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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킴 Jan 30. 2020

레이오프, Layoff, 정리해고

놀라움, 열 받음, 받아들임, 설렘???

이번 주 월요일이 공식적으로 회사와의 관계가 종료되는 날이었고, 관련된 몇 가지 법률적인 서류에 사인을 오늘 아침에 했으니까 이제는 정말로 법적인 백수가 되었습니다. 다른 글 (https://brunch.co.kr/@tystory/4)에서 밝혔지만, 혹시 이런 일을 겪을 수도 있는 다른 분들을 위해서 미국 회사의 레이오프 (Layoff) 과정을 간단히 설명드리면 이렇습니다.


제가 봤던 제 옆 사무실 다른 직원의 경우는 오후 3시에 부사장님과의 면담 자리에서 정리해고 통지를 받고, 바로 자기 자리로 돌아와서 주섬 주섬 짐을 싸서, 몇몇 동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바로 회사를 떠났습니다. 아직도 그 친구의 쓸쓸한 표정을 잊을 수 없는데요, 면담을 대략 30분 했고, 그 바로 다음에 제 차례였는데, 그것도 대략 30분 정도 걸렸고, 제가 제 사무실로 왔을 때는 이미 짐을 다 꾸려놓고 저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모든 과정이 한 시간 정도 걸린 거죠. 물론 책도 있고 해서, 다 못 꾸린 짐은 나중에 따로 보내달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에서 일할 때 제가 정말 힘들었던 일 가운데 바로 그런 업무가 있었습니다. 회사가 힘들어지거나 혹은 그 직원의 업무 성과나 인성 문제로 내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인사부 직원의 도움도 받고, 회사에서 정해진 절차도 있습니다만, 결국 마주 앉아서 일대일로 통보를 하는 것은 그 조직의 책임자였던 제 몫이었지요. 특히 저는, 가능하면 직원들 그리고 그 가족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연말 파티나 봉사 모임 등에 가족들을 자주 초대했었는데, 내보내야 하는 그 직원의 가족들을 생각하면 정말 못할 짓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줄 수 있는 최대한의 패키지를 마련해서 내보낸다고는 하지만, 그거랑 상관없이 정말 하기 싫은 일이었죠.


그렇지만, 그런 경우에도 나가는 사람들이 남은 동료들과 회식도 하고, 저랑도 술자리를 가지면서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도 하고, 회사 험담도 나누고, 서로 고마움을 전하고, 나가서 잘되기를 기원하는 그런 인간적인 정이 있었단 말이죠. 근데 미국 와서 겪었던 그 첫 정리해고의 장면은 정말로 영화에서 보던 딱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짧고 어색한 인사를 나눈 그 날 이후 그 동료와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반년쯤 후에 우연히 라스베이거스의 커피숍 앞에서였는데, 그전까지는 그냥 딱 그 자리에서 굿바이하고 6개월 넘게 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실제로 제 옆 사무실 동료가 나가는 것만큼 생생하지는 않았지만, 건네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어떤 회사에서는, 해고 통보를 받은 직원에게는, 보안 요원이 따라붙어서 사무실 바깥에서 짐 싸는 동안 기다리고 있다가 회사 건물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는 (영어로는 Escort 해 준다고 하더군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말로는 회사의 재산 보호 및 혹시라도 감정이 격해져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는데, 이런 일에 익숙한 미국인 직원들마저도 그건 너무 비인간적인 방식이었다고들 하더군요.


저의 경우엔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휴먼 터치가 부족하긴 했습니다. 저희 조직을 맡고 있던 여자 부사장님과 화상 회의를 통해서 오전 9시 반에 전화로 통보를 받았으니까, 얼굴 보고 면담을 하는 것에 비하면 좀 거시기했지요. 이건 제가 주변 미국 친구들한테도 물어봤는데, 전화로 Layoff를 통보받았다고 하니까 좀 너무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다들 저랑 친한 친구들이라 오버해서 분개를 한 건지는 모르겠네요.   ^^


통보를 받은 후에 인사부 담당자의 설명을 30분 정도 듣고 나서, 그 친구가 그러더군요. 이 시간 이후에 언제든 사무실을 떠나도 된다고요. 보안 요원이 들어와서 저를 감시하는 그런 수준의, 강제 퇴출의 의미라기보다는, 심적인 충격이 클 것이고, 더 이상 업무를 보지 않아도 되니, 간단히 개인 물품만 챙겨서 집에 돌아가도 된다는 그 정도의 의미였습니다. 처음에는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하고 좀 멍하게 있다가, 거의 기계적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런저런 정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작업 내용들 백업받고, 회사 서버에 올려놓을 자료들 정리해서 올려놓고, 바로 전주에 다녀온 출장 관련된 비용 정산하고, 뭐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잡일을 하다 보니 몇 시간 지나더군요. 그다음에 같은 사무실에 친했던 직원들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소식을 전하고, 어떤 친구랑은 30분 이야기하고 어떤 친구랑은 짧게 작별 인사만 나누었지요.


그다음 며칠간, 작은 그룹, 중간 그룹, 그리고 제일 컸던 것은 마침 저 있던 샌디에이고에서 Project Manager Training이 있어서 전 세계에서 50명 넘는 친구들이 와 있었는데, 그 저녁 자리에 초대를 받아서, 유럽이나 아시아 혹은 미국 다른 주에서 온 오래된 동료들과 식사도 하고 술도 한잔 하면서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일주일을 보내면서 좀 의외였던 것은 생각보다 화가 나지는 않더라는 것입니다. 이 통보를 했던 부사장님 하고 바로 전 주말까지 라스베이거스에서 중요한 고객 미팅을 같이 했었는데, 그 주에 귀띔이라도 해 줬다면 좀 더 그 시간을 유용하게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섭섭함은 있었지만, 반면에 이런 일의 특성상 저에게 미리 알려줄 수는 없었다는 것도 이해했거든요. 


화를 내는 대신, 오히려 제가 본 다른 정리해고 케이스와 다르게, 마침 한국에서 온 직원과 소주도 한잔하고, 같은 사무실 직원들과 회식도 즐겁게 했고, 전혀 생각지 않게 전 세계에서 온 동료들과 한 번에 만나서 신나게 놀고 서로 계속 연락하자면서 송별회를 했던 것은, 그래도 제가 이 회사에서 생활 잘했고, 주변에 저를 아껴주는 동료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혼자 우울하게 있었으면 매우 힘들었을 시기를, 첫 일주일은 주로 동료들과, 그리고 그 후 일주일은 주변의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잘 넘긴 것 같습니다.


그렇게 2주를 잘 놀고먹고 마시면서 보내고, 이제 3주 차인데, 지금은 차분하게 다음 스텝을 계획 중입니다. 회사 한 군데와 인터뷰를 봤고, 몇 군데 더 이력서를 보냈고, 그와 병행해서 창업과 관련된 아이템 고민 및 도메인 등록을 마쳤습니다. 좀만 더 아이디어를 가다듬은 후에 법인 등록까지 할 생각입니다. 곧 한국에도 한번 다녀올 생각이고요. 본의 아니게 회사를 떠나게 되었고, 이 혼란함을 아직 완전히 받아들이고 극복했다고 하기는 힘듭니다만, 오늘 아침에 법적인 문서에 사인을 하고 나서는, 전 회사 생각은 이제 그만 하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집중을 하려고 합니다. 


오히려, 회사 다닐 때는 우리 회사가 갖고 있는 솔루션, 그리고 우리 회사가 밀고 있는 전략에 따라서 제가 하는 일의 거의 대부분이 정해지는데, 이제는 좀 더 자유롭게, 진정으로 제가 옳다고 믿고 즐길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면에서 설렘마저 느끼고 있습니다. 도메인 등록하고 워드프레스 배워가며 홈페이지를 만드는 등, 해보지 않은 낯선 일들을 앞으로 많이 하게 되겠지만, 이런 모든 일들을 내가 주도적으로 결정을 해 가면서 열심히 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남을 탓하거나 할 것 없이 온전히 제가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만큼이나 매우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좀 더 진지한 고민은, 취업을 할 것이냐 창업을 할 것이냐, 아니면 양다리를 걸칠 것이냐 하는 부분인데, 이 결정을 최대한 미루고, 그 사이에 이것저것 평소에 해 보고 싶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시도해보면서 지낼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저절로 저에게 맞는, 그리고 상황에 맞는 올바른 길이 보이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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