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중심치료와 내담자중심 개입
Carl Rogers(1902-1987)는 어린 시절을 돌이키면서 친밀하고 따뜻한 인간관계를 가졌지만, 종교적으로 엄격한 집안에서 자라왔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엄격한 종교적인 규칙과 잣대로 인하여 다소 쓸쓸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그때 Rogers는 유명해지기 보다는 학문적으로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의 부모님은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Rogers를 가르쳤다. 매우 엄격하며 정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결과로 Rogers는 매우 수줍은 성격을 가지게 되었고, 다소 말이 없이 혼자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러한 가정적인 분위기에서 Rogers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살았고, 이로 인하여 15세 때 위장 질환을 앓게 되었다.
성격적인 부분으로 인하여 Rogers는 타인의 관심을 받기보다 혼자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이는 상당히 내성적으로 보이곤 했다.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해 돌아보며 상상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특히나 Rogers는 책을 좋아하여, 매우 총명한 아이로 소문이 났다. 특히 종교적인 부분과 반대되는, 과학적인 측면에서 두각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후 Rogers는 다양한 분야를 전공함으로, 여러 전공의 높은 위치까지 도달했고, 당연히 Rogers의 호기심과 상상력,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성격이 이를 가능케 하였다. 심리학이 아니더라도 Rogers는 다른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며 자신의 이론을 펼쳤다.
맨 처음에는 농업을, 그 다음은 역사를, 종교를, 그리고 마침내 심리학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 당연스럽게도 이 모든 학문들은 Rogers의 이론을 만들어내는데에 기여했고, Rogers의 인간중심치료에 녹아들어가 있다.
대표적인 부분으로 심리학의 이론을 창시함에 있어서 자신의 인문학적 소양과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였다. 또한 농업을 하며 느꼈던 ’식물이 물을 주면 저절로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모든 생명 안에는 성장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이것은 이후 Rogers의 이론의 기반이 되는 ’실현화 경향성‘의 토대가 되었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Rogers는 또한 신학을 전공하기도 하였다. Rogers가 마냥 처음부터 심리학에 관심을 보인 것은 아니다. 농업을 전공하다 이후, 흥미를 잃고 기독교를 전공하며 목사가 될 준비를 하였다.
그 과정에서 Rogers는 자신의 신앙과 가치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이후 Rogers는 “종교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인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것이지, 거기에 중요한 것은 종교가 아니고 인간이다.”라 하였다. 신학과 반발되는 자신의 신념을 가지며 Rogers는 이후 자신을 얽매이지 않는 학문을 찾기 시작하였는데, 그 때 선택하게 된 것이 심리학이었다.
신학계에서는 Rogers를 반발하며 많은 논쟁과 언쟁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60년대 미국 시카고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흔히 심리학계에서는 이를 “쌍칼의 싸움”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인간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다.”라고 말했던 Carl Rogers와 “인간은 타락하여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없다”라고 말했던 Karl Barth가 격렬히 논쟁했던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하여 이 당시에 보여지는 심리학적 요소와 신학적인 요소의 갈등이 얼마나 깊었는지 보여준다.
심리학을 전공하면서도 Rogers는 다양한 어려움을 겪었는데, 당시에 심리학계에는 Freud를 잇는 정신분석학파와 Pavlov를 잇는 행동주의학파가 주요 심리학의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Rogers는 Freud가 말한 환원주의, 즉 인간은 마치 기계처럼 구성이 되어있으며, 모든 정신적인 부분을 하나씩 분석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모든 분석을 마치면 다시 한 명의 사람을 전체적으로 보며 고장난 부분을 찾자는 전반적인 인간에 대한 가치관을 반대하였다. Frued의 이론을 전반적으로 “과도한 분석”이라 평가했고, 현상학적인 관점을 내세우며 자신의 치료이론을 굳혀나갔다.
물론 Frued 또한 본인만의 생애를 통하여 자신의 삶이 “과도한 분석”을 만들어 냈는데, 의사로 활동한 Frued는 뇌 과학에 대하여 전공할 때에, ’마치 국경선이 나뉜 지도처럼 생각하는 부분이 나뉘어 있는 뇌‘를 보고 회의감을 가졌다고 한다.
사람의 신체기관은 한 부분마다 유기적으로 알 수 없으며, 수많은 상호작용 속에 Frued는 성적인 힘, 즉 Libido와 같은 무의식적 욕망이 존재한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성적인 힘은 비단 성욕을 지칭하는 게 아닌, Freud에게 있어서 성적 욕망이란 사람을 살아가게 만드는 삶의 본능(Life Instinct)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사회적으로 억압하며 감추는 과정에서 강력한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Frued의 관점을 반박했는데, 치료하는 사람이 주도적으로 해결하고, 위에서 아래로, 해결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치료자중심”의 관점이 Frued의 이론의 핵심이 되었다.
Rogers는 이와 반대로 “내담자중심”의 관점을 강조했는데, 그의 인문학적 전공 소양이 이를 차지했다. Rogers의 현상학적 관점은 내담자가 “어디가 아프고 어떻게 해결할 지”가 문제가 아니라 “내담자가 배가 아프다고 소리치면 배가 아픈 것이고, 머리가 아프다고 한 것이면 머리가 아픈 것”이라 할 수 있겠다.
Frued와 Rogers의 관점이 각각 가지는 의미가 존재하겠는데, Frued 입장을 취하면 강압적이더라도 해결중심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겠지만, 그것은 인간적인 태도가 아닐 수 있겠다. 진정 내담자가 원하는 것을 짚는 “인간적인 태도”를 Rogers는 요구한 듯 하다.
Rogers의 현상학적인 관점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그의 이론적 배경을 담을 수 있는 동화가 존재한다.
“옛날에 보석을 좋아하는 공주가 살았다. 그녀는 세상의 모든 보석을 가지고 싶어하였고, 점차 욕심이 많아지며 세상의 모든 반짝이는 금붙이를 탐했다. 그러나 어느 보석도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에 대하여 공주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들을 요구하였다. 그 중 광대가 다가와 공주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보석을 주겠노라 했다. 광대는 공주를 따라갔고, 하늘에는 보름달이 크게 떠있었다. 광대는 보름달을 잡는 시늉을 하며 공주에게 달을 선물한다 하였고, 공주는 웃으며 만족하며 기뻐하였다.”
’달과 공주‘라는 동화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진정 원하는 엄청난 보석을 주는 것도 방법이지만, Rogers가 원했듯이, 공주가 원하는 마음을 알아주고 그에 응해주는 것. 그것이 핵심이라 보았다.
Rogers가 Frued가 말한 기술적인 측면을 거부하게 된 이유가 있다. Rogers는 최종적으로 임상심리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10년이 넘도록 아동보호상담을 진행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진단 및 치료가 요구되는 수많은 아동들을 현장에서 목격했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극도로 학대받고 고통을 겪고 있었는데, 대다수의 경우가 환경적인 여건 또는 금전적인 요건 때문에 Frued의 정교하고 정신분석과 같은 장기간의 치료를 진행하기 어려웠다. 이에 대하여 Rogers는 매우 정교한 치료적 기법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찾기 시작한 듯 하다.
많은 아동과 청소년이 Frued의 ’무의식을 해석해주는 기법‘을 받아들이기보다, 그것을 부정하거나 거부하며 그저 자신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한탄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 과정에서 치료의 방향은 내담자에게 있으며, 내담자가 치료를 이끌어 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거기에 있어서 이후 Rogers는 비지시적이고 인간중심적인 치료를 지향하며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나이가 들고 Rogers는 ’만약 당신이 부모님에게 한 가지 자신의 업적을 말씀드릴 기회가 있다면, 어떤 것을 자랑할 것인가?‘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는 ’어머니는 자신의 이론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할 것이기 때문에 상상조차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는 기독교적으로 신실했던 Rogers의 집안이 얼마나 엄격하고 Rogers가 말했던 과학적인 부분이 Rogers의 어머니가 말했던 종교적인 측면에 반대되는 부분이 있다는 이유라 생각할 수 있다.
재밌게도, 어머니가 Rogers에게 대하는 자세가 매우 엄격하고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수용하지 않는 다소 굳건하고 고지식한 면모를 보였는데, 이를 반영하듯 Rogers는 인간중심치료의 핵심은 판단없는 “무조건적 경청과 수용”이 필요하다 하였다.
Rogers는 생을 마감하기 전, 15년 정도를 세계평화를 위해 힘쓰곤 했다. 이러한 그의 열정은 그가 노벨 평화상 후보로 오르게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일깨웠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Rogers를 평범하고, 진짜 사람같은 사람이라고 평가하곤 했다. 그는 자신이 믿는 이론 그대로 타인을 사람 대하듯이 했으며, 자신의 신념대로 자신의 삶을 살았다.
Rogers는 심리치료사에게 가장 영향력을 미친 사람 중 한명으로 꼽히며, 전반적인 심리치료에 관점을 바꿔놓은 “조용한 혁명가”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인본주의적 접근은 정신분석과 행동주의와 별개로 나뉘는 “제 3의 세력(Third Force)”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Rogers는 이런 면에서 자신을 잘 알고 있었으며, 편안한 모습을 자주 보이고 가식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Rogers의 딸인 Natalie Rogers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인간중심 표현예술치료를 발전시켰다.
Rogers의 초창기 치료이론에 비롯하여, 전반적인 모든 그의 치료기법과 사람에 대한 관점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 바로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감이다(basic sense of trust in the client’s ability to move forward).
앞서 말했듯이, Rogers는 농경 대학을 전공하며, 식물이 적절한 조건이 갖춰지면 알아서 자라날 힘이 존재하는 것을 보았다. 이와 같이 Rogers는 ‘환경이 갖춰진다면, 문제를 가진 개개인은 누구나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한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가능성의 믿음이 Rogers의 모든 이론과 치료기법을 꿰뚫는 핵심주제가 된다.’
그는 수 많은 상담을 진행하며, (특히 아동상담경험이 그에게 영향을 크게 미친 듯 하다) 모든 문제를 가진 한 사람은 스스로가 문제를 헤쳐나갈 힘이 있다고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은 믿음을 받아야하고, 개인의 지혜와 삶의 지략이 있으며, 자기 이해능력이 있다고 굳게 믿었다.
특히 Rogers가 언급했던 ‘전문가의 위치’에서 내담자를 바라볼 때에, 서로의 힘의 불균형이 존재하게 된다. 흔히 우리가 병원을 찾아갈 때에, 병원에 있는 의사를 ‘나보다 지위 또는 지식의 수준이 높은 전문가’로 판단하게 되며, 보다 수동적이고 같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있어서 친밀감을 형성하기 어렵다.
즉, 이러한 전문가적 태도는 치료자-내담자의 관계 형성에 있어서 라포형성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치료 목표를 향해 나감에 있어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Rogers는 비전문가의 태도를 가지고 판단을 배제하여 내담자를 바라보도록 이야기하였다.
특히, 그는 치료자로써 가져야 하는 세 가지 자세를 강조하였는데, 이는 개개인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된다고 강조하였다.
Rogers가 언급한 다음 3가지 자세에 대하여 정확한 언어적인 맥락을 이해하기 위하여 영어 원문의 단어를 언급하도록 하겠으나, 이는 언어적 맥락을 좀 더 수월하게 이해하기를 위함일 뿐, 충분히 이해했다면 넘어가도 좋다.
1. Congruence (Genuineness, or Realness)
2. unconditional positive regard (acceptance and caring)
3. accurate empathic understanding (an ability to deeply grasp the subjective world of another person)
다음 세 가지 자세에 대한 맥락적인 해석을 첨부하겠다.
1. Congruence (Genuineness, or Realness)
첫 번째, Congruence는 일치성이라 흔히 알고 있다. 이는 선뜻 한눈에 이해되지 않을 수 있는데, 무언 다른 두 개의 존재가 동일선상에 놓여있다는 어감을 표한다.
Congruence는 이러한 이유로 서로 조화되고, 같이 적합하게 어우러진다는 느낌을 주는 단어이기도 하다.
수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Congruence, 또는 Congruency라고 하면, 흔히 도형의 합동을 생각하기 쉽다. 어떠한 두 도형이 같음을 표현할 때에, 서로 같음을 입증하기 위한 조건을 합동조건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즉, Congruence는 내담자에 대해 내담자와 치료자가 똑같아지며, 같이 합쳐진다는 어감을 준다. 허나 Rogers는 상당히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자세히 표현하기를 바랬는데, Genulneness, 또는 Realness라는 표현을 첨부하였다.
이는 Rogers가 명확하게 인지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내담자의 삶을 살아오지 않았음으로 그에 대해 똑같은 사람이라고 치부하며 같은 삶을 살아오고, 내가 내담자와 똑같다고 자부할 수 없는 법이다.
이에 대하여 Rogers는 내가 내담자와 동일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내가 아픈 것처럼 “마치~인 것처럼(As if~)”의 태도를 강조하였다.
Genuineness는 진짜인, 거짓 없는 무언가 나의 본 모습을 드러나낸 것이다. 내가 내담자와 똑같아 질 수는 없더라도 내담자의 모습과 반응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나의 반응을 드러내는 것이다. Realness 또한, 진실로써, 실제적으로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Rogers는 내가 내담자가 되지 않을지라도, 진실성 있게 내담자와 함께 걸어가는 것을 바랬다. 그런 태도를 통해 내담자의 고통속으로 들어가기를 바랬던 것이다.
허나 중요한 것은, 내담자의 모든 삶의 문제를 내 것인 것마냥 생각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내가 내담자의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순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시로써, 내담자가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에, 불쌍함을 느낀 치료자가 금전적인 도움을 준다면, 치료윤리에도 어긋나고, 치료적으로 올바르지 않음은 확실하다. 만약 내담자가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이후에 계속적으로 돈을 달라고 은연죽으로 요구한다면 문제가 될 것임이 확실하다.
이러한 요소에서 Rogers는 명확한 선을 긋기를 바란 듯 하다. 내담자의 삶에 파고들어 청양고추와 같은 매콤하고 쓰라린 고추를 씹어주되, 단 그것을 삼키지 말라고 조언하였다.
치료자-내담자의 라포형성을 형성함으로써 굳건한 동맹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지, 문제를 위하여 라포형성이라는 명목하여 내담자의 삶에 침투한다면, 그것은 치료가 아니라 ‘내담자의 지인’으로써 개인의 삶에 침범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상담을 진행함으로써, 내담자에게 느껴지는 감정을 중시해야 한다. 제 3자의 시선(Third Eye)으로 치료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내담자는 치료자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치료자는 내담자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바라보아야 한다.
이는 흔히 전이와 역전이라고 표현되곤 한다. 전이는 내담자가 치료자에게 느껴지는 감정, 역전이는 치료자가 내담자에게 느껴지는 감정이다.
전이와 역전이가 긍정적인 감정이라면 그것을 무시해도 좋다.(ex. 치료자에게 감사함을 느낌, 내담자를 자신의 아들처럼 아끼고 싶음) 단, 그것이 부정적인 감정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 주제에 집중하고 그것과 관련하여 내담자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치료중에 내담자가 분노를 표함, 내담자의 말들이 귀찮고 지루함).
전이와 역전이 속에 무엇이 투사되는지, 투사적 동일시가 일어나는지에 대하여 치료자는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한다. 정확한 정신분석적 진단과 해석은 치료의 방향을 통찰지향적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단, Roger가 언급했듯이, 이것은 전문가적 위치로써 언급을 하는 게 아닌, 즉 해석중심이 아닌 내담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내가 느낀 진정성 있는 방향으로 언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치는 치료시간동안 치료자-내담자 사이에서 일어나야 하며, 이것은 서로가 합동하고, 진실성 있게 시간을 보내야 한다.
거짓된 모습없이 내담자의 내적 경험과 외적 표현이 일치하며, 내담자와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감정, 생각, 반응, 태도 등을 전부 표현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줘야 한다.
진정한 반응은 효과적인 치료의 핵심이며 시작점이다. 이에 대하여 Mearns and Cooper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두 사람이 완전히 진실하고 열린 마음으로 함께 어우러질 때, 우리가 함께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진정어린 마음은 내담자의 본보기가 된다. 내담자의 관계속에서 분노, 좌절, 매력적인 요소, 지루함, 짜증 등 다양한 것이 존재할 수 있으나, 이것 모두를 솔직하게 반응을 공유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의 반응을 공개하는 것에 있어서 내담자에게 ‘시기적절하게’ 자신을 나타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많은 인간중심치료를 사용하는 치료자들이 빠지는 함정이 되곤 하는데, 너무 진솔하게 반응을 함으로 치료를 망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라포를 통해 치료를 이루어가는 것이지, 치료를 위해 라포형성에 전적으로 매달리는 꼴이 될 수 있다. 만약 내담자의 수준과 상태를 보고, 적절한 자신의 진솔성을 천천히 드러낼 것이 요구된다. 이것은 마치, 인간관계를 기피하는 우울증 환자에게 반갑다며 덥썩 포옹을 하는 것과 같다. 상황에 따라서, 라포형성이 얼마나 되었는지 판단하여 치료자는 행동에 얼마나 진실성을 첨가할 것인지 나타내야 한다.
또한 진실하는 방법 또한 중요한데, 내담자에게 화가 난다고 하여 화를 내는 것이 Rogers가 바란 진실성이 아니다. 인간중심치료는 개인의 삶을 발전시키는 ‘치료과정’이 되어야 하지 ‘솔직한 잡담’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어떠한 부적절한 감정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을 표출하는 것이 아닌, 내담자가 그 주제에 대하여 다룰 수준인지 판단하고, 내담자의 발달수준 및 전반적인 심리양상을 고려하여 진실성있게 대해야 한다.
이는 치료자의 윤리적인 문제에 부딪히곤 하는데, 내담자에게 강렬하고 부적절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성적인 매력, 또는 아들처럼 아낌) 자신을 조심하며 이를 경계할 필요가 있는데, 내담자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를 판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Rogers가 말하는 진실성은 가식적인 “상담기술”이 아닌 진정성있게 공감하는 자세를 말하였다. 가식적으로 공감하는 척 하는 상담은 아무리 기술이 좋다한 들, 효과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치료자가 “온전히 자기실현을 한 치료자”만이 인간중심치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초심자들이 있는 힘껏 내담자를 대할 수 있으며, 지식에 기반하여 내담자를 판단하지 않고 있는힘껏 해결하려 들기 때문이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치료자 또한 그렇다. 다만 그 과정에서 최대한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면, 신뢰가 꽃 필 것임을 Rogers는 말한다.
2. unconditional positive regard (acceptance and caring)
Regard는 흔히 어떠한 감정이나 태도를 가지고 무언가를 보고, 판단하고, 평가하고, 어떠할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즉 무언가 상대방에게 자신만의 해석의 견해가 들어가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다.
여기서 재밌게도, Unconditional한 자세를 유지하라고 언급하였는데, Conditional이라 함은 조건을 따지고, 기준치에 따라 평가를 하는 자세이다, 즉, Unconditional Positive Regard라 함은 조건을 배제하고, 어떠한 규칙이나 기준없이 긍정적인 자세로 내담자를 바라보라는 뜻이 되겠다.
이를 흔히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이 Rogers는 내담자를 Regard(판단)하되, Unconditional(판단 없는 자세)로 보아라고 하였다. 자신의 편견을 내려놓고 좋은 방향으로 내담자를 믿어주는 자세를 Rogers는 바란 듯 하다.
추가적으로 Acceptance, 받아들이고 동의하고 수락하는 자세와 Caring, 배려하고 보살피는 자세를 언급하였다.
어떠한 문제에 대하여 내담자를 판단없이 바라보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정말로 궁휼한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어쩌다 저 지경까지 갔을까?). 이것은 단순한 동정이 아닌, 인간에 대한 전적인 애정과도 같다. 자신의 판단이 사라지고 내담자의 문제를 바라보기 시작하면,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애정이 나타나곤 하는데, Rogers는 그것을 바란 듯하다.
판단없이 좋은 방향으로 믿어주되, 그 결과는 Acceptance적이고 타인을 Caring 하는 마음이 나타난다고 Rogers는 말하는 듯 하다.
만약 타인에 대하여 부정적이거나, 올바르지 않은 나쁜 감정이 든다면, 그것은 둘 중 하나이기 마련이다.
1) 타인을 수용하지 못했다.
2) 나 자신을 수용하지 못했다.
위의 두 가지는 참으로 당연한 것이, 타인의 삶이 이해가 안 된다면, 그것은 타인의 삶을 내가 받아들이지 못했거나, 아직 나 조차도 내 삶을 이해하지 못해서 타인의 삶을 이해할 마음의 공간이 없는 것이다.
만약 타인에 대해 긍정적이고 궁휼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문제를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내담자에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티인을 수용함에 있어서, 나 자신을 수용함에 있어서 어떤 부분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 고려해야 한다.
타인을 수용함에 있어서 마치 ‘엄마의 보살핌’을 떠올릴 수 있다. 어머니의 사랑은 좋고 나쁘고의 판단에 오염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며 애정하는 자세이다.
치료자가 보살피는 자세에 있어서 ‘내담자가 나에게 고마워 해야할 것’인 것처럼 사용하게 된다면, 내담자의 변화는 억제될 것이다. 치료자들은 내담자의 요구와 표현에 대해 어떠한 제약 없이 내담자를 소중히 여기고 따뜻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언제든지 당신을 받아드리겠습니다”라는 느낌보다는 되려, “있는 그대로 당신을 보겠습니다.”의 느낌과 같다. 치료자는 내담자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담자는 치료자의 자세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경험들을 숨김없이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수용을 하는 것은 내담자가 “그러한 신념이나 감정을 가질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지 모든 행동에 대하여 승인하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비판받거나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모든 행동이 수용되고 받아들여질 필요는 없기 때문인데, Rogers에 의하면 내담자를 깊게 보살피고 소중하게 여기며, 진실성있게 받아줄수록 치료가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하였다.
또한 Rogers는 모든 치료자가 항상 진정 어린 마음으로 사람들을 전부 담아낼 수 없음을 알고 있고,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치료자들이 내담자를 존중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진정성있게 대하거나, 적극적으로 혐오감을 표출한다면, 치료적인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라 언급했다.
3. accurate empathic understanding (an ability to deeply grasp the subjective world of another person)
Accurate라 함은, 수치적이거나 계량적으로 정밀하고 정확한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에 나아가. Rogers는 Accurate한 동시에 Empathic(공감적인)한 Understanding(이해)를 바라였다.
이에 대하여 우리는 공감에 대한 말을 좀 더 자세히 파고 들어갈 필요가 있다.
공감(共感)이란 같을 공共, 느낄 감感이다. 한국적인 표현 요소로 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것이다. 허니 이는 Rogers가 말한 공감적인 이해에 대하여 세세히 표현하지 못한다.
Empathy는 독일어 Einfühlung에서 비롯되었다. Ein은 Into, fühlung은 Feeling을 의미한다. 즉, Empathy라 함은 타인의 기분 속으로 들어감을 의미한다.
단 여기서 Sympathy(연민)과는 다른 어원적 차이를 보인다. Sym은 Together를 의미한다. 즉 Sympathy는 타인과 동일한 상태로 감정을 느끼는 것이며, Empathy는 내가 능동적으로 상대방의 감정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Empathy는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전적으로 노력하는 상태를 의미하며, Sympathy는 내가 상대방과 동일해져서 같은 것만 같이 움직이는 것을 뜻한다. Rogers는 이러한 자세한 부분을 이해하길 원했는지, an ability to deeply grasp the subjective world of another person(타인의 주관적인 세상을 깊이있게 파악해주는 능력)의 말을 붙였다. Grasp라 함은 무언가를 있는 힘껏 움켜쥐고, 완전히 꽉 잡아붙들어 매고, 통제하며, 완벽하게 내 손안에 있는 것처럼 파악함을 뜻한다. 한 사람이라는 삶의 세계를 있는 힘껏 파악해주는 것을 Rogers는 바란다.
즉、Empathy를 통해 내가 능동적으로 타인의 삶에 들어가는 것, 단 그것이 동정에서 비롯되어 나와 타인이 구분되지 않고 서로 엉겨붙은 상태가 아닌, 나는 나 자체로써 타인과 함께 걸어갈 수 있도록 깊이있게 상대방을 주시하는 자세를 요구한다.
치료자의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내담자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특히 지금-여기에서 느껴지는 서로의 감정을 감지하고 탐색하는데 노력을 해야한다.
내담자와 라포형성이 이루어질수록 더 가까워지고, 더 강렬하게 느끼며, 부조리한 부분을 인식하고 해결하도록 이끌어내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Rogers는 치료자가 ‘내담자의 보고 느끼는 것들’을 파악할 수 있을 때, 치료적인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한다. 단 이 과정에서 치료자-내담자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Rogers는 공감이 가진 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1. 내담자 자신의 경험에 주목하고 가치를 부여하게 한다.
2. 이전의 경험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3. 자신과 타인, 세상에 대한 인식을 수정한다.
4. 선택과 행동에 있어서 자신감을 가진다.
정확한 공감을 한다는 것은 치료자가 내담자의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마치 내가 내담자인 것처럼 느끼는 것을 말한다. 명백한 감정에 대한 인식을 넘어 내담자가 겪은 경험을 덜 명확하게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공감적인 이해력은 내담자를 이끌어내는 치료자의 능력이다. 공감이 정확할수록, 치료는 효과적으로 일어난다. 효과적인 깊이있는 공감은 내담자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 이상을 요구하는데, Watson은 “완전히 공감하는 것은 내담자의 경험하는 것의 의미, 느낌을 이해하는 것을 수반한다”고 하였다. Watson은 연구를 통해 ‘공감대’가 심리치료의 진행에 있어 가장 강력한 요인이라 입증했다. 그리고 Watson은 치료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치료자들은 내담자의 요구에 반응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가슴으로든 머리로든. 공감대가 대인관계, 인지적, 정서적 요소에서 작동할 때 치료자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술도구가 되곤 한다”
위와 같은 자세로 내담자에게 접근한다면 도움을 받는 내담자는 자신의 방어적인 태도를 내려놓고 개방적이게 될 것이다. 라포형성이 되면, 자신의 상처와 고민에 대해 진솔있게 개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의사가 병원의 환자를 진찰하는 과정과 같은데, 만약 가슴에 깊은 상흔을 입고 피를 흘리는 환자가 온다면, 의사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옷을 벗기고 상처가 깊은지, 출혈이 심한지 등을 살펴볼 것이다. 이는 치료적 관점에서 내담자를 바라보는 것이다.
Rogers가 바라는 것은 환자의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있어서, 치료자로써 갖추어야 하는 태도를 강조했다. 가슴에 상처가 나있다고 하여서, 그 사람의 옷을 벗긴다면 내담자는 놀람과 당혹스러움의 감정에 휩싸일 것이다. 설령 치료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들, 내담자 개개인이 만족할리는 만무하다. 내담자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부분에 집중하고, 내담자와 라포를 형성함으로써 내담자 스스로 상처를 드러내게 하는 자세를 Rogers는 강조했다.
Rogers가 말했듯, “Human beingngs are essentially forward-moving organisms drawn to the fulfillment of their own creative natures and to the pursuit of truth and social responsiveness(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창조적인 본성을 추구하고자 하며, 사회적인 타인의 반응에 이끌리는 앞으로 나아가는 생명체이다)의 말처럼, 사람에 대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우리가 타인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이는 실존주의 심리치료와 매우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실존적 심리치료와 인간중심치료의 공통점을 다양하게 꼽을 수 있으나, 대표적으로 세 가지 이유를 들을 수 있다.
첫 번째, 실존적 심리치료는 라포형성을 치료의 필요충분조건이라 보았다. 치료 과정에서 반드시 관계형성이 굳건하게 구축이 되어있얻야 하며, 내담자와 치료자의 활발한 행동과 참여를 요구하였다.
이는 죽음이라는 주제에 있어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에 비롯된 듯하다. 치료자-내담자의 관계를 떠나서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여행의 동반자“로 서로에게 굳건한 관게형성이 필수적이라 보기 때문이다.
두 번째, 라포형성이 형성되고 내담자와 신뢰관계가 형성되면, 내담자가 주도적으로 문제에 대해 이끌어 나가도록 유도한다. 실존적 심리치료(물론 학자에 따라 다양한 세부요소가 다르다)가 나에게 주는 인상은 ”내담자와 신뢰관계를 형성한 후, 내담자의 문제에 대해 은근슬쩍 선택과 책임을 맡긴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이는 무책임에 비롯된 방임이 아닌, 내담자를 한 사람으로 믿어주며 문제해결에 주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자세이다.
세 번째, 실존적 심리치료는 치료자에게 높은 수준의 인문학적 소양을 요구한다. 실존적 심리치료는 정신분석 심리치료의 반발로 생긴 치료적 관점이며, Ludwig Binswangerd와 Medard Boss에 의하여 치료적인 활용이 시작되었다.
죽음이라는 실존적 조건 속에서 우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는 치료자는 높은 수준의 인문학적 지식을 갖추며 대화를 진행해야하는데, 이는 철학적, 문학적, 심리적인 다양한 요소를 포괄하는 인생에 있어서 통찰을 넘어선 지헤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인간중심치료와 실존적 심리치료가 그러하듯, 치료자는 내담자에게 신뢰를 구축하고 문제를 주도하도록 이끌어나갈 책임과 선택을 맡긴다. 이는 수동적인 고전적 심리치료와는 별개로 스스로 변화하는 능동적인 태도와 행동변화, 즉 자기주도적 변화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해석을 줌으로써 내담자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의 해결책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 자신이 끊임없이 자라나며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한 길을 같이 찾아가는 지속적인 투쟁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Rogers는 다른 심리학자처럼 성격의 구조적인 측면을 분석하려 하지 않았다. Rogers는 끊임없는 성격의 발달과 변화적인 모습에 초점을 두었으며 전반적인 인간에 대한 이해와 수용을 언급하였다.
인간중심치료는 고전적인 심리치료와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인다.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의 해결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개인의 높은수준의 심리적인 독립과 통합을 목표로 한다.
이는 사람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지, 사람이 나타내는 표면적인 문제를 보는 것이 아니다. Rogers에게 있어서 치료의 목적은 문제를 단순히 해결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멈추지 않고 앞으로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본인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바라곤 하였다. Rogers는 이러한 이유로 종종”어떻게 하면 진짜 당신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진짜 당신이 바라고 싶은 것이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진정한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습니까?“와 같은 질문을 하곤 했다.
Rogers에게 있어서 치료의 본질적인 목표는 내담자가 온전히 기능하는 사람(a fully functioning person)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담자의 능력을 온전히 스스로 깨닫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치료자에게 요구된다고 보았다.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가면과 같은 모습의 이면에,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개발하도록 해야하며, 라포형성이 굳건하게 된 치료적인 장소에서 안전함을 느끼고,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쳐다보는 과정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Rogers는 현실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기능적인 단계에 접어든 사람들이 나타나는 모습이 존재한다고 하였다.
(1) an openness to experience (삶에 대한 열린자세)
(2) a trust in themselves (자신에 대한 신뢰)
(3) an internal source of evaluation, (내적의 발전적인 강점)
(4) awillingness to continue growing. (성장을 지속하겠다는 의지)
위의 모습들이 나타난다면 그 장점들을 이끌어내고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수용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인간중심치료의 기본목표이자, 치료적 성공이라 할 수 있다.
치료자는 내담자에게 자세히 문제를 찾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치료의 기반은 치료자-내담자 사이의 라포형성을 기반으로 서로 함께 굳건히 문제를 해결해 나가도록 나가야한다.
이에 대하여 인간중심치료자에 기반한 치료자들은 내담자가 변화하고자 하는 목표를 구체적으로 자신이 설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 모두 동의하지만, 어떤 것이 내담자의 도움을 위해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인가에 대하여는 의견이 전부 다르다.
이는 Rogers가 이후 언급했듯이, 내담자에게 요구되는 치료가 존재한다면, 하나의 기술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에게 필요한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인간중심치료가 현재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치료적인 기법이 대단한 것이 아닌, 치료자의 자세에 대하여 언급하며 심리치료의 신비성과 전문적인 위상을 낮춤으로 일반인에게 쉽게 다가가게 하는 것에 있다.
이에 대하여 내담자에게 필요하다 여겨지는 치료적인 과정이 존재한다면, 어떠한 것이든 사용할 수 있다. 애초에 인간중심치료를 사용하는 치료자의 역할은 내담자를 ”무언가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의 근본적인 태도를 대하는 자세에 기반한 기술들이다. Rogers에 의하면, 인간중심치료는 치료사들의 지식이나 이론, 기법적인 기술력보다는 내담자의 성격적인 변화를 촉진하는 것에 있어서 전적으로 매달린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중심치료를 사용하는 치료사들은 자신을 내담자의 변화도구로 사용하곤 하는데, 내담자와 첫 면담을 진행할 때에 치료자의 역할은 바로 ‘역할이 없는 역할’이어야 한다. 이것은 전문성을 잃어버리는 방임의 태도가 아니라, 내담자의 변화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자세이다.
치료자는 내담자가 스스로 참여하여 본인이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되어 문제에 접근하여야 한다. 그 순간에 겪는 직접적인 문제에 대해 집중하고, 무엇보다도 치료자는 그 과정에 있어서 내담자에게 진실성있게 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역할은 내담자에게 있어,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며 함께하고, 받아들여지고, 같은 감정을 느끼며, 자신의 진짜 모습들을 찾아 나서는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된다.
치료자는 내담자를 진단적인 관점에서 판단하는 대신 ‘그 순간 내담자의 세상’으로 들어가 내담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이러한 치료자의 인간에 대한 궁휼, 진정성, 존중과 수용, 이해하려는 태도등을 통해 내담자는 자신을 방어하는 태도를 내려놓고 이완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것이 내담자의 삶의 수준을 더 높은 수준까지 이끌어 내는데에 기여하게 된다.
자신이 이전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따뜻한 공감과 수용을 통해 내담자는 자신의 삶에서 ‘진정으로 내가 바랬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고, 타인이 거부했던 나의 일부를 되찾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Broadley는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치료자는 내담자를 통제하지 말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하였다. 특히, 내담자 중심 치료는 진단, 치료계획, 사례공식화, 전략적인 치료, 치료 기법 등 어떠한 부분에서도 치료사로써의 책임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언급했다.
또한 인간중심치료를 중점으로 하는 치료자는 자신의 경력을 내담자에게 자랑하거나 내놓지 않으며, 치료자가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질문을 지양하고, 캐묻는 탐색적인 질문을 회피하며, 내담자에 대한 행동을 해석하고 평가하지 않는다. 특히, 내담자의 생각이나 계획에 대하여 치료 기간 및 치료 횟수와 같은 규칙을 정하지 않는다.
치료적인 관점에 있어서 치료적 변화는 치료자의 기본적인 자세와 내담자 자신의 경험에 달려있는 것이다. 만약 치료자가 치료에 도움이 되는 올바른 환경을 조성한다면 내담자는 자신의 느낌, 신념, 행동 등 모든 전반적인 삶의 경험을 되돌아보며 탐색하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내담자는 문제를 가지고 ”불만족스러운“상태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치료자를 찾는다. 즉, 자신이 느끼는 인식과 현실을 살아감에 있어서 어떤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이것이 ‘불일치(Incongruence)’함이 존재함을 느낀다.
예를 들어 보자. 대학생인 학생 김씨는 자신의 낮은 성적(현실)이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자기인식)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심리상담사나 치료자를 찾을 수 있다.
김씨에게 요구되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현실적 자아)’ 그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모습은 무엇인지(이상적 자아)“ 그리고 ”남들이 보는 나의 모습은 무엇인지(기대되는 자아)“ 이 세가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만약 김씨가 터무니 없이 완벽한 A+로 도배된 학점을 바라며, 그러지 못한다면 이것이 진정으로 자신이 바라는 것이며,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안인지 되짚어 볼 수 있다.
Rogers는 이상적 자아(Ideal Self)와 현실적 자아(Real Self) 그리고 기대되는 자아(Expected Self)의 세 가지 모습이 일치할 때에 사람은 건강하게 살아간다고 말하였다. 김씨가 현재 불일치하거나 문제시 삼는 문제에 대하여 김씨는 불안함을 느끼거나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인간중심치료 치료자는 김씨에게 현재 문제가 존재함을 인식하도록 유도하거나, 적어도 현재 자신이 불편하여 무언가 변화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이끌어내도록 해야한다.
많은 내담자의 문제는 대부분 ‘통제력’에 달려있다. 삶의 통제에 실패하여 자신의 삶을 완전히 포기하거나, 앞으로의 삶을 통제하는데 매달리며 불안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내담자는 치료자에게 ”정확한 지시“를 통해 방법을 찾고 해답을 바라기도 한다. 허나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내담자는 인간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치료자-내담자의 굳건한 라포형성을 유지하고, 진정으로 내담자가 자신이 이해받았음을 관계속에서 확인하며 자신의 다양한 문제를 바라보게 된다.
그것을 넘어 내담자는 자신의 심리적 어려움을 넘어서, 자신의 삶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삶을 좀 더 자유롭게 살고 싶은 방법을 열망하고 나아간다. 상담이 진행됨에 따라 내담자는 더 많은 감정들을 찾곤 하는데, 특히 자신이 표현하는게 금지되었던 부정적이고 강력한 감정들을 치료자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꺼낼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즉 자신의 삶에 어떠한 감정들이 얼룩져 있고 삶이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 정확히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인생이 수용할 수 없었던 자신의 왜곡되고 양가감정의 상충되는 혼란스러운 감정들은 이내 치료자-내담자의 관게속에서 표현되고, 수용되며, 곧 삶에 녹아들며 통합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내담자는 자신 안에 숨겨져 있던 다양한 면모를 찾곤 한다.
내담자는 자신이 이해받고, 관계 속에서 수용된다고 느낄수록 덜 방어적이고 자신의 경험을 쉽게 꺼내곤 한다. 진정으로 안전한 대상 앞에서는 사람은 어떠한 방어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중심치료는 치료자에게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능력과 자세를 갖추도록 요구한다. 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수용되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올곧게 볼 수 있고 빛나고 아름다운 자신만의 삶을 향해 날아간다.
그 과정에서 타인이 금기시했던 것들에 대해, 남들이 자신에게 요구하던 모습에 대해 벗어나고, 진짜 자신을 찾으로 좀 더 진실된 방식으로 행동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내담자는 답을 찾고자 하기 보다는 자신의 삶을 위해 살아가기 시작한다. 현재 경험하고 있는 삶을 피부로 느끼며,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여기에서 느껴지는 자신을 생생히 느끼기 시작한다. 이 과정을 통해 내담자는 자신을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을 치료자와의 관계를 발판으로 나아가곤 한다.
요약하여, 인간중심치료는 내담자가 표현하는 표면적인 문제 이면에 존재하는 핵심적인 측면을 다룬다. 내담자가 삶을 살아가며 ”그래야만 했던“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탈출하도록 도운다. 이는 마치, 상처와 삶의 고통으로 인해 스스로를 감옥 속에 갖힌 내담자를 따뜻한 햇살을 비춰줌으로써, 제 발로 감옥 밖으로 걸어나오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유성과 주체성이 발달하면서 내담자는 심리적으로 성숙해진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만들고자 하는 ”실현화 경향성(Tend to become more Acualized)“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Tallman and Bohart는 ”내담자는 자가치유의 힘을 가진 ‘마법사들’이다. 치료자는 내담자가 마술이 작동할 수 있는 충분한 환경을 제공하는 보조자가 되어야한다.“라고 말하였다.
Rogers는 치료적 변화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에 대하여 라포형성에 기반하여 설명하였다. ”만약 내가 특정 종류의 관계를 제공할 수 있다면, 상대방은 그 관계를 자신의 가능성을 성장과 변화를 위해 사용할 것이다. 그리고 개인의 발전이 일어날 것이다.“ 이후에도 Rogers는 관계형성의 중요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설명하였고, 이후 ”인간관계 이외에 어떠한 것도 핵심적으로 사람의 긍정적인 성격의 변화를 줄 수 없다“라고 못을 박았다.
이것은 Rogers의 수십년에 걸친 경험을 바탕으로 세워졌으며, 오늘까지 이어지는 그의 인간중심치료의 핵심이 된다.
대략적인 과정은 다음과 같다.
1.치료자와 내담자는 심리적인 접촉을 한다.
2.첫 만남에서, 내담자가 내적으로 불안하거나 취약하다고 느끼는 ‘불일치’가 존재한다.
3.치료자는 이때 관계 속에서 진실성있게 내담자를 대한다.
4.치료자는 내담자를 무조건적으로 판단없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5.치료자는 공감적인 이해를 하며 이를 내담자에게 ‘정확히 파악하였는지’ 전달해준다.
Rogers는 다른 어떠한 조건도 필요하지 않다고 가설을 세웠고, 다음과 같은 최소 조건들이 만족된다면, 사람은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성격이 변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핵심조건은 내담자에 따라 달라지지 않으며, 치료에 있어서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언급하였다.
Rogers의 인간치료중심에서는 치료자-내담자의 힘의 균형, 즉 서로의 관게는 평등하다는 것에 기반하는데, 치료자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감추거나, 숨기고 비밀로 하지 않는다. 이것은 치료자를 높은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고, 심리적인 치료를 진행하는 신비스러운 사람으로 보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이해받는 관계 속에서 내담자는 치료자가 자신의 말을 진정으로 경청하고 있고,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있는힘껏 받아주려는 노력을 느끼면서, 치료자와 자신, 그리고 서로의 관계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한다.
치료자가 진실할수록 내담자는 자신의 가식과 방어적 태도를 버리고 자신 또한 진실성있게 치료자를 대하곤 한다. 치료자의 진심이 담긴 태도 하나하나가 내담자에게 물들 듯이, 진실성은 전염될 수 있다. 이러한 인본주의적인 태도는 치료자와 내담자, 두 사람 모두 인간성에 대한 측면을 일깨우며 서로가 인간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는 동반자로 여기며 성장과정에 있어서 가볍게 앞으로 발걸음을 내닫을 것이다.
치료자가 인문학적으로, 그리고 경험이 많고 성숙할수록 내담자와의 여행을 통해 여정의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것은 내담자 뿐만 아니라 치료자의 삶에 있어서도 자신의 인생의 경험을 넓히는데 도움을 주고, 자신의 삶 또한 증진시키는 계기가 되곤 한다.
Thorne은 치료과정을 여행에 비유하며”치료자는 자신이 여행한 것보다 더 멀리 여행하도록 계획을 세울 수는 없으나, 인간중심치료는 내담자 뿐만 아니라 치료자들에게 또한 직업적인 역량을 높여주는 초석이 되곤한다“라고 하였다.
다음과 같은 과정들을 발표했을 때에, 심리치료사들의 많은 반발과 비판을 받았다. Rogers 또한 이에 대하여 자신의 이론이 상당히 급진적이고 충격적인 발언임을 알고 있었는데, 많은 치료사들이 기본적으로 여기는 필수요소들을 Rogers는 배제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Rogers가 필요시했던 일치성, 무조건적인 긍정적인 존중, 그리고 내담자의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는 공감 세 가지는 치료장면에서 많은 변화를 일으켰고, 이후 치료자들에게 받아들여지며 사용되어 왔다.
초기에 대한 Rogers의 치료적인 강조점은 내담자의 언어와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해한 바를 내담자에게 돌려주는 것이었다. 허나 Rogers의 인본주의적인 관점이 발전하면서 단순한 치료자의 비지시적인 자세를 강조하기 보다는, 치료자-내담자의 관계를 중요시 여기게 되었다.
이는 초기의 Rogers의 치료기법을 사용하는 치료자에게 Rogers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치료자를 인도하였는데, Rogers의 치료기법을 사용하는 많은 치료자들이 당시에 ‘타인의 말을 반사해주는 반영하는 스타일’을 모방했고, 이러한 것은 Rogers가 의도한 치료자-내담자의 관계형성을 기반으로 한 내담자의 근본적인 변화과정을 무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 인해, Rogers의 반영하는 언어적 기법은 단순히 성찰지향적 기술로만 여겨지곤 했다.
Rogers는 이러한 의도치 않은 상담사의 전형적인 말대답, 마치 앵무새처럼 내담자의 말을 따라하는 기법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었고, 인간중심적인 치료 접근의 핵심은 내담자의 말을 함축하여 간단하게 재진술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후 인간중심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치료가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현대의 인간중심치료는 60년이 넘도록 정교하고, 그리고 열린 자세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발전해온 혁명적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Rogers가 이후 상담장면에서 기여한 주요한 업적 중 하나는 라포형성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뒤집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 상담장면에서 존재했던 마치 수술을 하듯 ”올바르게 상담기법을 집도하는 것“에 매달리는 것이 바로 주 치료 과정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던 치료자들의 전반적인 인식의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Rogers는 내담자와 강력하고 단단한 라포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최우선시되며, 바로 치료의 결과를 좌지우지 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언급했다. Rogers의 딸, Natalie Rogers에 의하면, 기법, 전략, 절차와 같은 단어는 인간중심접근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가도 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개입적인 태도와, 치료적인 관점을 언급하기 보다는, 인간을 중요시하게 보는 철학적인 관점과 인간 자체의 가치에 중점을 두라고 언급하였다.
Thorne에 의하면 어떠한 기술이나 전략도 인간중심치료에 기본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효과적인 치료적 방법은 경험을 직접하며 내담자와 의사소통하려는 태도에 기반한다고 하였다. Rogers가 언급했듯, ”경험은 나에게 최고의 권위자다“라는 뜻과 같이, 내담자와 함께하며, 머리로 생각하는 과정을 넘어 가슴으로 느끼는 깊숙한 마음속으로 변화하기 위하여 충분히 같이 행동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태도는 내담자를 변하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는 관점을 유지했다.
인간중심치료를 사용하는 치료자들은 치료자-내담자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치료적인 관점에서 민감하고, 그리고 자발성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반응을 하는게 중요하다. Bohart는 인간중심치료에서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기술을 절제하는 바가 의미하는 것이 나타내는 뜻을 생각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인간중심적인 관점은 치료자가 능동적이고, 어떤 지시적인 방법이나 역할을 사용하지 않아도 내담자가 스스로 자신이 긍정적인 방향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을 가정하는 것에 기초한다.
이 과정에서 내담자에 대한 치료자의 반응은 필수적이며, 이러한 진실성있는 치료자의 반응을 통해 내담자는 자신이 살아왔던 수용적이지 않은 세상과는 다른, 치료자의 따뜻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찾으러 가게 된다.
이에 대하여 치료자는 내담자에 대하여 관심있고 진정성있게 대해야 함은 물론이며, 더 나아가 내담자의 세상을 이해하고 수용하기 위해 내담자와의 관계 속에 깊숙이 집중을 해야한다.
Rogers는 이러한 치료자의 자세는 내담자의 변화를 가져오는 어떠한 기술보다 강력하며, 효과적이라 하였다. 여기에 있어서 경청하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내담자 자체로 존중해주며, 이해하고, 적절한 반응을 함에 있어서 솔직한 표현을 통해 내담자에게 반사해주어야 한다. 이는 모든 상담자가 그러듯, 단순히 치료적인 전략을 구축하는게 전부가 아니라, 나 자신이 사람으로써 끊임없이 발전하는 도전을 맞게 된다.
Cain에 의하면, 인간중심치료의 발전하게 된 주요한 방법 중 하나는, 다양하고 혁신적이며, 그리고 개개인에게 맞춰서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해진 틀을 가지고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 아닌, 내담자와 치료자의 라포 사이에서 능동적으로 내담자에 알맞은 치료를 진행하는 것은 치료자들이 보다 적극적이고, 더욱 진솔하게 있는 힘껏 내담자의 문제에 부닥트리는 기회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인간중심치료에서 치료자-내담자 사이의 상황들을 즉각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매우 핵심이 되는데, 다양한 방식의 치료와 더불어 치료자의 개인적인 스타일의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치료자들이 진실성있는 태도에 눈을 돌리게 됨으로써, 자신의 성격과 맞는 유연하고 절충적인 방법으로 상담장면에 임하게 만들었고, 치료자가 만나는 다양한 내담자에 맞는 알맞은 치료기법을 조정하게 하는 틀이 되었다. Cain은 내담자의 독특하고 개인적인 요구들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인간중심 치료가 적용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Cain은 인간중심치료를 사용하는 치료자로써, 자신의 치료과정들에 대하여 ”나의 생각들은 발전했고, 이제는 인본주의, 실존주의, 게슈탈트, 그리고 현상학적 개념들과 치료적인 반응들을 통합하게 되었고, 그 뿐만 아니라 내담자를 만나면서 좀 더 의미있는 방식으로 내가 누군지를 드러낼 수 있는 나 자신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였다.
Cain의 치료적인 관점에서, 인간중심의 관점을 바탕으로 다양한 기법과 이론들을 통합시켰으며, 치료과정을 통해 내담자 뿐만 아니라 치료자 본인 또한 능동적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인간중심의 접근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론과 기술, 그리고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본인만의 기술을 적절히 통합시켜 만들어낸다. 이것은 Rogers의 인간중심치료에 대하여 그에 대한 진가를 인정하고 행운으로 여겨도 좋다. 우리 중 그 누구도 Rogers가 언급한 대로 완벽한 방식을 추구할 필요가 없으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 진솔성있게 찾아가는 과정을 가지면 된다.
만약, 이러한 방식이 맞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방식을 찾아 떠나면 된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Rogers가 언급했듯이, 그 치료방식이 나에게 있어서 일치하는 기법이 아닐뿐더러, 진솔성있게 내담자를 대하는 자세를 갖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치료자의 진실한 마음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옳다고 여기는 치료적인 관점을 고수해야 하며, 그것은 Rogers가 주구장창 말했던 환자들의 치료의 기반이 되는 라포형성이 될 것이다. 치료자가 본인만의 인간중심치료적인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내담자는 불안하고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낄 것이다.
치료자는 치료과정에서 내담자에게 올바르게 치료가 진행되고 있는지 평가를 해야 하는데, 이것은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많은 정신과에서는 다양한 검사들을 통해 내담자를 평가하곤 하는데, 이러한 것은 인간중심적인 접근에서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중심치료에서 최고의 평가는 치료자가 내담자의 상태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의 문제 상황을 본인이 평가하는 것에 집중을 해야 한다. 인간중심치료에서는 내담자의 문제해결의 단서는 바로 내담자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일부 내담자는 상담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심리검사를 신청할 수 있다. 치료자는 치료적 진전으로 이끌 수 있는 내담자의 자발성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중요하게 심리검사를 실시하고, 활용할 수 있다.
Rogers는 상담을 시작할 때에 심리검사를 사용하는 것, 또는 과거력을 조사하는 것에 주의를 가하라고 하였는데, 흔히 임상장면에서 사용되는 풀 배터리 검사(지능검사+성격검사+투사검사)를 통해 상세한 내담자의 정보를 가지게 된다면, 치료자는 내담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할 것만 같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으며, 반대로 내담자 또한 치료자에게 과하게 의존하며 치료적 자발성을 내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많은 심리상담기관에서는 단기치료가 주로 이루어지며, 단기치료에 대한 평가가 중요해지고 있다. 이에 대하여 다양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의사결정에 대하여 내담자가 중점적으로 참여하는게 핵심이 된다. 오늘날에 이르러 인간중심치료가 올바르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평가는 내담자를 올바르게 치료를 해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아닌, 어떻게 내담자와 치료를 하며 상호작용을 할지에 달려있다.
인간중심치료가 가지는 인본주의적 접근은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의 교육에도 적용될 수 있는데, 교육적인 환경 또한 라포형성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상호작용이기 때문이다. Rogers와 Freigberg는 교육과정에 있어서 학습자의 ‘배움의 자유’를 강조하며 교수자가 마치 다른 여행의 여정을 안내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였다. 이들에게 있어서 교수자는 ‘통제담당 관리자’의 역할이 아닌 ‘학습을 촉진하는 촉진제’로 여기었다.
교수자는 자유롭게 자신만의 학습 방법을 찾아가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도록 요구하였다. 이후 이어지는 인간중심기반 교육과 실제적인 측면에 의하면, 인간중심적인 환경에서 운영되는 교실 안에서는 학습자는 더 많은 학습해결 능력과 창의적인 문제해결능력, 그리고 창의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효과적인 것을 보여주었다.
교수자는 학습자와 라포형성을 함으로써, 학습자가 점점 자기주도적으로 변하도록 유도하고, 자신의 선택의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으며, 기존의 고전적인 방식보다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특히 인간중심치료는 내담자가 위기에 처해있을 때에 급하게 개입할 수 있는 효과적인 개입방법 중 하나이다. 위기상황이라 함은 내담자가 내담자 자신이 변화하고 무너질정도로 강력하고 충격적인 혼란을 겪는 상황을 말한다. 갑작스런 임신, 불치병, 재난으로 인한 피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등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위기상담은 핵심적으로 개인의 정체성이 흔들릴 정도로 위급한 상황에 놓여있는데, 치료자는 흔히 말하듯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유리하다. 그 이유는 성격이 변화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에서 치료자는 내담자의 장점을 이끌어내어 문제 해결에 있어서 본연의 성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마치 ”뜨거운 용광로“속에 내담자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강인하게 무두질함과 같다.
위기상담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의학분야, 교육분야, 복지분야 등 다양한데, 이후 서술될 기본적인 치료적 자세가 갖추어진다면, 위기상황에 맞추어 적절한 치료적 방향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로, 사람이 위기에 처한다면 반드시 자신의 경험을 완전히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조성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치료자는 민감하게 모든 것을 경청하며, 이해하고, 받아들여야한다. 혼란스러운 위기상황에 처한 내담자를 이해하는 것은 내담자에게 안정적인 기분을 주며 진정시킬 수 있고,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만든다. 이후 내담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으며, 스스로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
한 명의 위기가 치료자 한 명의 경청으로 문제를 전부 해결할 수는 없지만, 내담자를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 힘이 된다. 치료자 한 명이 내담자의 위기를 구할 수는 없어도, 내담자가 흘러가는 방향을 최선을 다해,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틀어갈 수 있으며, 이후 이 조그마한 차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위기에 처한 사람이 이해받지 못한다면,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잃고 희망을 잃어버릴 수 있다. 진정한 지지와 배려, 그리고 따뜻한 마음이 위기를 해결하도록 동기부여 할 수 있다고 하겠다.
깊이있게 내담자를 이해했음을 내담자에게 언어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항상 다른 문제해결 방식보다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치료적인 자세가 내담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치료자는 인간중심치료가 아닌 내담자에게 필요하다 여겨지는 다른 방향의 치료 및 상담을 제시해야 한다.
만약 극도의 위기로 인하여 내담자가 제 기능을 유지하기 힘들정도로 망가졌을 경우, 적절한 이끌어줌과 지시적인 태도가 요구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예시는 다음과 같다.
1) 내담자의 목숨이 위험함
2) 치료자의 목숨이 위험함
3) 제 3자의 목숨이 위험함
자살을 암시하는 내담자가 존재한다면, 자살하고 싶은 마음을 알아주고 공감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나,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과 법적 문제가 존재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치료자는 인간중심치료의 틀을 깨고,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것은 인간중심치료의 핵심인 인간에 대한 전반적인 믿음에 반대되는 것이 아닌, 인간을 구하기 위한 진실성 있고 반드시 요구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써, 아동 내담자를 인간중심치료를 통해 치료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아이는 인간중심적인 치료기법을 꽤나 지루해 했으며, 치료적인 의사를 따분하게 여기는 듯 하였다.
몇 십분이 지나고, 아이는 상담이 따분하다고 소리치며 밖으로 나가버렸는데, 인간중심치료 상담자는 Rogers의 말에 따라 아이를 믿고, 아이가 다시 치료실에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는 게 바로 인간중심적인 개입이라 생각하였다. 이후 치료자는 몇 십분 동안이나 치료실에서 기다렸으나,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고, 아이가 차도로 뛰쳐나가 사고를 당할 뻔하였다고 한다.
이 상담사의 슈퍼바이저는 이후 이를 듣고 충격에 빠져, 더욱 큰 문제로 만들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크게 다그쳤다고 한다. 치료를 위하여 Rogers의 이론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지, Rogers의 모든 이론적 규칙을 따라가는 치료는 절대로 옳지 않다. 우리는 Rogers가 아니거니와, 내담자에 맞춤형 치료를 Rogers는 바랬기 때문이다.
즉 위기상황에 있어서 치료자는 인간중심치료라는 틀에 갇혀있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역할을 바꾸며 내담자에 맞춘 다양한 자세를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인간중심치료를 고수해야 한다는 것이 아닌, Rogers가 그러했듯, 어떠한 치료를 사용하든 간에, 인간적인 태도를 갖춘 치료자가 내담자에게 요구된다고 할 수 있겠다.
내담자에게 인간중심치료가 요구되지 않는다 판단되면, 다른 치료를 시행해야 한다. 치료자는 다양한 치료기법과 이론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며, 그 지식들은 인간적인 태도 아래에서 통합되어야 한다. 인간중심치료는 기법에 한하지 않고, 전반적인 태도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중심치료는 라포를 형성하는 적극적인 자세에서 비롯되므로, 집단활동 및 집단상담, 교육분야에서 쉽게 사용될 수 있다. 단순히 1대1의 라포형성 방법이 아닌, 인간중심치료는 사람-사람 사이에서 라포를 형성하는 자세에 대하여 언급하였기 때문이다.
집단에서 인간중심치료를 사용하는 리더의 역할은 매우 독특한데, 집단을 이끌어가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촉진제로 기능을 한다. 리더는 모두가 안전하고 진정있게 참여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며, 이러한 환경에서 구성원들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라포형성을 하게 된다.
라포형성이 이루어지면 구성원들은 자신의 의견과 선택에 대해 스스로 문제에 접근하게 되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서로가 문제에 대하여 다투며 경쟁하는 사이가 아닌, 같은 집합체로써 공동체적 의식을 느끼게 된다면, 집단의 구성원들은 공동체적 의식을 기반으로 하여 자신의 변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된다. Rogers는 이러한 경우, 리더가 전진하면 구성원 또한 전진하는 경향이 있다고 굳게 믿었다.
진행을 하는 과정에서 리더는 구성원을 해석하는 언급을 되도록 피해야 하는데, 이러한 언급은 리더-구성원의 라포형성에 있어서 리더를 전문가적인 위치로 높이고 서로의 힘의 균형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구성원 간의 평등하지 않은 불균형한 라포형성이 이루어졌을 때에, 전반적인 집단목표 달성에 있어서 늦은 성취량을 나타낼 수 있으며, 전반적인 집단활동의 진행 과정은 리더가 아닌 구성원에게서 나와야 한다. 이것은 집단활동의 에너지와 집단의 선택이 개개인 구성원에서 비롯된 것이어야 함을 Rogers는 강조한다.
치료적인 조건인, 구성원들 사이에서 집단내 자신의 역할과 자신의 존재에 대한 신뢰를 전적으로 받는 경우, 집단 구성원은 올바른 과정을 통해 시간 내에 집단 내 갈등을 해결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여기에 있어서 집단 리더의 어떠한 이론적인 성향과는 무관하게, Rogers가 언급한 핵심 조건은 어떤 집단리더에게도 적합하다. 그 이유는 집단이라함은, 2인 이상으로 구성된 인간관계를 뜻하는데, 그 중 그룹을 이끌어가는 리더가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룹을 이끌어감에 있어서 많은 문제점이 발견될 수 있다.
효과적인 치료자는 성숙함을 기반으로 타인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성숙함이 없이 기술적 요소만 사용한다면, 내담자와 치료자는 공허하고 무언가 빠트린 기분이 들 것이다. 향후 Natalie Rogers가 말했듯이, ”머리로 이해하긴 쉽지만, 실천하긴 어려운 방식“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