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벌써 몇 년째 맞고 있는 어버이날이다.
아이들을 키운다지만 뭔가 보답받고 싶은 마음은 없다. 초등학교에서 만들어오는 작은 감사편지 하나도 좋다. 애초에 내 생일을 챙기는 것조차 싫어하는 나에게 어버이날은 거추장스러운 이벤트다.
그런데 받는 것과 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받는 입장에서 안 받는 건 나만 납득하면 될 일이지만, 해야 하는 입장에서 하지 않는 건 도리에 어긋나는 짓이다. 법으로 처벌받지는 않는다 해도 내 마음이 편치 않다.
평소에 연락을 하지 않는 내게 이런 날은 구실 좋게 연락할 핑곗거리다. '어버이날'이라는 것 자체가 평소 효도라는 걸 신경도 안 쓴 자식들에게 제발 오늘 하루만이라도 효도 비스무레한 뭐라도 해보라고 등 떠미는 날이지 않는가.(사실무근)
기획적 효심을 끌어올려 깊은 마음으로 뜻을 전하려는데 그간 하지 않았던 말문을 트는 법부터 난관이다. 낳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독하게도 뻔한 말들은 왠지 성에 차지 않는다. 너무 오버스럽지 않으며 마음을 전할 문구를 찾기 위해 검색을 해본다. 아- 결국 뻔한 말들 뿐이다...
말로만 퉁치기도 뭐 하다. 작더라도 작은 성의를 얹어야 할 것 같아 초조하다.
이거는 저번에 보냈었고, 저거는 저저번에 보냈었고...
이런저런 선물거리를 검색해 보고 둘러봐도 보낼만한 선물이 없다. 아무리 구색용이라지만 매번 똑같은걸 뻔하게 보내기는 좀 그렇다. 최고의 선물은 현금이라지만 그것도 참 애매하다. 이 정도는 왠지 적은 것 같고 저 정도는 내가 부담스럽고... 효심을 금액으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는 입장에서 생각만큼을 봉투에 담아내기 어렵다.
어렵다 어려워. 마음이라는 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평소에 진심으로 느껴지게끔 열심히 노력했어야 하는데, 물질로 환산해 단 한 번의 기회로 터뜨리려니 가소롭기 짝이 없다.
그래도 노력한다. 스스로에게 눈칫밥 먹어가며 한 자 한 자 짧은 메시지를 담는다. 등줄기부터 소름이 찌르르 번져가지만 사랑한다는 말도 덧붙인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어색해진 말이지만 이런 날이니 만큼 전한다. 어쨌든 저쨌건 그래도 건강하시라고. 그래도 사랑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