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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Dec 21. 2023

지하철에 서서가면 착한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가식이 곁들여진 착한 사람이다.

착하지 않은데 착하려는 사람. 착하고 싶은 사람. 그런 이미지였으면 좋겠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양보도 하고 도움도 주고 그런 사람으로서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쓰레기는 더럽지 않아도 '쓰레기'라고 인식되는 순간 더럽게 느껴진다. 가지고 다니기 불편하다고 해야 할까? 불쾌하다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나는 길거리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한밤중 아무도 없는 길거리라 해도 마찬가지다. 불편한 손짓으로 주머니 속에 뒤적거리다가 쓰레기통을 발견해서 버리거나 집까지 가져와 버린다. 너무나 당연한 건데 그걸 실천하는 스스로가 조금 멋지게 느껴진다. 


문을 열 때 뒷사람을 배려해 문을 잡아준다거나, 길을 가고 계단을 오를 때 오른쪽으로 다닌다거나, 엘리베이터에서 열림 버튼을 눌러주고 있을 때면 괜한 충족감이 느껴진다. 속된 말로 뽕이 찬다.


그런데 지하철을 탈 때면 그렇게나 앉고 싶다. 억척스럽게 인성질하면서 자리를 찾아 앉는 건 아니지만 기회가 온다면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나는 지하철을 이용해 출퇴근을 한다. 지하철로 1시간. 차를 타고 운전해도 한 시간. 어차피 같은 시간이면 교통비도 아끼고, 신경도 덜 쓰고, 졸리면 졸면서 갈 수도 있고, 책 볼 시간도 벌 수 있어서 지하철을 애용한다. 

2번의 환승을 해야 하지만 운 좋게 시작점과 가까워 앉아서 출근할 수 있다. 


지하철에 앉으면 책을 읽는다. 가끔은 넷플릭스도 보고, 노래를 들으며 잠도 잔다. 

최대한 주변 다른 사람을 보지 않으려 한다. 

그 사람들에겐 내가 내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필하려 한다. 


사실상 양보하기 싫다는 심보다.


물론 양보할 상황이 오면 한다. 발만 봐도 티가나는 사람들이 있다. 연세가 있으셔서 거동이 힘드신 분들은 서계시는 자세만으로도 티가 난다. 그런 분들에게는 양보를 한다. (아무리 심보가 고약해도 염치는 있다.)


퇴근할 때는 조금 다르다. 인원이 몰리는 군자역에서 환승할 때는 열차에 탈 수 있을지부터가 걱정이다. 여차하면 기다렸다가 다음 열차를 타지만 여기도 사람은 미어터지게 많다. 당연히 앉을자리는 없다.

인파에 밀려 열차에 빨려 들어가다 보면 가끔 앉는 자리 앞에 선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에는 사람들이 제법 일어난다. 운이 좋다면 내가 선 자리 앞사람이 일어나기도 한다.


문제는 애매하게 서서 옆사람과 나 사이에 위치한 자리가 나는 경우다.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곧바로 앉지 않는다. 억척스러운 어르신이나 표정에서부터 뻔뻔함이 느껴지는 사람이 아니라면 억척스럽게 자리를 탐내지 않는다. 하지만 속으로는 엄청 눈치를 보겠지!


나는 자리가 나면 속으로 3초를 센다. 그때까지 자리가 비워져 있으면 능구렁이처럼 빈틈을 파고들어 앉는다. 가끔 타이밍이 겹쳐서 옆사람이 움찔거릴 때면 왠지 모를 승리감까지 느껴진다. 

반대로 다른 사람이 먼저 앉으면 엄청난 자책과 상실감을 느낀다. 좀만 더 빨리 움직일걸! 눈치 보지 않고 선점할걸!


양보를 해서 좋다는 충족감은 없다. 그 순간 나는 착하지 않은 이기심으로 가득 찬다. 애초에 남에게 자랑하고 인정받을 만큼 착한 일을 한 것도 아니다. 그냥 당연한 걸 당연하게 한 수준. 흰색이고 싶은 회색일 뿐.


사람의 본성이라는 게 참 별거 아니다. 그 양면성이 확실해질 때는 찜찜함 밖에 안 느껴진다.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을 느끼는 만큼, 선행을 베풀지 않았음에 불만족을 느낀다면 나는 조금 더 하얀색에 가까워질까?


이 고뇌 속에서도 나는 앉아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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