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면서 점점 스타일이 변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나는 환상문학을 썼다. 작정하고 소설가의 길을 걸은 건 아니고, Daum 카페에 가입해 취미 삼아 글을 연재했다. 그림을 보듯 집중적인 묘사력은 내 장점이었다.
매번 글을 올릴 때마다 댓글이 달렸고(카페 내의 친목 수준이었겠지만) 매번 묘사가 좋다는 칭찬이 반복됐다.
단순한 사물의 배치가 아니라 그곳의 빛, 공기, 분위기까지 내가 담아낼 수 있는 모든 걸 표현하려 노력했다. 내가 떠올리는 이 장면을 공유하고, 내가 만든 세상 속에서 주인공과 같은 걸 독자가 경험하고 느끼길 바랐다.
장르를 바꿔 웹소설을 쓰기로 했다. 옛날부터 읽어온 소설책과 달리 스낵컬처로 불리는 장르는 전면적인 스타일 개선이 필요했다. 풍부한 표현력보다는 스토리 진행이 중심이었다.(물론 표현력까지 좋으면 베스트다.) 이전처럼 미사구어로 치장된 내 글은 한 편의 스낵컬처로 소비되기엔 진행속도가 너무 더뎠다. 남성향 웹소설은 한 화에 5500자 정도를 기준으로 잡는데 표현만 가득 때려박으면 "다 읽었는데도 내용 진행이 안 되네." 소리를 듣게 된다. 매 회차마다 결제를 하는 웹소설에서 답답함은 굉장한 마이너스 요소다. 내 글이 아니어도 이미 수많은 소설들이 있으니 갈아타면 그만이니까.
매번 썼던 문장을 자르고 표현을 덜 어내며 최대한 심플하게 쓰려 노력했다. 내 안에 새겨진 문장력과 머리로 분석하는 웹소스타일의 문장력에 갭차이가 생겨 항상 '내가 제대로 쓰고 있는 걸까?'라는 답답함에 쌓여 있었다.
문장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때에, 좀 더 자유롭게 내 스타일을 살펴보고자 에세이에 관심을 뒀다. 정해진 틀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쓰다 보면 확실한 스타일이 잡힐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글은 여전히 어느 쪽도 아니었다. 웹소를 위해 바꾼 스타일에 맞춰 내뱉듯 써 내려간 글은 심플이라기 보단 거칠게 느껴졌다. 핵심만 날것으로 전달하는 문장은 어딘가 많이 부족하게 느껴졌고, 원래 스타일에 맞춰 빈 곳을 채워 넣은 문장은 너무 지저분하게 느껴졌다. 전하고 싶은 내용은 담았지만 글 자체에 만족하지 못해 글을 쓸 때마다 여전한 답답함을 느꼈다.
결국 난 글쓰기에서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쳐버렸다.
양립할 수 없는 선택을 한 건지, 아니면 아직 방법을 모르고 겉돌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냥 욕심이 많아서 둘 다 삼키려다가 소화불량에 걸린 걸지도 모른다.
그런 상태로 또다시 글을 쓴다.
이미 내 글은 자리를 잡았을지 모른다. 그저 스스로를 낯설게 느끼고 있을 뿐.
사실 답은 없다. 내가 내 마음대로 쓰는 글에 정답이 어디 있을까. 그런 것에 답을 찾으려는 나 자신이 제일 멍청하다.
욕심만 좀 덜어내자. 그리고 그냥 쓰자.
무엇이던 글을 쓰다 보면 많은 답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