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출근길, 발 밑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다. 바닥에는 몇몇 개의 나뭇잎이 떨어져 있었다. 아직 싱싱해 보이는데 눈치 보느라 떨어진 녀석도 있고, 몸뚱이의 절반 넘게 색이 바래서 새치처럼 떨어져 나간 놈들도 있었다. 벚꽃나무잎이다.
중랑천을 끼고 있는 우리 동네는 물길 따라 벚꽃길이 형성되어 매년 봄이면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게 몰린다. 지하철역 앞 길가도 그에 못지않게 긴 벚꽃길을 만든다. 어딜 가도 하얗다. 사람들 옷도 못지않게 화사해서 세상 모든 게 한 톤 밝아진 느낌이다.
새하얗고 따뜻한 눈이 내리던 동네. 그 길이 가을을 맞이하려 하고 있다.
지독히도 더웠던 이번 여름. 참 길기도 길었더랬다. 하얬던 나무들은 녹색 잎으로 갈아입었다. 높고 넓게 펼쳐져 볕을 가려주는 우산처럼 그 더위를 조금은 나눠가 주었다. 그 싱그럽게 연둣빛을 내던 잎들도 짙게 물든 지 오래다. 더 이상은 햇볕을 막아주기 버거워 노쇄한 잎이 떨어지기 시작한 거다.
확연히 시원해진 날씨에 이제는 에어컨을 끌 수 있겠다고 좋아했다. 그런데 떨어진 나뭇잎을 보니 밑도 끝도 없이 갑갑해졌다. 낙엽이라고 부르기도 어색할 정도로 그냥 떨어져 있는 잎. 바스러지기엔 너무 이른 추락이 서둘러 더위를 내쫓는 내 마음 탓 같이 느껴졌다.
조금은 서서히 시원해질 줄 알았다. 나도 이렇게 갑자기 가을이 올 줄은 몰랐지. 옷가게들이 아직도 더운데 긴팔 내놓는다고 생각했는데 어젯밤에 겉옷을 안 챙긴 걸 크게 후회했다.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든다. 추석이 지나고도 계속된 더위 탓에 막연히 계속 더울 거라 생각했다. 코앞에 있는 '다음'을 떠올리지도 못하고 계속 지금과 같을 거라고 막연하게... 그럼에도 가을이 왔다. 내가 신경을 쓰든 말든 다음은 결국 찾아홨다.
질질 끌어 게으르게 지낸 내 요즘이 출근길 낙엽처럼 내 발밑에 떨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