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Melanie Klein의 투사적 동일시

대상관계이론의 선두주자

by 장준

Melanie Klein의 이론을 통해 대상관계이론을 접하고자 하면, 그녀의 저서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정신분석적 용어가 그러하듯, 대상관계이론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주는 느낌을 번역 서적에서 완벽하게 살리기는 어렵거니와, 각각의 서적마다 번역하는 단어가 통일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Freud와 같은 경우, 그의 이론이 워낙 유명하며 전반적으로 잘 번역된 양질의 번역서가 많이 존재한다. 반대로 Melanie Klein의 이론은 읽다 보면 모호해지기 마련이다. 이는 그녀의 이론을 충분히 번역한 서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보다는, 그녀의 이론은 철학적이고 주관적인 모호한 방식을 통해 정신분석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Freud의 이론은 신경증적 성격구조를 이해하기 쉽게 한다. 반대로 Klein의 이론은 정신병적 성격구조를 이해하기 쉽게 만든다. Klein의 전반적인 이해는 이후 저술될 정신역동적 심리치료의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므로 Klein의 이론은 다른 학자에 비해 자세히 저술하도록 할 것이다. 그녀의 인생, 핵심이론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그녀의 인생은 ’내가 아는 정신분석학자 중 가장 비참‘한 인생을 살았다. 그녀는 Freud와 같은 유태인 집안으로, 막내로 태어났다. Freud가 그러했듯, 많은 유태인들이 핍박을 받았고, Klein의 집안 또한 압박을 받으며, 경제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Klein은 사실 계획된 출생이 아닌, 원치않은 아이였고 경제적인 어려움과 맞물려 Klein의 어린시절은 암울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Klein의 아버지는 건설적인 그녀의 언니 Emile를 편애했고, 그녀의 어머니인 Libussa는 그녀의 오빠 Emanuel을 극도로 애정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언니 Sidonie에게 의지하며 자랐지만, Sidonie는 8세에 죽었다. 이 과정에서 Klein은 어머니를 통해 자신이 원치않은 아이였음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Klein을 무시했으나, 그의 오빠 Emanuel은 Klein의 명석함을 알아채고, 학업을 유지하도록 적극 지지해주었다. Klein은 이런 오빠의 다정함에 존경심을 넘어 무조건적으로 오빠를 따르게 됬다.


Klein의 집안은 그녀의 어머니 Libussa를 중심으로 이끌어갔다. Klein의 어머니는 실제적으로 집안 경제적인 측면을 담당했고, 사람을 감정적으로 대할 줄 아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Libussa는 Emanuel를 편애했지만, Emanuel은 Klein을 애정했기 때문에, 어머니와 오빠, 그리고 Klein은 가족 내에서 3인방처럼 똘똘 뭉쳤다고 한다.


그것도 잠시 Emanuel은 20살이 막 넘었을 무렵 결핵을 진단받았는데, 충격에 빠져 허탈하게 돈을 소비하곤 하였다고 한다. 그에 대한 경제적 부담은 그의 어머니가 감당해야 했고, Emanuel은 병적으로 떠돌아다니며 자신이 감당못할 일들을 벌이며 Klein과 그녀의 어머니 Libussa를 압박하며 돈을 요구했다고 한다.


1902년 Emanuel은 병으로 죽었다. 그가 남긴건 엄청난 경제적 부담 뿐이었고, 가족은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그 속에서 1년 후인 1903년, Klein은 Arthur Klein과 결혼했는데, 마치 그의 오빠처럼 Arthur또한 떠돌이처럼 여행을 즐겼던 듯 하다.


신혼임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대하여 전혀 기쁘지 않았는데, Arthur의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Klein은 딸 Melitta를 출산하였는데, Klein은 산후우울증을 겪었다. 그 당시 Klein은 “Melitta를 위하여 나는 엄마 역할을 뒤집어쓰며 나의 삶을 있는 힘껏 내던졌다.”고 서술한다.


그러한 Klein을 같은 어머니인 Libussa가 지지해주며 Melitta를 돌봐주었다고 한다. 허나 그것도 잠시 1914년 Libussa는 죽었다. 이 시기에 마침 Klein은 Freud의 정신분석을 접할 때였고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정신분석학자 Ferenczi에게 정신분석을 받으며 그녀는 정신분석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Klein의 관심분야는 영유아 및 아동의 정신분석이었다. 이는 그의 스승 Ferenczi의 영향이 컸다. Ferenczi는 신경증의 원인이 애착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보았고, Klein은 아동의 애착발달관계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Klein은 Ferenczi의 지지속에서 상당히 곤란한 문제를 겪게 되었는데, 정신분석이 태동되어 생겨나면서 아동을 대상으로 한 정신분석은 여지껏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시 시대분위기적 상황이 한 몫을 차지한 것도 존재했고, Freud가 영유아 및 유아의 발달시기가 성격발달에 있어서 핵심적이다고 한 것이지, 어린아이의 치료를 중요하게 여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동의 정신분석 사례가 필요했고, 환자를 구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녀는 그녀의 딸 Melitta의 정신분석하며 사례연구를 진행했고, 전반적인 과정을 위장하여 결과와 효과성만 연구결과로 제언하고자 하였다.


Klein은 Melitta의 정신분석을 통해 어린시절에 무언가 있음을 직감하였는데, 이것은 그녀의 동료들을 놀라게 할만한 직설적이고 직감적인 분석들이었다. 이 과정속에서 남편 Arthur와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별거를 하며 사이가 소원해지기 시작했고, 이후 1926년 이혼했다.


Melitta의 정신분석과정에서 유명한 정신분석가 Karl Abraham 이 전반적인 슈퍼바이저를 담당하며 연구를 진행하였으나 1년이 넘어갈 즈음, Abraham은 병에 걸려 정신분석을 포기하고 연구가 종결되었다. 이로인해 연구는 흐지부지 되었다.


Klein을 힘들게 하는 이유중하나는 주변의 정신분석학자들의 태도 또한 한몫 기여했다. Klein은 당시 여성이었고(당시 남성보다 여성은 상대적으로 교육을 받을 기회가 드물었다),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Freud처럼 의학계열에 대한 전공지식, 또는 의학 대학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덧붙여 남편과의 이혼을 했다는 부정적인 눈초리와 더불어 유태인 집안이라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당시 상황적 배경이 그녀를 고단하게 하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Freud와 함께했던 Ernst Jones는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 정신분석학계의 핵심적인 인물로써 활동하고 있었는데Klein의 연구에 상당히 흥미를 보였다. Jones는 Klein에게 영국으로 오라고 강력히 권유하였다. Klein에게 있어서 이는 좋은 기회였다. 학업을 위해 다른 자녀들을 남겨두고, 그녀는 막내아들과 영국으로 이사했다.


Klein의 연구는 매우 진취적으로 발전하였는데, 아동의 연구에 있어서 Anna Freud와는 상당히 상충되는 의견을 보였다. 이로인해 영국의 정신분석학계는 Klein학파와 Anna Freud학파로 갈라졌다. 그리고 이 두 학파의 다툼을 막으려는 학자들도 존재했다. 이것은 영국의 정신분석이 세 갈래로 나뉘게 되었고, 현재까지도 학파의 구분이 나뉘어진다.


Klein을 비판하는 것은 Anna Freud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딸 Melitta 또한 정신분석가로 성장했는데, Klein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Melitta는 Klein의 이론을 맹비난하고 들었으며 이론의 전반적인 접근 자체를 부정하려 들었다.


감정적인 이유에서인지, 또는 이론적인 관점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Klein이 Melitta에게 있어서 좋은 어머니로 기억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Melitta는 Klein이 영국정신분석학회에서 영원히 퇴출되야 한다고 신랄하게 모욕하기도 했으며, Klein이 죽고 나서도 장례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형제자매의 Klein의 조문과 관련된 편지에 일절 답하지 않았다.


어찌됬든 비난속에서 Klein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는데, 얼마 되지 않아 남자가 바람을 피우는 문제로 인하여 관계에 문제가 생겼고, 이후 불건전한 성생활을 즐기는 문란한 유부남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1926년 그는 Klein을 버리고 도망쳤다.


1934년, Klein의 첫째아들이 죽었다.(이에 대하여 첫째아들이 자살했다는 설도 있다) 전남편 Arthur 또한 1939년 죽었다. 그녀의 언니인 Emilie 또한 1940년 죽었다. 이렇게 Klein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이에 대하여, 자신을 정신분석하며 마치 타인을 분석한 듯 꾸민 상실감에 대한 사례연구를 발표하였다. 연구자료를 살펴보면 내용이 비참한 인생이 드러나지만, 매우 날카롭고 과감한 ’날 것 그대로의‘ 분석이 나타난다.


그녀는 죽기 전 몇 주간 병실에서 누워있으며 죽음을 기다렸는데, 옆 침대의 아이가 너무나도 울어서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그녀의 인간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드러나는, 아동 정신분석학자인 Klein의 인생이 함축된 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녀의 정신분석에 기반한 놀이 기법은 현재 존재하는 모든 아동치료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것은 Klein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날카로운 직감도 한 몫을 차지하지만, 아이를 분석하려 하기보다는 아동 자체를 한 명의 인간으로 존중하는 그녀의 세심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을 느낄 수 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자녀에게는 그러지 못했지만, Klein은 아동과 심리치료를 진행할 때에 따뜻하고 마음이 편했다고 한다.



투사(projection)와 내사(introjection), 그리고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의 개념은 Klein의 관점에서 사람을 바라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인간관계를 가진다. 애착인형이라는 말이 있듯이, 어쩌면 인간과 관계하는 것을 넘어서 나와 세상의 모든 것과 관계를 맺을지도 모르겠다. 과정 속에서 우리는 감정을 느끼는데, 그 감정을 타인에게 주거나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두 가지가 존재하겠다. 엄마와 다툰 아들이 말싸움 후에 ’엄마 또한 자신처럼 화가 나고 속상할 것‘이라고 한다면 투사가 되겠고, ’말싸움으로 인한 감정들이 자신의 탓‘이라고 한다면 내사가 되겠다. 어쩌면 인간관계는 투사와 내사의 반복과정 속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겠다.


Klein의 입장에서 본다면 투사와 내사, 그리고 실제의 간극을 알아차리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겠다. 아들이 “엄마 또한 슬플 것”이라는 추측과 “실제로 엄마의 감정 상태”는 별개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Klei이 말했듯, 투사와 내사를 반복하며 아동은 어머니와 관계를 맺으며 상상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추상적인 개념들을 깨닫게 되는 ’상징화(Symbolization)‘과정을 겪는다.


아동 정신분석학자로 활동한 Klein의 단어는 상당히 ’날 것 그대로‘의 이미지를 주는데, 그 이유는 아이를 사랑한 Klein은 아동의 원초적이고 단순하고 직접적인 언어를 목격하였기 때문인 듯 하다. 당시 그녀의 이론은 선뜻 받아들여지진 않으나, 전반적인 그녀의 이론 양상은 아동의 행동을 검증하듯 정확히 맞아떨어지곤 한다.


편집-분열성 자세(Paranoid-schizoid position)는 그녀가 언급한 이론 중 매우 유명한 것이다. 그녀의 이론을 한 마디로 요약하라고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나, Klein의 마음에 드는 이론을 말해보라라고 한다면 매우 쉬운 일이 되겠다.


Freud는 아동이 태어나고 구강기로 시작하는 인생의 첫 장면을 묘사하였다. Klein은 거기서 더 나아가 아동출생 이후의 구강기 아동의 양상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첫 번째 발달적 단계가 편집-분열성 자세이다. 이러한 병리적인 용어는 처음 Klein의 이론을 접하는 사람에게 거부감을 주기도 하는데, 개괄적으로 요약하자면 ’상상의 단계‘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출생 후 3개월 정도가 지나면, 아동의 시각발달이 어느정도 이루어지며 바깥세상의 다양한 소리와 색깔들을 접하게 되며 수많은 정보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때, 아동이 주변의 모든 것들을 “이해해야”하는데, 그 이유는 살기위해, 그리고 사랑과 관심을 받기 위해라고 할 수 있겠다.


허나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글을 쓰는 나조차도 세상에 이해되지 않은 것들이 많은데, 하물며 아이는 오죽할까? 이때, 아이들은 ’살기위해‘ 모든 것을 판단하는 꽤나 명쾌한 규칙을 만들어낸다. 바로 “좋은놈이냐, 아니면 나쁜놈이냐?”이다.


아이가 판단하기에 “좋은사람”이라고 판단되면 아이는 안아달라고 칭얼대기 시작할 것이며 울고, 웃고, 편안하게 똥오줌을 누며 식사를 요구하기도 할 것이다. 아이의 곁에 좋은 사람이 있는 한, 아이는 “좋은사람”이니까 믿어도 된다는 전제하에, 마치 그 사람이 없는 듯이 자신이 하고픈 바를 무엇이든 해볼 것이다.


아이가 판단하기에 “나쁜사람”이라고 판단되면 아이는 그 사람이 오는 것을 거부하고, 화를내며, 아이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비난”을 시작할 것이다. 우리가 옷에 더러운 것이 묻으면 신경쓰이며 닦아내고 싶듯이, 아이또한 “나쁜사람”이라는 존재를 닦아버리려고 발버둥을 칠 것이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는 아이의 생활양식 전반적으로 드러나는데, 아이들이 “영웅과 악당”으로 나뉘는 만화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아이가 판단하기에 누가 보더라도 영웅은 전적으로 좋은 편이고, 악당은 전적으로 나쁜 편이므로 “머리 쓰지 않고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매체로 다가올 것이다.


언어적인 양상에도, 아동이 만약 “좋은 대상”이라고 여겼던 사람이 “악당의 행동”을 한다면 바로 나쁜사람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좋은 사람이 나쁜사람으로 행동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너는 좋은사람이잖아, 그런데 왜 나쁜행동을 하는거야?”라는 아이만의 강력한 항의가 되겠다.




아빠를 좋아하는 아동이 아빠와 재밌게 놀고 있다고 가정하자. 만약 아빠가 아이의 간식을 뺏어먹는 듯한 ’악당의 행동‘을 한다면, 아이는 돌연 듯 분노하며 “아빠 미워! 아빠 나빠!”하며 말할 것이다. 이는 아빠가 진짜로 나쁜 사람이라는 뜻보다는,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했으나, 나쁜행동을 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아 나타나는 현상이라 하겠다.


여기서 정신화(Mentalization)와 대상 영속성의 부재로 인한 문제가 드러나곤 하는데, 아동의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빠른 판단과 생존에 있어서 본능적으로 자신의 편을 나누어 들러붙기 편하다. 허나 이는 좋은편-나쁜편 사이에 존재하는 검은색과 하얀색 사이의 회색구간에 대한 이해를 주기 어렵다.


대표적으로 영유아 및 아동들은 흔히 양가감정, 즉 “애증의 관계”라는 감정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 만약 이러한 반발되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아동과 같은 면모를 띄지 않을 것이다.


즉 아동은 “착한 사람의 나쁜 면모”가 존재하는 사실과 “나쁜 악당의 인간적인 면모”의 상당히 애매모호한 존재에 대하여 분간하지 못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만약 당신이 만화영화 속 “악당의 어쩔 수 없는 사정”을 아이에게 설명한다면, 아동은 “그래서 악당이 좋은 편이라는 거야, 나쁜편이라는거야?”정도의 의아한 반응을 보여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일차적인 주 양육자, 즉 어머니의 태도가 중요하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있어서 “아이가 무슨짓을 하던지간에 좋은 편”으로 기억되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머니마저 나쁜 악당의 편이라 기억된다면, 아이는 극심할 정도로 정서적 불안을 표출할 것이다. Klein은 이것을 박해불안(Persecutory Anxiety)라 명하였다.


아이가 견디기에 자신의 편 한명조차 없다면 극도로 공포에 사로잡힌다. 이것은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누구나 그럴 것이며, 아이또한 그렇다. 이러한 Klein에 대한 언급을 듣는다면, 많은 아동의 양육자는 불만을 표출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동의 무리한 생 떼를 무조건적으로 받아줘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것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아니다”인데, 이에 대한 대답을 어렵게 설명하자면 “아동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유지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나 아동이 성장함에 있어 자아탄력성을 갖춘다면 서서히 어머니는 현실에 대하여 좋은편-나쁜편 사이의 회색구간의 존재가 있음을 몸소 보여줘야 한다.”로 답할 수 있겠다.


짧게 대답하면 “아이가 적당히 컸다 싶으면, 당신도 당신 편할 대로 행동하세요. 어머니도 사람이니 어머니 인생을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라 하겠다.


사실 당연한 것이, 교육적인 관점에서 본다고 하였을 때, 인간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아이가 건강한 상태라고 보진 않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동의 인지적인 발달을 하기 위해서는 천천히, 그리고 아이의 수준에 따라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감정과 지식들을 알려줄 수 있다.


만약 어머니가 전적으로 아이의 투정을 전부 들어준다면, 아동은 자신의 이분법적 행동을 유지할 것이고, 발달적인 양상에서 어리광 부리는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이것은 아동의 발달을 촉진하는게 아닌, 상태유지를 강화시킬 뿐이다. 이러한 적절한 어머니의 불만에 대한 합의점을 잡아주기 위해 Donald Winnicott은 “적당히 좋은 엄마(Good enough)”가 되라고 하였다. 그의 수많은 소아과 진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명언이라 할 수 있겠다.


우울한 자세 (The depressive-position)는 구강기 후기의 양상에서 드러난다. 아이를 길러본 어머니들은 아이가 ’지랄발광‘ 할지언정 ’아무 말도 없는 것‘이 더 심각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아프고 짜증을 내며 투덜거리는 것은 아동의 어머니를 힘들게 하지만, 아파보임에도 불구하고 “죽은 시체마냥 가만히 있는 것”은 정말로 아이가 죽어버릴 것만 같은 공포를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아동들이 과도하게 아프거나 불만스러울 때, 맨 처음에는 강력하게 소리치곤 한다. 허나 아무리 요구해도 자신의 편이 없고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듯 체념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아이가 진정되었다고 보이기 십상이나,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는 아동을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직감하곤 한다.


우울한 자세는 아동을 대하는 일차적 양육자를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드는데, 아동이 반응이 없으므로 어머니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흔히 “차라리 울거나 화를 내라”라며 답답함과 속상함이 느껴지곤 한다. 즉 우울한 자세는 편집-분열성 자세를 취하는 아동이 삶에 대한 모든 투쟁을 버리는, 이전 단계보다 악화된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당연하게도, “우리아이가 이럴 애가 아닌데...”라며 반응이 없는 아이를 데려오곤 하는데, 이런 상태에는 이미 때가 늦은, 상당히 악화된 느낌을 준다. 아동의 양육자의 입장에서는 아이가 반응이 잠잠해졌으니 괜찮아졌다고 판단을 하여 방치를 하지만, 사실은 속이 썩어문드러져가고 있었다는 것을 쉽게 파악을 할 수 있다.


편집-분열성 상태는 “외부에 에너지를 쏟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들었다. 이것이 효과적이지 않자 “내 탓인가?”라는 생각에 자신을 돌아보며 에너지를 쏟는데, 이것은 자기계발적인 투자라는 느낌보단 스스로를 자책하며 채찍질한다는 느낌을 준다.


자신을 과도하게 비난하는 사람들의 언어적인 양상을 살펴보면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가정불화를 가진 청소년이 만약 정서불안을 문제로 담임교사에게 맞겨진다면 “이건 전부 아빠탓이야! 아빠가 맨날 나한테 화내고 때렸잖아!”라고 표출할 수 있다. 이러한 상태는 Klein의 말마따나 편집-분열성 양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소비할 대상은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치료적으로 긍정적인 청신호를 뜻하는데, 그 이유는 감정적으로 “살아는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일단 감정을 느낀다면 좋은 감정이든, 나쁜감정이든 간에 환자가 살아있으므로, 치료자는 수술을 집도할 수 있다.


허나 감정적으로 “죽어있는” 청소년은 매우 우울하며 자기비난의 늪에 빠져있다. 공통적으로 이들에게 나타나는 핵심 양상은 “비난할 대상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분노가 끓어오를 때, 울음을 터뜨리며 울분을 토하는 대상이 있으면 눈물이 나온다. 허나 이들에게는 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듯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치료자는 수술을 진행하기 보다는, 일단 감정을 살리는 심폐소생술이 요구된다.


그 방법의 핵심은 ’아이의 상태가 현실파악이 되느냐 안되느냐‘일 것이다. 만약 아이가 현실을 받아들이고 어느정도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일 인지수준이 되는 상태라면, 과거의 트라우마 경험을 불러일으켜 그 때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을 되살려야 한다. 이것은 마치 체한 사람의 목구멍에 목젖을 건드리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드는데, 특정 단어나 주제를 언급하면 이들은 무언가 막혀있던 감정을 토해낼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곤 한다.


이때 요구되는 치료자의 역할은 이전 트라우마 경험의 반복에서와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면 된다. 예를들어 어머니의 학대로 인하여 정서적 불안을 겪는 아동이 존재한다면, ’어머니‘, ’학대‘, ’폭력‘과 같은 단어와 주제에 민감할 것이다. 과거에 어머니에게 표출하지 못했던 분노와 서러움, 자신의 외로움 등 다양한 감정들이 존재했을 텐데 이를 억압하고 있던 것이다.


치료자는 이때 아동의 목젖을 건드려 과거의 경험을 상기시키며 ’그 때 그 느낌‘을 되살리고 “학대 받았던 때의 엄마”는 화냈으나, 치료자는 좋은 엄마처럼 행동하며 아동에게 색다른 경험을 해주어야 한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아이는 치료자를 믿고 감정을 있는힘껏 쏟아낼 것이며, 이전의 어머니와는 다른, 따뜻한 감정에 조금씩 변화할 것이다.


문제는 현실 파악이 안되는 아동의 경우인데, 이러한 경우, 죽은 듯이 어떠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때 치료자가 “그동안 많이 힘들었구나?” 또는 “무슨 일이 있었니?”와 같은 지지적 대화나 탐색적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 조차 힘들다. 이는 대화하기를 포기한 아동에게 대화하려는 시도를 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다.


스트레스를 받는 과정에서 애초에 아동은 뇌의 구조가 일반적인 양상과는 다르게 발달하기 시작하는데, 전반적인 뇌의 기능에 영향을 미치겠으나, 소뇌에 특징적으로 영향을 준다. 소뇌 및 해마에 충격이 가해질 정도로 트라우마를 겪은 아동은 신체적인 양상에서 증거들이 드러난다.


소뇌의 역할은 다양하게 있으나 아동에게 쉽게 관찰되는 것은 ’구체적인 움직임‘이다. 아동의 소근육 발달의 퇴화로 인하여 손가락 운동이 느리거나 떨리며, 외부 자극에 대해 상당히 느리게 반응한다. 언어를 발음하는 것에 있어서 정확하지 못하고 흐리멍덩하게 말을 하며 특징적으로 몸의 전반적인 움직임이 느려진다.


소뇌에 충격적인 양상으로 인해 대화가 어려운 경우, 나는 세상의 ’실제 시간의 흐름과 다르게 느리게 움직이는 것만 같은‘ 인상을 받곤 했는데, 이는 우울증의 초기증세이기도 하다. 우울성 상태를 취하며 현실구분을 못하는 아동에 있어서는 우선적으로 언어적 치료보다는 우선적 약물치료가 요구된다. 그리고 일정 상태의 뇌의 호르몬 평형이 이루어진다면 심리상담 및 심리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


우울성 상태인 아동을 대하는 효과적인 전략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대화를 하는 대신 그림이나 놀이를 활용하여 대화를 이루어가는 것이고, 두 번째는 우울성 상태 이전의 편집-분열성 상태의 대화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첫 번째, 언어적으로 대화가 힘든 우울성 상태의 아동과 언어적인 수용이 힘들다고 판단되면 아이에게 어떠한 상징성(Symbol)을 사용하여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두 번째, 아동이 우울성 상태에 접어들었다면 아동의 전 단계인 편집-분열성 상태의 언어대화를 구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선뜻 듯기에 이상할지언정, 생각보다 간단한데, 치료자가 이분법적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시를 들어보자. 최근 유치원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한 아동이 있다. 아동은 그의 친척이 데려가 양육을 도맡기로 결정했고, 아이의 아버지는 양육권을 포기하고 떠나갔다. 이러한 경우 아이는 말 그대로 “화낼 기회조차” 없는데, 아동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하여 분노하고, 속상하고, 당황스러울 것이나 이것을 표출할 기회가 없다. 아동은 겉으로는 잠잠해 보일 수 있으나, 내면속에는 폭풍이 몰아칠 것이다.


아동은 교육기관에서 수업을 진행하며 때때로 행동이 매우 퇴화되고, 교사의 반응을 무시하며 정서적으로 울음을 표현한다. 이에 대하여 교사는 “무슨 일이냐?”고 묻지만 아이는 반응을 하지 않는다.


이때 교사에게 요구되는 대화법은 첫 번째, 언어 대신 심상을 이용한 물건의 활용이고 두 번째, 이분법적인 대화를 사용해야한다.


치료자는 “자, 여기 곰인형이랑 코끼리 인형이 있어. 지금 곰은 기분이 좋고 코끼리는 기분이 나빠. 00이는 둘 중 어느 상태일까?”와 같은 대화를 사용할 수 있다. 여기에는 4가지 반응이 있을 수 있다.


1) 곰인형을 집는다.

2) 코끼리인형을 집는다

3) 두 개의 인형 모두 집는다.

4) 반응하지 않는다.


첫 번째 상태가 나빠보임에도 불구하고 곰 인형을 집는다면, 무언가 “기분이 좋거나 상태가 좋은 놈”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아동의 상태가 명백히 나빠보임에도 좋다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이것은 진짜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라 “기분이 좋은 놈이 따로 있다.”는 말이거나 “나는 차마 불행함을 손으로 선택할 수 없다”정도로 해석이 될 수 있다. 이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가 “기분좋을 것이다”라고 해석하든, 또는 “이 충격적인 사건을 받아들이기엔 이르다”정도로 치료자는 해석을 해야한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자신의 상태와 반대로 좋다고 표현하는경우에, 그 모순점을 치료자는 찾아야한다. 많은 아동의 경우 자신의 상태를 반대로 표현하는 경우를 보지는 않았으나, 아동처럼 행동하는 성인의 경우 자신의 상태와 모순되는 단서를 집곤한다.


이러한 면모를 보고 있노라면, 성인보다 아동이 꽤나 솔직한 존재임을 느끼곤 한다.


두 번째, 만약 자신의 상태가 나쁘다고 코끼리 인형을 집는다면, 이것은 매우 긍정적인 치료적 반응이다. 코끼리 인형을 잡음으로써 자신의 상태가 일단 나쁜것임을 자각하고 있다는 것이며, 치료자와 소통을 할 의사가 있다는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만약 아동이 자신의 상태가 나쁘다고 반응을 하였다면 치료자는 탐색적으로 ’두 가지의 선택지‘만을 제공함으로써 아동의 대답을 이끌어내야 한다. 만약에 나쁘다면 어떻게 나쁜지, 누구한테 그러한 나쁜 감정을 가지는지, 대화를 포기한 이유가 무엇인지 이끌어내야 한다.


세 번째, 만약 아동이 두 가지 인형을 모두 잡는다면 이것또한 좋은 치료적 반응이다. 그 이유는 아동이 진심에서 비롯됬든, 아니면 아무생각없이 반응을 했던지간에 일단 치료자의 언어에 대하여 반응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아동이 치료적 맥락과는 다르게 물건을 잡는 양상을 보인다면, 치료적 대화를 이끌어가려고 하기 보다는 아이와 라포형성을 하는 것이 좋다. 아동이 자신의 의사표현을 하고싶지 않다는 은연중의 표현일 수 있으므로, 치료자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일정부분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


만약 아동이 진정으로 “좋은 기분”과 “나쁜 기분”을 느낀다면, 아동이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하여 양가감정을 느끼는 것이 되는데, 이때 치료자는 무조건적으로 “더 큰 감정” 그리고 “나쁜 기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아동이 좋다고 표현한 기분은 분명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좋은 기분을 구태여 이야기할 필요 없다. 그러나 나쁜 기분은 치료자가 반드시 다루어야 할 기분이기에, 이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이에 대하여 두 번째 맥락과 같이 “나쁜 기분”에 대한 탐색적이고 두 가지의 선택지를 통한 이야기를 이루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아동이 반응을 하지 않는 경우, 이는 아동의 기분이 선택지에 없는 경우이거나, 치료자에 대한 라포가 덜 형성된 경우이다.



아동이 겪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하여 선택지인 “좋다” “나쁘다” 둘 중 어느것에도 해당하지 않는 경우 치료자는 아동이 느낄만한 감정과 비슷한 상반된 감정을 꺼내야 한다. 이때 치료자의 적절한 반응은 “곰 인형과 코끼리 인형 둘 중에 선택지가 없다면 왼손을 잡아주고, 나랑 이야기 하기 싫다면 오른손을 잡아주렴”정도가 되겠다.



만약 아동이 이전에 좋아하는 만화영화, 또는 애착 물건 등이 존재한다면, 그러한 물건을 활용한 치료적 개입이 효과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Freud의 무의식과 고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