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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Sep 11. 2024

연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솔직히 연필은 구시대적 유물이라고 생각했다. 초등학생 이후로는 샤프를 사용하고 더 커서는 스마트 기기를 이용하면서 펜 자체를 잡을 일이 없어졌다. 더욱이 글 쓰는 속도가 느리고 필체는 똥 묻은 것처럼 보기 거북스러워 필기라는 행위 자체를 피했다. 손가락 아파가며 꾸역꾸역 눌러쓰기보단 눈감고도 스르륵 치는 타자가 훨씬 편하니까. 이젠 그마저도 귀찮아 음성메모기능을 사용한다. 제법 정확하다. 카톡도 귀찮을 땐 말로 써 보낸다. 그 오랜 시간 스마트함에 물들었다.


그런데 우리 애들은 연필을 쓴다. 다이소에 갈 때마다 '저걸 누가사냐' 싶던 연필세트는 아이 친구들 생일선물로 더할 나위 없는 잇템이었다. 샤프심은 뿐지러먹기 일쑤라 드륵드륵 연필을 깎아 쓰는 걸 더 선호한다. 어쩔 때는 연필을 깎고 싶어서 글을 쓰나 싶을 정도다. 


생각해 보면 나 어릴 때도 그랬다. 그래. 그 손 맛이 있지. 은빛 기차 머리통을 당겨 연필을 꽂고 돌리면 미세하게 손끝을 간지르는 진동. 그 손맛이 어쩐지 떠올랐다. 


우리 집에 있는 연필깎이는 입을 벌리고 이빨을 누르면 깨물리는 상어모양의 복불복 게임기가 연필깎이다. 은빛기차 연필깎이의 묵직한 안정감과 부드럽게 떨려오는 진동과는 다르지만 자신만의 떨림을 전해준다. 그리운 손맛에 아이의 새 연필을 반쪼가리 연필로 만들어 버렸다. 옛날에는 뾰족해지면 칼날이 헛돌면서 다 깎였다고 알려줬는데, 이 연필깎이는 돌리는 데로 하염없이 깎아낸다. 중간에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다면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하고 몽땅 갈렸을 거다.


구관이 명관이다.


연필깎이와 마찬가지로 연필도 샤프보다 나은 느낌이 들었다. 가늘게 쓰는 데는 샤프가 유리하지만 연필 몸통으로 전해지는 사각거림은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샤프의 묵직함과 무게중심으로는 나타내지 못하는 가벼운 나무연필의 떨림.




좋아지고 편해졌다고 해서 많은 걸 놓치고 있진 않나 괜히 생각해 본다. 우표를 붙이기 위해 침을 바르던 마른풀 맛을 잃었고, 무거운 영어사전을 들고 다니며 어쩐지 나 공부 좀 잘하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다는 으쓱함을 잃었다. 그렇게 잃어버린 것들은 빈 구멍으로 계속 남아있나 보다. 여전히 LP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 이해 간달까?


사실 그것들은 추억이라기보단 번거로움이다. 우표를 따로 사서 붙여놓고 며칠을 기다려야 하는 번거로움. A, B, C를 항목별로 대조하고 시간을 낭비하면서 금방 까먹을 단어 하나 겨우 찾아내는 번거로움.

그런 번거로움 조차 그립고 아련하게 느껴지는 한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아직도 세상이 번거로워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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