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뿌리를 내린 나무는 스스로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 시작점이 어떻든 불평불만을 할 수가 없다. 어쨌든 적응해야 하고 어쨌든 자라나야 한다. 적응하지 못하면 시들게 된다. 억울할 법도 하다. 자기가 선택해서 그런 단단한 바닥에 떨어진 게 아닌데. 원해서 볕하나 들지 않는 구석에 위치한 게 아닌데. 그럼에도 최대한 뿌리를 내리고 양분을 더듬어본다. 어쨌든 적응하고, 어쨌든 자라나 보려고.
그렇기에 대단하다. 견디고 버텨 자라나는 나무가.
흔들리는 녀석은 흔들리는 대로, 굳건한 녀석은 굳건하게,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한다. 그 치열한 손끝은 하늘에 닿도록 뻗는다. 더 높은 지향을 따라 생존을 붙잡으려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간절함은 커지고 더 많은 손을 내민다.
나는 꽃씨다. 수십 년을 살아도 갈망만 하는 뿌리 없는 꽃씨다.
비옥하고 부드러운 토양, 촉촉한 수분과 따사로운 볕을 기다린다. 분명 그곳이라면 튼튼하게 자라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점점 말라간다. 주변에 솟아나는 다른 나무들을 보며 언젠가 나도 자라날 거란 꿈만 꾼다.
나무도 꿈을 꿀까? 좀 더 좋은 곳에서 싱그러운 과실이 열릴 꿈을?
나는 생각을 하고 나무는 행동을 한다.
인간은 생각을 할 수 있기에 가장 영리한 생명체라고 하는데, 적어도 내 생각에 생명의 반짝임은 생각하지 않는 나무가 더 굉장하게 느껴진다.
생각이 너무 많은 게 내 생명의 뿌리를 자르고 있는 것 같다.
그저 나무처럼. 치열하게. 무던하게.
그저 더 높은 곳을 향해 손을 뻗는 그런 나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