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마주칠 우리의 시선
나는 목포 반대편에 있는 경주를 좋아한다. 경주는 어디를 가도 고즈넉한 유적지 옆을 나란히 걸을 수 있다. 한옥건물이 많다. 스타벅스도 버거킹도 한옥이길래, 한복을 입고 있는 줄 알았다. 밤이 되면 산책하기 좋게 가로등이 길 따라 여기저기 이어진다. 어디를 걸어야 할지 고민하지 않고 어디로든 걸어도 산책로가 이어지는 곳. 자꾸만 밤길을 걷고 싶어지는 신기한 곳이다.
내가 이십 대일 때 우리 누나가 경주를 좋아해서 함께 몇 번 여행을 왔다. 오다 보니 나도 마음에 맞아 동생 유현이를 데리고 여행을 온 적도 있다.
생일을 맞아 오랜만에 경주에 다녀왔다. 즐거웠던 기억이 있는 곳에 가보니 20대의 내가 거기 있었다. 흘러가는 유행에 맞춰 가게들이 새로 생겼다 없어졌다 하지만,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곳들이 더 많아 보인다. 반가운 감정이 2박 3일 여행 동안 가장 컸던 것 같다.
폭설이라고 알람이 자꾸 울리더니 겨울비가 내렸다. 잎이 없는 겨울나무가 젖어 있는 풍경이 쓸쓸하지 않고 운치 있는 사진처럼 보였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습도가 맞춰지니 주차장에 고인 빗물도 요리조리 피하며 걷는 게 즐거웠다.
놀다 보니 어느 순간 문득 낯선 감정이 스쳤다.
누군가가 오늘의 나를 보고 있을 것 같은 느낌. 오늘의 하루를 일기로 적으면 분명히 미래의 누군가 읽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선이 흔들린 것 같다.
과거의 그날을 회상하는 나를, 미래의 그날 떠올리고 있겠지. 미래의 내 시선을 벌써 눈치챈 기분.
꿈속에서 이게 꿈인 걸 눈치채고 전지적 시점으로 꿈의 시점이 바뀌었던 것 같은 기분을 아는가.
언젠가 어느 날 경주에 다시 와서 가봤던 곳을 또 가보겠지. 어떤 장면을 회상하더라도 그 사진에는 지금의 내가 포함돼 있을 것이다.
둘째 날에는 경주 근처 포항에 있는 한 독립서점을 살펴보러 갔다. 목포에는 없는 글모임이 있길래 어떤 곳인지, 사장님 성향은 어떤지 궁금했다. 가게 구조나 진열된 책들을 보며 내 생각을 적립하고 미래에 대해 또 고민해 보기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이 고민을 내려놓고 다음 챕터로 가게 됐을까? 아니면 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전혀 다른 일에 빠져 새로운 삶을 살고 있을까? 그땐 글쟁이가 되려고 그런 일도 저질러보곤 했었지 하며 오늘의 나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먼 미래에 있는 나와 연결돼 있는 기분이 들자, 궁금해졌다. 그곳에서는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고 있을지 물어보고 싶어졌다.
‘밤을 새는 우리’ 글모임을 할 때 이야기 속 시간선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야기를 시간 순으로 배치해도 되지만 어떻게 순서를 둬야 가장 재밌을지 고민해 보자고 말했다. 복잡하게 엉켜있는 시간선이 이야기의 재미를 주고 메시지를 더 묵직하게 해 줄지도 모른다.
내 여정도 그런 과정 중인 걸까?
‘어바웃타임’ 속 남주인공 팀은 여유를 가지고 일상 속 작은 감사함들과 여유를 찾는 게 가장 근사한 시간여행이라고 말했다. 나도 아주 공감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가끔씩은 미래에 가서 나를 엿보고 오고 싶어지기도 한다.
내가 마주한 모든 선택의 갈림길과, 부담감들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볼 수 있는 그가 부러울 때가 가끔 있다.
의식하지 않을 때는 모르지만, 미래는 참 궁금한 영역이다. 미래의 어딘가에 그곳에서 나는 아직도 열심을 다 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까 묻고 싶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알게 됐나요? 별로라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재밌게 읽었다는 사람도 많겠지요? 아니면 천재지변의 이유로 글 쓰는 걸 그만두게 되었나요? 그리 되기까지 어떤 고난과 결단이 있었나요?
경주에서 미래의 나를 마주쳤다. 언젠가 다시 이곳에 와서 오늘의 나를 떠올릴 당신, 잘 지내고 계시나요? 원하던 바는 다 이루셨을까요? 아니면 그리 되지 않았지만 작은 일에 감사하며 살고 계신가요?
오늘은 반대로 제가 당신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