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주: 11
유럽의 지중해에서 동쪽으로 홍해를 거쳐 인도양으로 직접 갈 수 있도록 해 주는 인공적인 물길의 이름은 수에즈 운하입니다. 최근에 대형 컨테이너선이 그 거대한 선체로 길막을 해서 일주일간 세계 경제에 미친 영향이 몇백조 원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어서요, 그 해결 방안이 합의되는 데 몇 년이 걸리겠죠. 유럽과 아시아의 통행을 위한 운하가 수에즈 운하라면 유럽과 아메라카 대륙의 항해, 즉 대서양에서 태평양을 갈 때 남아메리카 대륙을 빙 돌아서 가지 않고,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 대륙이 만나는 가장 좁은 육지에 82km의 물길을 낸 것이 파나마 운하입니다. 우리가 흔히 아메리카 대륙을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로 나눌 때의 경계가 되는 바로 그 나라가 파나마 공화국입니다.
이 지역은 지도의 모양으로 보면 남아메리카라기보다는 북아메리카의 길게 늘어진 꼬리 부분에 속하는데, 좀 세분해서 중앙아메리카(Central America)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이런 나라들이 속해있는데 내정이 불안하고 마약 문제 등으로 인해서 치안이 최악인 지역으로 꼽힙니다. 1492년 콜럼버스가 바하마 지역에 도착하여 아시아 대륙이라고 착각한 이후에, 스페인의 여러 탐험가/정복자들이 이 새로운 대륙을 방문하였는데 그 가운데 아메리고 베스푸치라는 선원이 나중에 이곳이 신대륙이라고 발표했고, 그것이 인정되어서 그의 이름을 따서 이 신대륙을 아메리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하죠.
이 소식이 전 유럽에 퍼지고,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식민지 개척에 온 유럽이 열을 올렸는데, 영국의 경우에는 복잡한 국내 상황으로 100년이나 지난 150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미대륙 식민지 개척을 시작했고, 1607년의 제임스 타운 식민지 건설을 시작으로 1620년에 잘 알려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102명의 필그림들이 매사추세츠 지역에 도착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영국의 식민지 개척이 진행이 되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만들어지는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종교적 박해를 피해서건 아니면 하루하루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에서였던, 민간의 회사를 통해서 이주민들을 보내면서 신대륙의 식민지 건설을 추진했던 영국에 비해서, 스페인의 방식은 군대를 보내서 약탈을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200년간 5,000만 명 이상의 원주민이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잔혹하게 식민지를 개척한 거고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 에르난 코르테스입니다.
14세기경부터 멕시코 고원에 찬란한 문명을 피워낸 아즈텍 제국이 1521년에 코르테스의 스페인 군대에 멸망하고, 이후 마야 문명이 지배하고 있던 다른 지역의 원주민 부족들을 정복하면서 17세기 후반과 18세기에 들어 멕시코 전역이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아즈텍 제국의 수도 이름을 당시의 스페인어로 Mexico (메히코)라고 표기를 한 것이고, 이 지역이 스페인 식민지 시절 사우다드 데 메히코 (멕시코 시티)가 되었고, 나중에 스페인에서 독립을 하면서, 아즈텍 제국의 후예라고 하는 멕시코의 나라 이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200년 정도의 스페인 식민지 시절을 거쳐서 1821년에 독립한 멕시코는 그 당시 영토가 캘리포니아, 네바다, 콜로라도, 애리조나 그리고 오늘 이야기의 주제인 뉴멕시코와 텍사스까지 포함한 어마 어마한 크기였습니다. 그러다가 1848년에 미국과의 전쟁을 거치면서 현재의 미국 남부에 해당 하는 30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영토를 미국에 양도하게 됩니다. 남북한 합쳐서 22만 제곱킬로미터 정도이고 영국이 24만 제곱킬로미터 정도이니 땅의 크기도 크기지만, 이후에 이 지역에서 석유와 금이 나오면서 미국에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게 됩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갖고 있어서, 뉴멕시코주는 히스패닉계 주민 비율이 미국에서 가장 높습니다. 2백만 명의 주 인구 가운데 대략 47% 정도의 주민이 스페인어권 국가 출신 이주자 및 그 후손들이라고 하죠. 히스패닉은 고대 로마 시절 이베리아 반도 지역을 뜻하는 라틴어 히스파니아에서 유래해서 스페인을 가리키는 칭호가 되었습니다. 미국 통계청 기준으로는 쿠바, 멕시코, 푸에르토리코, 도미니카 공화국을 비롯한 기타 스페인 문화를 가진 나라 출신을 말합니다. 스페인에서 신대륙 식민지를 부르던 이름인 누에바 에스파냐(Nueva Espana:새로운 스페인)에서 멕시코가 독립한 후 미국의 뉴멕시코주가 된 것입니다. 몇백 년 전에 스페인에서 넘어와서 이쪽에 원래 살고 있던 원주민들하고 아웅다웅 섞여서 살고 있는데, 멕시코가 독립해서 멕시코 국민이 잠깐 되었다가 미국에 넘겨져서 이제는 미국 국민이 된 셈이죠.
뉴멕시코주의 주도는 산타페(Santa Fe)입니다. 현대자동차의 SUV 이름으로 친숙한데,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에 있는 인구 1만 5천 명 정도의 작은 도시 이름이기도 하고, 아르헨티나의 인구 3백만 명이 넘는 주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스페인어로 성스러운 신앙이라는 뜻입니다. 이때의 Santa는 성스럽다는 뜻의 형용사이지만, Santa는 스페인어에서 Saint의 여성형이기도 합니다.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의 Santa Ana는 Saint Annie로 번역이 되고, 히브리어에서 Hannah라고 표기되는 Anna는 성모 마리아의 어머님의 이름이지요. 예전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미국 남서부에는 성인의 이름을 딴 도시 이름이 수없이 많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San Diego나 San Fransciso, San Jose 등이 그렇습니다. 여성형인 Santa가 들어간 이름은 Santa Barbara, Santa Maria, Santa Clara 등등이 그렇고요.
산타페(미국 발음으로는 산타페이)는 인구 8만 5천 명 정도로 뉴멕시코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이자 주도입니다. 1610년부터 산타페 데 누에보 메히코(Santa Fe de Nuevo Mexico = Holy Faith of New Mexico = 새로운 멕시코의 산타페)라고 불리던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왕국의 수도였던 유서 깊은 도시이고 미국의 주도들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도시라고 합니다. 멋진 이름답게 예술 작품이 풍부한 갤러리와 아름다운 건축들로 유명하다고 하네요. 이 무렵 동부의 영국 식민지에서는 이민자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을 시절이었는데, 산타페는 스페인에서 온 총독이 Adobe 양식의 관저를 짓고 광장을 조성했다는 것이니, 다시 한번 스페인과 영국의 미대륙 개척 역사가 극명히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뉴멕시코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는 앨버커키(Albuquerque: ABQ)로 인구가 주변 도시들을 포함해서 88만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네모난 뉴멕시코 지도에서 얼추 가운데(에서 살짝 왼쪽 위)에 있는데요, 거기서 북동쪽으로 한 시간만 가면 산타페가 나오니 거의 비슷한 생활권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2018년 인터뷰에 보니까 한인들이 주 전체에 5천 명 정도이고 앨버커키에 그 절반 정도가 살고 있다고 나오네요. 한인들 인구가 적어서 그런지 한인마트는 조그맣게 고만 고만한 것들만 3개가 있다고 합니다. 해발 고도가 대략 1,500미터 정도가 돼서 좀 힘들어하는 분들도 있지만, 한국하고 비슷한 사계절이고, 특히 매우 건조한 날씨라서 연세 있는 분들이나 폐 질환을 가진 분들이 살기 좋다는 깨알 같은 정보도 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