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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Oct 20. 2023

#10 더 이상 필라테스를 하지 않습니다.

수강이 끝났거든요.

3개월간의 필라테스 수업이 모두 끝났다. 나름 긴 시간인데 얼마 되지 않은 기분이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이 변했는가. 얼마나 변했냐는 말보다 무엇이 변했냐가 더 맞는 것 같다.


몸에 유연성이 증가했다. 발레리나처럼 쭉쭉 찢어질 만큼 유연해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불편함 이 없을 만큼 유연함이 생겼다. 사실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느낄 만큼의 뻣뻣함이 어디 있을까. 몸이 불편해서 팔이 안 올라간다거나 고개가 안 돌아간다면 이미 일상생활의 범주가 아니다. 


내가 말한 일상생활의 불편함은 뻐근함이다. 괜히 몸이 무겁고 뻐근해서 움직이기 싫고 앉고 싶고 눕고 싶고 자고 싶은 육체피로가 줄었다. 물에 흠뻑 젖어 무거워진 옷을 걸치고 있다가 벗은 것처럼 몸이 가볍다. 

오랜 시간 앉아서 작업해도 전보다 허리, 어깨에 쌓이는 통증이 줄었다. 물론 앉는 자세도 곧게 앉으려 노력했다. 


필라테스의 힘든 동작을 끝까지 유지하며 성취감이 생겼다. 

'끝까지 해냈다!'

이 작은 성취감은 다른 일들을 할 때 긍정적인 동기부여가 됐다. 


필라테스와 더불어 실행한 푸시업도 변화를 만들었다.

우선 외적으로 조금 더 나은 몸이 됐다. 가슴근육이 선명해지고 팔이 두꺼워졌다. 외적인 변화가 자신감을 올려줬다. 스트레스가 줄고 정신이 안정됐다. 내적(필라테스), 외적(푸시업)으로 변화가 생기니 무슨 일이든 에너지 있게 하게 됐다. 길을 걸을 때면 누구도 쳐다보진 않지만 괜히 으쓱해진 기분이 들었다. 한마디로 관종이 됐다.




그렇게 다시 몇 달이 지났다. 

이후로 홈트레이닝을 한 달쯤 유지하다가 그만뒀다. 변경된 일정 때문에 한두 번씩 빼먹다 보니 이런저런 핑계로 의지가 박살 났다.


몸상태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이제는 상체를 굽혀도 손끝은 땅 언저리에도 못 미친다. 수면 후 찾아오는 뻐근함에 아침 피로를 떨쳐내기 어려워졌다. 쉬는 날이면 '산책이라도 나갈까?' 하던 생각은 더 이상 들지 않는다. 소파에서 일어날 생각만 해도 '지금 너무 편해!'라는 생각이 뒤덮어버린다.


기껏 돈 내고서 고생시켜 놨더니 말짱 도루묵이 됐다.




역체감이 엄청나다!


사실 운동이 끝나고 일부러 안 움직인 것도 있다.(핑계가 아니라 진짜다!) 

필라테스를 배우면서 좋아진다고 느꼈던 것들이 정말 체감되는 변화였는지, 아니면 단순한 기분 탓인지 궁금했다. 원래 있을 땐 소중한 줄 모르는 법이라고 하잖는가.


필라테스를 할 땐, 바닥에 손이 닿고 몸이 좀 더 접히는 게 신기한 정도라고 생각했다. 운동 효과를 느끼면서 실질적인 변화로 확인할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운동을 멈추고 나서부터 잊고 있던 불편함들이 다시 쌓였다.


자려고 누울 때부터 어딘가 불편하다. 베개가 안 맞는 건지, 자세가 별로인 건지 뒤척이다가, 자고 일어나면 허리가 쑤신다. 어떤 날은 자다가 중간에 깼을 때도 불편함에 뒤척이다가 겨우 다시 잠들 때도 있다. 


의자에서 앉을 때 등을 바르게 세우고 앉는 것도 힘들어졌다. 말처럼 힘이 너무 들어가서 힘든 게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엉덩이를 앞으로 빼고 구부정하게 앉는다. 코어힘이 다시 빠지면서 불편함을 많이 느끼는 모양이다.(인식도 못하고 자세가 무너져있으니 남일처럼 느껴진다.)




꼭 필라테스가 아니더라도 운동은 꾸준함이 생명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몸은 녹슬고 게을러지기 마련이다.


예전에 헬스장을 2년 정도 다닌 적도 있다. 그때는 근육발달로 강인한 몸을 얻겠다는 생각보다, 외적으로 멋진 몸이 목표였다. 그래서 일상에서는 필라테스만큼 체감되는 변화가 없었다. 안 빠지고 잘 다닌다는 정신승리 정도만 했지...


그래서 다시 운동을 한다면 다시 필라테스를 해야지 싶다.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운동이니까. 

물론 목표를 무엇으로 잡는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내가 겪었던 변화는 기분 좋은 것이었다.(물론 힘들어서 속으로 욕하던 것과는 별개다.)


유튜브에는 정말 많은 영상들이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집에서 혼자 할 수도 있다. 별다른 도구도 필요 없다. 다이소에서 몇천 원짜리 운동밴드 하나만 사면 된다. 


그런데 운동이란 게 참 혼자 하기 힘들다. 


1차적으로 의지가 문제다. 

작은 핑계만 생겨도 하기 싫어지고 어떻게든 안 하게 된다. 이미 몇 개월 몸에 익어버린다면 모를까, 처음에는 없던 핑계까지 만든다. 갑자기 컨디션이 안 좋아지는 것처럼 스스로를 속이기까지 한다.


2차는 힘들 때 스스로와 타협하는 점이다. 

운동이란 건 힘들기 때문에 운동이다. 아무리 해도 안 힘들다면 그건 휴식이다. 

그런데 고통이 오고 한계점이 다가오면 자기도 모르게 슬슬 슬 자세를 풀어버린다. 10초간 유지하던 동작도 8~9초면 끝나버린다. 발길질을 하지 않으면 말도 멈춰 서기 마련이다.





내가 제일 먼저 필라테스를 시작할 때 여러 물음표가 있었다. 

남자가 해도 이상하지 않을지, 

남자가 해도 받아줄지,

남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남자가 해도 할 수 있는지,

남자가 해도 할 만 한지,

남자한테도 괜찮은 운동인지.


짧은 이 글들 속에 남자로서 필라테스를 준비하고 느꼈던 부분들을 담으려 노력했다.


사실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싶다. 나는 좋았는데 그는 안 좋을 수도 있다. 나는 힘들었는데 그는 이게 뭔가 싶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필라테스를 시작하고 싶은 남자분들에게 괜히 겁내지 말라는 용기를 전해주고 싶었다. 열심히 한다면 효과 없는 운동은 없다. 남의 눈치에 내 선택을, 내 건강을 맡기지 않았으면 한다.




"필라테스. 남자가 해도 됩니다. 좋던 말든은 스스로 판단해보 싶으시오. 저는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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