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미국의 주

텍사스 (Texas: TX)

미국의 주: 12

by 타이킴


텍사스는 미국 본토에서 가장 넓은 주입니다. 면적이 거의 70만 제곱킬로미터로 10만 제곱킬로미터 정도 되는 대한민국의 7배나 되는 크기이고, 인구도 가장 최근의 2020년 인구 조사에서 대략 3천만 명 정도로 예상이 된다고 합니다. 2019년 기준으로 GSP (Gross State Product)이 1.9조 달러이니, 같은 해 우리나라의 GDP인 1.64조 달러보다도 더 큰 셈이지요.


텍사스를 상징하는 많은 말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여섯 번 깃발이 바뀐 곳(Six Flags Over Texas)이라고 하지요. 유럽에서 처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16세기 이래, 아주 짧게 프랑스 (1684 ~ 1689), 매우 길게 스페인 (1690 ~ 1821), 다시 짧게 멕시코 (1821 ~ 1836)의 치하에 있다가 결국 텍사스 공화국 (1836 ~ 1845)를 거쳐서 미합중국에 편입된 후에도 남북전쟁 동안 남부 연방에 속해있다가 결국은 통합된 미국의 텍사스 주가 되었으니 주를 상징하는 깃발이 6번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 전에는 미대륙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고요.


뉴멕시코주와 마찬가지로 히스패닉의 비율이 거의 40퍼센트가 될 정도로 많고, 국경도시로 가면 유럽계 백인보다 스페인어를 쓰는 히스패닉들의 비중이 훨씬 높습니다. 이런 파란만장한 역사와 거친 자연환경 그리고 카우보이 정신 때문인지 텍사스 사람들은 한 성격 하기로 유명하고, 또한 주에 대한 자부심이 유난히 높다고 하지요. 그것 때문에 독립하자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오는데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예를 들어서 미국 전역에서 독립적인 전력망을 갖고 있는 유일한 주입니다.


1930년대에 루스벨트 대통령이 연방 전력 법안을 만들어서 주의 경계를 지나는 전력망에 대한 규제를 도입하자 텍사스는, 주내의 전력망이 주 경계를 넘지 않도록 함으로써 그 규제를 피해 간 거고, 그것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올 2월에 이상 한파로 따뜻한 남부 지역의 주들이 온도가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그 지역의 사람들이 생전 쓰지 않던 온열기를 비롯한 겨울 난방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주들과 달리, 자체적인 전력망밖에 없는 텍사스에서만 전력 공급에 차질이 생기자 관련 기관에 대해서 엄청난 비난과 재정비의 요구가 쏟아졌었지요.


이로 인해서 오스틴에 있던 삼성 반도체 공장과 차량용 반도체로 유명한 인피니언의 공장 가동이 중단되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침체되어있던 자동차 업계가 매우 빠른 회복세를 보이다가 작년 말부터 해서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자동차 생산이 중단되는 일까지 벌어졌는데요, 텍사스의 정전 사태로 인한 반도체 공장 가동 중단이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사태를 악화시키는데 기여를 했겠지요. 저희도 최근에 차량용 반도체가 필요해서 납기를 알아보니 지금 주문하면 40주 후에 보내주겠다고 하더군요. 오늘 주문하면 내년 1월 말 정도에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허~참...


텍사스는 주 소득세가 없어서, 캘리포니아의 살인적인 세금을 피해서 이주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랑 같이 일하는 고객사 직원도 얼마 전에 댈러스 쪽으로 이사를 갔는데, 거기서 원격 근무를 하면서 가끔 실리콘 밸리의 연구소로 출장을 와서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친구가 소프트웨어가 아니고 하드웨어 엔지니어라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좀 불편해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요새는 하드웨어 개발도 컴퓨터와 온라인으로 작업을 많이 합니다만 결국은 전자 기판을 뜨고 부품을 붙여서 보드가 나오면 그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잘 쓸 수 있도록 지원도 해 주고 문제 생기면 고치기도 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다 원격 근무로 할 수는 없으니까요. 반면에 저는 소프트웨어 분야이기도 하고 주로 프로젝트 관리를 하는 업무라서 굳이 사무실에 출근할 필요가 없습니다. 얼마 전 세금 보고하고 나서 추가로 때려 맞은 캘리포니아 세금을 보면 짜증이 많이 나기도 합니다만, 워낙 샌디에이고가 날씨도 좋고 안전하고 여러모로 가족들이랑 살기가 좋아서 당장 다른 곳으로 가지는 않을 듯합니다. 날씨세 내고 있다고 생각해야죠. ^^


텍사스는 주 법인세도 없고 부동산 값도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사업 초기 비용이 미국에서 가장 저렴한 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최근에 많은 회사들이 텍사스로의 이전을 발표했지요. 특히 캘리포니아에서 텍사스로 가는 회사들이 많습니다. 작년 말에 HP와 Oracle이 본사를 텍사스로 옮긴다고 발표했고, Tesla 역시 텍사스로의 확장을 발표했지요. 1996년에 가동을 시작한 삼성반도체의 오스틴 공장을 확장하는 협상도 거의 막바지 단계에 이른 듯합니다. 올 상반기에 결정을 하겠다는데, 총 170억 달러 (19조 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입니다.


텍사스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는 휴스턴입니다. 2백3십만 명 정도의 인구로, 뉴욕 (8백3십만), LA (4백만), 시카고 (2백7십만)에 이어서 미국에서 4번째의 대도시입니다. 휴스턴 근처의 지도를 보면 오른쪽에 뾰족 튀어나온 플로리다, 그 아래의 쿠바, 그리고 왼쪽으로 멕시코 그리고 다시 위로 올라오면서 미국에 둘러싸인 바다를 멕시코만 (Gulf of Mexico)라고 부르는데, 텍사스주의 동남쪽 귀퉁이에서 그 멕시코 만에 붙어있는 도시입니다. 1963년에 문을 연 존슨 스페이스 센터가 있는 곳인데, 꽤 중요한 이권이 걸린 이 스페이스 센터의 부지 선정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커다란 바지선이 출입 가능한 해상 운송 접근성

온화한 날씨

사계절 가능한 항공편

기술 인력의 공급이 가능한 산업 단지

문화적으로 매력적인 커뮤니티 및 고등 교육 기관

안정적인 전력 및 용수 공급

최도한 1,000 에이커(1백2십만 평)의 부지와 적절한 가격 조건


이런 조건을 검토해서 처음에는 기존 공군 기지가 폐쇄되면서 이를 재활용함으로써 비용 절감이 가능한 플로리다의 템파가 선정이 될 뻔했는데 공군 기지 폐쇄 계획이 철회되면서 2순위였던 휴스턴이 선정되었다고 하네요. 참고로 최종 9곳의 리스트 가운데는 제가 사는 샌디에이고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우주 비행사들이 지상 관제소와 교신할 때 부르는 콜사인인 “휴스턴~”이 하마터면 “샌디에이고~”가 될뻔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텍사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는 샌안토니오입니다. 인구가 대략 1백5십만 명 정도 된다고 하는데 그중의 65퍼센트 정도가 히스패닉이나 다른 남미 (멕시코,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계통의 이주민들이라고 합니다. 1718년에 스페인 선교사들에 의해서 도시가 건설되었고, 2018년 5월 1일에 도시 설립 300주년을 기념했으며, 따라서 미국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도시로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지배자들이야 스페인에서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바뀌었지만 정착해서 살던 사람들은 그대로 남아서 여전히 스페인어를 쓰면서 살고 있는 셈이고, 오히려 남미 쪽에서의 이민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고 하네요.


텍사스에서 인구가 세 번째로 많은 곳은 한국 분들도 많이 살고 있는 댈러스입니다. 여기는 사실 댈러스 도시 인구만 봐서 1백3십만 명 정도인데, 바로 근처에 포트워스의 인구가 9십만 명 정도 되고요, 댈러스-포트워스 주변의 도시권 인구를 다 합치면 7백5십만 명으로, 거의 2천만에 달하는 뉴욕-뉴왁-뉴저지 (1위), 1천3백만이 넘는 LA-롱비치-애너하임 (2위), 그리고 9백5십만 정도 되는 시카고-네이퍼빌-엘진 (3위)에 이어서 당당히 4위를 차지합니다. 바로 밑의 5위가 같은 텍사스의 휴스턴-우드랜드-슈가랜드 도시권의 7백만 명이고요.


여기 사는 분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름에 거의 섭씨 40도 (화씨 104도)까지 온도가 올라간다고 합니다. 제가 지난여름에 정신 못 차리고 한여름에 팜스프링스에 가서 골프를 친 적이 있는데요, 그때 온도가 화씨로 100도가 넘었습니다. 100도가 넘는데 야외에서 땡볕을 맞으면서 돌아다니면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입니다. 언젠가 한여름에, 역시 정신 못 차리고, 샌디에이고 집에서 애리조나 사막 지역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요, 온도가 120도 정도까지 올라가니까, 고속도로를 달릴 때 재킷을 열면 뜨거운 바람이 들어와서 오히려 더 더웠던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미국의 남부와 서부지역의 열기는, 한국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아주 따끈따끈한 느낌이랍니다. ^^


댈러스는 원조 막장 미드, 댈러스의 배경이 됐던 곳으로도 유명하고,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슈퍼볼 우승 5회로 NFL에서 가장 잘 나가는 구단인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연고지이고,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추신수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마지막을 보낸 텍사스 레인저스의 연고도시이기도 합니다. 박찬호 선수도 레인저스에 잠깐 머물렀었고, 지금은 양현종 선수가 여기서 뛰고 있죠.


댈러스는 유명한 회사의 본사가 많기로 유명합니다. 시가 총액 200조 원대를 자랑하는 석유회사 엑스모빌과 통신사 AT&T의 본사가 있지만, 그 외에도 개인적으로 참으로 똘똘한 반도체 회사라고 생각하는 TI (Texas Instruments)의 본거지이기도 합니다. 이 회사는 이름도 그렇지만 로고도 텍사스의 주 모양입니다. 아메리칸 항공의 본거지이기도 하고, 싼 맛에 저도 국내 출장 갈 때 항상 애용하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본사도 여기에 있습니다.


올초에 헤지펀드의 공매도 관련한 개미들의 반란 테마주로 유명해진 게임스탑도 댈러스에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게임스탑은 그때 300불이 넘게 올라갔다가 2월에는 40불대까지 떨어졌고, 다시 200불 넘게 반등했다가 지금은 170불 정도 하네요. 엄청난 롤러코스터이기는 합니다만, 이 회사 주식은 1월 초까지만 해도 20불도 안 했었으니, 주신의 계시를 받고 이 주식을 갖고 있던 분이라면 롤러코스터이던 아니던 현재 가격만으로도 이미 8배가 오른 거죠. 물론 이 주식이 300불에서 40불까지 요동을 칠 때 과연 어느 개미 투자자가 평정심을 갖고 존버 정신으로 있었을까 하는 의문은 듭니다만… 참으로 주식은 요지경의 세상입니다. 아예 끊어야 하는데… -_-;


마지막으로 살펴볼 도시는, 인구 98만 명의 오스틴입니다. 삼성의 반도체 공장 확장에 따른 투자 협상이 거의 마무리 단계라고 해서 더더욱 반도체 도시로서의 명성이 높아지겠지요. 그 외에도 지금은 NXP에 합병되었지만, 그전에 모토롤라에서 분사한, 또 다른 똘똘한 반도체 회사인 프리스케일 (Freescale Semiconductor)의 본사가 오스틴에 있습니다. 델 컴퓨터의 본사도 오스틴에 있고요. 삼성 공장이 있는 것에 비해서 의외로 한인 인구는 대략 1만 명 정도라서, 댈러스(10만 명)나 휴스턴(5만 명)에 비해서 한인 비즈니스가 그리 많지는 않다고 합니다.


학부생 4만 명, 대학원생 1만 명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UT (University of Texas) Austin 캠퍼스가 있어서 교육적인 분위기가 많이 나는 도시이면서 또한 매우 진보적인 색채를 갖고 있는 젊은 도시이기도 합니다. 제가 군대 제대하고 복학했을 때 새로 오신 컴공과 교수님께서 UT Austin에서 공부하신 분인데, 처음에 와서 본토 발음으로 “컴퓨러 사이언스”를 가르치신다고 해서 좀 놀려대기도 했습니다만, 겨울 방학 때 그 유명한 The C Programming Language라는 하얀 책을 교재로 관심 있는 학생들 대상으로 특강을 해 주셔서, 오늘날 그나마 제가 이쪽 업계에서 먹고사는데 필요한 기초를 가르쳐주신 고마운 선생님의 추억과 관련이 있는 도시이기도 해서, 나중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