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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킴 Jan 26. 2020

영업이 내 적성에 맞을까

영업의 업무 영역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

제가 엔지니어 백그라운드를 갖고 있어서 그런지, 처음에는 영업이라는 일이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필드 엔지니어로 입사해서 영업을 담당하는 어카운트 매니저라는 포지션으로 이동을 한 것은, 다른 것 보다도 업무의 주도권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비즈니스 전략을 수립하거나, 미팅과 워크숍을 조직하거나, 심지어 엔지니어인 제가 어떠 부분에 더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지까지도 결국은 고객과의 비즈니스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있는 영업 담당자가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 치기 어린 생각에 나도 더 이상 누구한테 이래라저래라 소리 듣지 않고 주도적으로 일을 하고 싶어서 지원했던 거거든요.


근데 실제로 영업을 좀 해 보고 회사의 다양한 포지션에서 일을 하면서, 영업이라는 직종의 매력과 중요성을 보다 더 깊이 있게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희 회사의 업무 스타일 상, 영업 담당자에게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권한과 독립성을 보장해주니, 그런 부분에 대해서 제가 부러워했던 것도 맞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자율성의 의미는, 단순히 엔지니어들을 비롯한 회사의 리소스를 좌지우지한다는 얕은 수준의 권한은 아니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물건이나 서비스를 주고받는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면서 이 세상이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현장에서 비즈니스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고객과의 최종 연결 고리인 영업 담당자가 그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라고 볼 수도 있다는 거죠. 아무리 좋은 물건이나 서비스가 있더라도, 그것을 팔 수 없으면 결국 회사가 살아남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영업하는 사람들은 회사의 중심에 자기들이 있고, 회사의 모든 결정은 영업팀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죠.


그에 대한 반론은 이렇습니다. 사실 제품이 좋아서 팔리는 것이지 영업 사원이 잘한다고 팔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제품은 상황이 다르니, 제가 친숙한 B2B (Business to business) 분야, 즉 기업과 기업이 거래를 하는 그런 형태의 영업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해 보죠. 그런 B2B 회사들 중에는, 제품을 잘 만들면 저절로 팔리게 되어 있고, 영업은 그저 거들 뿐이라고 하는 회사들이 있습니다. 이런 회사는 엔지니어링이나 제품 개발 부서의 목소리가 크고, 그에 따라서 회사의 주요 결정이 내려질 겁니다. 그런데 어떤 회사는, 뭐 IT 관련 제품들이라는 것이 성능과 기능의 차이는 거기서 거기이니, 결국은 현장 영업의 역량에 따라서 시장 점유율이나 매출이 좌우된다고 믿는다면, 이런 회사는 아무래도 영업팀의 의견에 따라서 주요 결정이 내려질 겁니다.


근데 실제로는, 뭐 약간 성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완전히 한쪽 극단으로 치우치는 회사보다는 둘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이루면서 회사의 발전을 추구하는 회사가 훨씬 많을 겁니다. 제가 다녔던 회사는, 제 생각에는 영업적인 성향이 강한 회사였습니다. 제가 입사했을 때 이미 미국 나스닥에 상장이 되어있는 회사였는데, 매 분기 영업 실적에 따라서 주가가 큰 영향을 받고, 따라서 경영진의 가장 큰 관심은 분기 실적, 그리고 한해 영업 실적이었죠. 그에 따라서 부사장이나 CEO 들의 인사가 이루어지기도 했고요. 


그러니 영업들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었고, 제품 개발 전략이나 마케팅 전략도 그에 맞춰서 짜였다는 느낌입니다. 매해 실적을 마감하고 나면 모두가 모여서 한 해를 돌아보고, 실적이 좋은 영업 담당자를 포상하고 내년 계획을 공유하는 SKO (Sales Kickoff)라는 이벤트를 하는데 큰돈과 노력을 쓰고 있지요. 어떤 CEO는 공개적으로 '우리 회사의 모든 직원은 영업팀을 위해서 일한다.'라고 이야기를 해서 회사 내부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킨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목과 지원에는 그에 따른 책임이 있게 마련이죠. 영업맨의 가장 큰 책임은 당연히 숫자를 맞추는 것입니다. 나에게 한해 할당된 영업 실적 목표가 그것입니다. 다른 부서의 업무가, 정량적인 평가보다는 정성적인 평가가 많은 것은, 그 한 사람의 업무 능력이나 회사의 실적에 대한 기여도를 숫자로 정확히 뽑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업 담당자는, 예를 들어서 내가 한해 받은 목표 매출이 20억인데 30억의 매출을 회사에 가져다주었다면 주어진 목표의 150%를 달성한 것이고, 그에 따라서 월급과 보너스도 더 가져가게 됩니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운이 없었다거나, 고객사 사정이 좋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실적 평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기가 받은 숫자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이를 어떻게든 만들어내는 추진력과 목표에 대한 집념, 이런 것들이 좋은 영업맨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는 인간적인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생뚱맞지만,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영업의 첫째 소양, 즉 주어진 숫자에 대한 집념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부작용들을 상쇄하고 롱런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의 내부 리소스던 외부의 고객이던 사기를 치고, 이기적으로 이용해 먹고 해서 어찌어찌 숫자를 맞춘다고 해서 그런 관계가 오래 건강하게 갈 수는 없겠죠. 이런 분들은 몇 년 안에 결국은 회사를 떠나서 다른 회사에서 또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인간적인 매력을 갖추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소중히 생각하면서 솜씨 있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는 고객을 압박해서 필요한 것을 얻어내지만 그 과정에서 밉지 않게, 감정을 해치지 않으면서 필요한 것을 쟁취할 수 있겠죠. 


회사 내부의 업무도 그렇습니다. 자기를 직접 지원해주는 필드 엔지니어와의 관계가 엉망이라면, 마지못해 영업이 시키는 일을 하기는 하겠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팀워크를 통해서 진행되는 업무 지원의 성과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겁니다. 영업맨은 어찌 보면 조그만 일인 기업과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회사의 매출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특수한 일인 기업이지요. 마케팅 팀, 회계팀, 법무팀, 엔지니어링 팀 등 수많은 회사의 자원을 이용해서 필요한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해서 결과를 내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역할입니다. 그 과정에서 계속 사람들에게 원망을 사고, 이기적인 행동으로 주변에 피해를 주고, 사람 사이의 관계를 악화시킨다면 좋은 결과를 지속적으로 내기 힘들 겁니다. 따라서 인간관계에 대한 관심과 깊은 이해, 그리고 솜씨가 필요합니다.


영업의 특성상 주도적인 위치에서 업무를 하게 되는데, 외부 고객이건 내부 직원이던,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진척시키기 위해서 때로는 압박을, 때로는 회유를,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매력을 잃지 않고, 사람들의 이해와 지원을 얻어내는 그런 소질이 있다면 영업은 매우 해볼 만한 업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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