그렇게 본 것이라서요.
그래서 1995년 4월에 생전 처음으로 비행기 타고 미국이라는 나라를 가게 되었습니다. 회사 본사가 산타 클라라라고, 인텔이 위치한 실리콘 밸리의 한가운데 있는 동네에 있거든요. 그래서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려서, 차를 렌트해서 회사 근처에 있는 아파트로 가는데, 가는 길에 생애 첫 미국 음식을 먹게 되었는데 그게 버거킹에서 먹은 햄버거입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렌터카 운전 어찌어찌해서 버거킹 앞에 주차하고, 선배님들 따라서 주문하는 곳에 줄을 서서,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직원이 뭐 먹을 거냐고 물어봤을 때 배운 대로 'Number 1 Please'라고 했어요. 1번 세트메뉴 달라는 거죠. 그랬더니 치즈 넣을 거냐, 양파 넣을 거냐, 콜라 사이즈는 어떻게 할 거냐 이런 거는 무사히 잘 넘어갔는데 마지막 질문에서 위기가 왔습니다.
주문받는 직원이 'For here or to go?' (여기서 먹을 거예요 아니면 포장해 드릴까요?) 이렇게 물어보는데, 몇 번을 다시 물어봐도 도저히 뭘 물어보는 것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앞에 치즈나 양파 질문처럼 대충 찍어서 'Yes!' 이렇게 대답을 했지요. 그랬더니 직원이 다시 똑같은 질문을 하길래, 이번에는 약간 자신 없이 'No?'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그 직원이 쫌 어이없는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설레 설레 젓고는 햄버거랑 감자튀김, 그리고 콜라 세트를 잘 포장해서 종이봉투에 넣어주더군요. 그래서 그걸 갖고 테이블로 가서 다시 포장을 잘 풀어서 먹고 나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창피한 이야기인데요, 그때는 그게 정말 안 들렸어요.
그게 1995년 첫 미국 출장 때 이야기인데요, 시계를 앞으로 많이 돌려서 제가 미국에 가족과 이민을 온 2017년 이야기를 해 볼게요. 22년이 지났으니, 그 사이에 미국 출장도 많이 다니고, 첫 직장을 2년 만에 나왔지만 그다음에 입사한 또 다른 회사에서 20년째 다니고 있었으니 영어가 얼마나 많이 늘었겠어요? 물론 미국에 살아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뭐 처음 와서 운전면허나, 은행에 계좌 열고, 병원 가고 이런 일들을 너무 힘들지 않게 잘해 내면서 자신감이 쌓이고 있었죠. 근데 어느 날, 아들 녀석이 피자가 먹고 싶다고 해서 처음으로 미국에서 피자를 주문하게 되었습니다.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집 앞에서 받게 되었는데, 그 배달을 온 젊은 미국 친구가 저를 보면서 뭐라고 뭐라고 하는데 정말로 한마디도 못 알아듣겠는 거예요. 그래서 몇 번을 다시 물어봤더니 이 친구가 나중에는 'I just said how are you doing, sir!'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즉, 피자 배달하는 사람이 그냥 간단한 안부 인사를 하는데, 워낙 빠르게 '뾰로롱~' 하고 이야기하니까 하나도 안들 리더라고요.
미국에 출장 온 것도 아니고, 가족 전체가 이민을 왔고, 미국 회사에서 22년을 일했고, 본사에서 포지션을 제안받을 만큼 업무 할 때 영어를 꽤 한다고 자부했는데, 미국 와서 피자 배달하는 친구가 한 간단한 안부 인사도 못 알아듣는 저를 보고, 제 영어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이야기가 길어지니 잠깐 쉬었다가 이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