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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미국의 주

오클라호마 (Oklahoma:OK)

미국의 주: 13

by 타이킴

텍사스에서 위로 올라가면 오클라호마가 나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그리 친숙한 주는 아니고, 오히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911 전까지 미국 역사상 최악의 폭탄 테러로 기록되었던 오클라호마시티 연방청사의 테러가 생각나는 곳입니다. 제가 미국 와서 몇 년을 살면서 아직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많은 것들 가운데 하나가 미국 사람들의 총기에 대한 집착입니다. 매일 저녁 뉴스에 거의 일상처럼 나오는 것이 총기 관련된 사고 뉴스입니다.

이렇게 매일 총기 관련 사고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잊을만하면 한 번씩 대형 사고가 터지는데도, 미국에서 개인의 총기 휴대는 아주 중요한 기본권으로 취급받고 있지요. 미국 역사를 살펴보면서 이런 부분이 조금씩 이해가 갈락 말락 하고 있는데, 이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의 원인을 살펴보면 그런 개인의 총기 소지 및 국가 권력에 대한 자위권의 행사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건 다음 글에서 따로 정리해보도록 하고, 다시 오클라호마 주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미국의 지도를 보면 제일 아래의 텍사스부터 시작해서 그 위의 오클라호마, 캔자스, 네브래스카, 사우스다코타, 노스다코타, 이렇게 6개의 주를 일렬로 연결해서 미 대륙의 정 중앙을 가르는 세로 띠를 프런티어 스트립(Frontier Strip)이라고 부릅니다. 1890년 인구조사에서, 그 당시 서부 개척이 한창 활발할 때 그 가장 첨단에 있는 지역이라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고 하죠.


미국에서 전통적으로 서부라고 부르던 곳은 지금 우리가 미국 서부여행의 주요 코스로 알고 있는 캘리포니아나 애리조나를 의미하는 것보다는 기존에 영국에서 처음 식민지를 개척한 대서양 연안의 동부를 기준으로 왼쪽의 개척되지 않은 지역을 의미했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미시시피강 혹은 미주리강을 기준으로 한 왼쪽, 혹은 서경 98도의 왼쪽 지역을 서부라고 불렀었고, 영어로 아메리칸 프런티어(American Frontier) 혹은 올드 웨스트 (Old West)나 와일드 웨스트 (Wild West)라고도 하죠.


미국의 인구밀도 지도를 보면, 이 프런티어 스트립의 6개 주부터 인구밀도가 확연하게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저밀도 지역이 계속되다가 태평양 해안가의 주들에 이르러야 다시 인구밀도가 급격하게 올라가죠. 이 스트립은 또한 미 대륙의 강수량 지도에서도 확연하게 강수량이 떨어지는 건조한 기후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지역부터 시작되는 급격한 인구밀도의 감소를 설명하는 이론 중에 땅이 척박해서 그렇다는 것이 있는데, 그렇게 설명하기엔 단위 면적당 농업 생산성을 비교해보면 태평양 연안의 다른 주들에 비해서 오히려 더 좋아서, 딱 맞는 이론이 아닐 거라는 이야기도 있네요.


그것보다 좀 더 현실성 있는 설명은, 그 시절 동부에서 금광을 찾아서 서부개척에 뛰어든 사람들이, 이왕 고생 고생하면서 이곳까지 왔으면 계속해서 태평양 방향으로 캘리포니아를 향해서 전진을 하지, 굳이 별 이점이 없는 중간의 프런티어 주들에 머무를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이론입니다. 그 사이에 미 대륙을 횡단하는 교통 수단도 계속 발달했고요. 한마디로,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뿐이라는 거죠.


또 다른 설명은 1930년대의 더스트 볼(Dust Bowl) 현상 때문에 사람들이 이곳에 머물지 않고 더 살기 좋은 서쪽으로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더스트 볼은 1930년대에 먼지 폭풍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을 일컫는 말이었다가, 점차 그 먼지 폭풍 현상 자체를 표현하는 용어로 사용이 되었다고 하네요. 대평원 지역은 영화에서도 가끔 나오지만 연 강우랑 500미리 이하의 건조한 기후 때문에 큰 나무보다는 짧은 풀들로 뒤덮인 지역입니다. 비가 올 때는 풀들이 잘 자라지만 몇 년씩 가뭄이 이어질 때도 많고, 항상 강풍이 부는 곳입니다.


정부의 장려 정책에 따라 이곳으로 이주를 온 유럽 출신의 이민자들은 처음에는 가축 방목을 주로 했으나, 가축을 키우기에 너무 혹독한 겨울과 지속적인 방목으로 가축이 먹을 풀이 점점 줄어들면서 농업으로 방향을 전환합니다. 때마침 이어진 풍부한 강수량이 계속 이어지면서, 원래 반건조 지역인 이곳의 기후가 좀 더 농업을 하기에 좋은 기후로 바뀌었다고 여긴 사람들은, 농장의 규모를 어마어마하게 늘리기 시작하죠.


러시아 혁명(1917 ~ 1923)과 제1차 세계대전(1914 ~ 1918)의 복합적인 영향으로 밀을 포함한 농산물의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고,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까지 미시시피강 서부의 정부 소유의 땅을 개척자들에게 무료로 분양하는 장려 정책에 따라서 많은 땅을 소유하게 된 농부들은, 땅을 매우 깊이 일구는 농법을 선호했는데, 그 결과로 대평원의 흙을 잡아주고, 강수량이 부족할 때 습기를 유지해주던 풀들이 부족해지면서, 강풍이 불 때 지표면의 흙들이 바람을 타고 올라가 먼지 폭풍을 만드는 현상을 더스트 볼이라고 불렀답니다.


1920년대의 유난히 기후가 좋았던 시절이 지나고 1930년 여름부터 다시 원래의 건조한 기후로 돌아가면서 혹독한 가뭄이 몇년씩 이어졌는데, 1935년 4월 14일에는 최악의 먼지 폭풍이 20차례나 발생을 해서 블랙 선데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렇게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을 떠나서 보다 살기 좋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3백5십만 명의 사람들이 대평원 지역을 떠났는데, 미국 역사상 단기간의 이주로는 최대의 기록이라고 하죠. 이런 사람들을 통칭해서 부르는 표현들이 "Okies", "Arkies" 혹은 "Texies"라고 부르는데, 그 유명한 존 스타인벡이 1939년에 발표한 소설, 분도의 포도(The Grapes of Wrath)가 바로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이 오키(Okies), 즉 오클랜드에서 살다가 힘들어서 타지역으로 이주한 가족의 애환을 그린 소설입니다. 소설의 시작 부분에 보면 모래 폭풍이 부는 우울한 동네의 묘사가 한동안 이어지죠.


가장 최근의 2020년 인구조사에서 오클라호마주에 사는 사람은 4백만 명 정도로 나왔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사는 캘리포니아주가 4천만 명 정도이니 딱 10분의 1 정도 되는 인구 규모입니다. 북미 원주민들이 많이 살기로도 유명한데, 30만 명이 넘는 원주민 숫자는 캘리포니아나 애리조나와 비슷하지만, 주의 전체 인구를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훨씬 많은 숫자라고 하겠습니다. 오클라호마라는 이름도 촉토족의 '명예로운 사람' 혹은 '용감한 사람'을 의미하는 "okla humma"에서 유래했다고 하죠.


오클라호마의 주 모양을 보면 왼쪽으로 텍사스와의 경계에 길고 좁은 띠처럼 생긴 지역이 이어져있습니다. 주의 전체 모양을 프라이팬이라고 보면 왼쪽에 길게 손잡이가 붙어있는 모양이라고 해서 Panhandle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예전에는 No Man's Land 혹은 Nuetral Strip이라고도 불렀답니다. 요 길쭉한 손잡이 안에 3개의 카운티가 있는데, 인구가 3만 명도 안된다고 합니다. 이 지역의 좌우 길이가 166마일 (267 km)이고 폭이 34마일 (55 km)이니 거의 1만 5천 제곱킬로미터의 면적인데, 대략 강원도보다 조금 작은 땅의 크기에 이렇게 적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죠. 참고로 대한민국의 강원도는 대략 1만 7천 제곱킬로미터의 면적에 1백5십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텍사스의 별명 가운데 6개의 깃발이 펄럭인 땅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 프라이팬 손잡이 지역도 역시 미국 건국 초기에, 스페인과 멕시코 그리고 텍사스 공화국 시절을 거친 곳입니다. 텍사스가 연방에 가입할 때 노예제도를 합법화하는 주로 가입을 했는데, 당시의 연방법상 북위 36.3도 이북의 지역에서는 노예제도를 금지하도록 되어있어서 텍사스가 이 지역을 포기하게 된 거죠. 그 위쪽 북위 37도는 캔자스주의 경계가 되었고, 서경 103도가 뉴멕시코주의 경계가 되었으니 이 지역은 임자 없는 땅으로 남아있다가 오클라호마가 뒤늦게, 1907년에 미국의 46번째 주로 연방에 가입하면서 요렇게 묘한 주의 모양이 정해진 겁니다.


오클라호마의 주도는 인구 66만의 오클라호마 시티입니다. 여기는 이름에 시티가 들어가 있는데, 그것이 이 도시의 이름 가운데 일부이므로 정식으로는 City of Oklahoma City라는 약간 도돌이표 같은 재미난 이름이 됩니다. 오클라호마주의 한가운데 위치해있고, 주변 25마일 반경의 오클라호마 시티 메트로 지역의 인구를 모두 합치면 1백4십만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3월에서 6월까지 이어지는 토네이도로 유명하기도 한데요, 이로 인해서 인명과 재산 피해가 꽤 크다고 하네요.


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는 털사(Tulsa)로 인구가 40만 명 정도 됩니다. 주변의 지역까지 합치면 거의 100만 명의 사람들이 대략 강원도만 한 크기에 살고 있는 셈이고요. 털사가 있는 지역은 원래 인디언 지역이었는데, 인디언 부족 말로 오래된 동네 (old town)이라고 하는 Tallasi가 변해서 Tulsa가 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어떤 주를 이야기해도 원래 살던 북미 원주민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만, 이곳은 특히나 슬픈 원주민들의 역사가 담겨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19세기에 유럽의 이민자들이 들어와서 만든 영국의 식민지가 독립해서 미합중국이 만들어진 후에, 미 정부에서는 수만 명의 원주민들을 그들의 원래 고향에서 쫓아내 인디언 구역(Indian Territory)이라고 불리는 특정한 지역에 모여 살도록 했는데 그곳이 나중에 오클라호마가 됩니다. 미국 남동부에 살던 5개의 주요 원주민 부족들이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라고 불린 1,000마일 정도의 고단한 행로를 거쳐서, 1831년의 촉토 부족을 시작으로 해서 1838년 체로키 부족의 이주까지, 대략 6만 명의 원주민들을 인디언 제거법 (Indian Removal)에 따라서 이주시켰고 그 과정에서 추위와 질병 그리고 굶주림으로 수천 명이 죽었다고 하지요.


현재 오클라호마주의 프라이팬 손잡이를 빼고 몸통 부분만 놓고, 이를 북동쪽 귀퉁이에서 남서쪽 귀퉁이로 대각선으로 가르면 그 오른쪽이 그때 이주를 당한 5개 인디언 부족의 영역이 됩니다. 원래는 이 인디언 지역(Indian Territory) 스스로 독립적으로 미 합중국에 가입하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아서, 서쪽의 오클라호마 지역(Oklahoma Territory)과 합쳐서 오클라호마 주로 연방 가입을 승인받은 거지요.


현재 미국에는 총 326곳의 인디언 보호 구역 (Indian Reservation)이 지정되어 있습니다. 모두 합쳐서 22만 7천 제곱킬로미터 정도의 땅이라고 하니, 대략 남북한 합친 한반도 정도의 면적이 됩니다. 미국 연방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인디언 부족의 숫자가 574개라고 하는데, 어떤 부족은 자체 보호 구역이 없고, 어떤 부족은 여러 개를 갖고 있고, 어떤 부족은 한 구역에서 같이 모여 살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들 인디언 보호 구역은 미국의 헌법에 보장된 어느 정도의 자치권을 갖는데, 원칙적으로는 각각의 부족을 별도의 나라에 준하는 대우를 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스스로의 사법 시스템을 적용할 수 있고, 그래서 예를 들어 인디언 보호 구역에 합법적인 카지노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다만 각각의 인디언 부족들의 상황에 따라서도 다르고, 인디언 구역에서 미국 시민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하는 등의 복잡한 사정도 있어서 인디언 부족들과 미합중국 연방정부의 관계를 한마디로 분명하게 정리하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원래 오클라호마에는 공식적인 인디언 보호 구역은 Osage Reservation이라는, 인구 약 5만 명 정도에 6 제곱킬로미터 정도의 작은 구역뿐인데, 2020년 7월에 연방 대법원에서 5대 4의 근소한 차이로 난 판결에 따르면 오클라호마 동쪽의 원래 인디언 구역은 여전히 5개 인디언 부족의 자치권을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대법원까지 올라가게 된 이 사건은, 불미스러운 원주민 부족의 사건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자기는 원주민 부족의 일인이므로 주법이 아니고 연방법에 따라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서 결국 대법원까지 올라가게 되었고, 작년 여름에 판결이 난 것이죠. 이 판결에 따라서 털사를 포함한 오클라호마 동쪽의 옛 인디언 구역의 범죄 사건 심리가 영향을 받기도 하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최근 들어서 미국 원주민의 권익을 인정해주는 가장 큰 판결이었다고 하네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작년 9월에 별세했는데, 이 판결에 다수의견을 낸 5명 중의 한분이 바로 이분이었습니다. 컬럼비아 로스쿨 최소의 여성 교수와 미국자유인권협회 자문위원을 거쳐 1980년에 카터 대통령에 의해서 연방 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되었고, 1993년에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서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여성 대법관으로 지명이 된 분이죠. 여성 인권과 소수자를 대변하는 목소리를 낸 대표적인 진보성향의 법관으로 유명했습니다. 작년에도 9명의 대법관중 진보 4명 보수 5명의 구도였는데, 이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긴즈버그는 정신이 나갔고 사퇴해야 한다"라고 말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을 불과 5주 앞두고, 낙태와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보수 성향의 코니 배럿 판사를 임명해서 미국 연방 대법원의 이념 성향은 6대 3으로 압도적으로 보수 성향으로 기울게 되었습니다. 대법관마다 개인의 신념이 있기는 하겠지만 대체로 성 소수자나 이민 관련 정책에 앞으로 어떤 대법원 판결이 나올지 예상이 되는 대목이고, 이런 것들이 쌓여서 그 나라의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진보 진영에서 그렇게 격렬히 반대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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