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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Jan 03. 2024

나와 견해가 다른 너.

견해가 다르다는 건 마음이 다르다는 말이다. 

한 가지를 다르게 보고 생각하며 느끼는데 어찌 그것을 향해 품은 마음이 같을 수 있을까. 인간은 스스로 생각을 하는 동물이기에 이 견해를 좁히기는 매우 어렵다. 

한쪽이 어설픈 정보로 얕은 믿음을 품은 경우에는 더 많은 정보로 견해를 바꿀 수 있다. 애초에 스스로 떠올린 생각에 확신이 얕은 경우다.


그러나 바보가 신념을 가지면 위험하다는 말처럼,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답을 내린 순간 생각의 뿌리는 드러낼 수 없을 만큼 깊이 박혀버린다. "말이 안 통하네!" 같은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로 자기가 옳다는 생각은 서로를 깎아내며 자신과 같은 모양으로 만들려 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벗어나 내가 이기냐 네가 이기냐 같은 기싸움으로 변질된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잘못됐다는 걸 알아차려도 인정하면 괜히 지는 것 같아서 고집을 부리게 된다. 최소한 정신 승리라도 해야 두 발 쭉 뻗고 잘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는 과격한 신념은 '견해'라는 단어 자체를 부정한다.


남을 이해하려는 마음은 1도 없으면서 남이 나를 이해할 거라는 믿음은 어디서 생기는 걸까? 사람은 모두가 다르니까 상대가 나와 다르게 이해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그건 결과다. 상대방이 이해해주고 나서  고맙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다. 내가 먼저 상대방의 이해를 강요하는 건 이기적인 행동이다.


먼저 받아들이자. 상대가 이해해 주기 전에 내가 먼저 이해하려 노력하자.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다면 '그냥 나랑 다르구나'하고 결론을 내리자. 법정 싸움도 아닌데 굳이 하나로 결론을 내릴 필요가 있을까. 짜장 먹고 싶은 사람은 짜장 먹고, 짬뽕 먹고 싶은 사람은 짬뽕을 먹으면 될 일인데. 서로 양보해서 반반씩 짬짜면을 먹어도 될 일이다. 짬짜면이라고 해서 두 가지를 한 번에 섞는 것도 아니지 않나. 따로여도 같이 먹을 수 있는 짬짜면처럼 의견의 합은 다양한 방법으로 낼 수 있다.


그러니 서로의 견해를 존중하자. 상대방이 살아온 시간, 공간, 관계, 선택들을 존중하고 그 사람 자체에 존중하자. 

그제야 나 자신은 존중받을 자격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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