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쉽죠?"
어린 시절 들었던 저 말은 수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한 사람을 떠올리게 만든다.
스마트폰은커녕 컴퓨터도 보급되기 전, 학교 끝나고 EBS를 켜면 밥아저씨가 슥슥슥 그리던 그림을 보곤 했다.
내겐 흰색, 파란색, 초록색 따위의 것들은 무슨 아이스베이지라느니 메탈릭 브라운이라느니 하는 식으로 다른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냥 찍어내기만 해도 나무가 되고 산이 되고 호수에 비추는 성스러운 달빛이 캔버스에 새겨졌다.
"참 쉽죠"라는 말처럼 너무도 쉽게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냈다. 정작 그 그림을 따라 해 본 적은 없지만 보기만 했을 땐 똑같이 그린다면 나도 그렇게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길 바라던 그의 상냥한 마음이 내겐 아직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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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밥 로스는 정작 미술계에서는 삼류 이단아처럼 평가받았다고 한다. '전통 예술'이 아니라는 이유로 밥아저씨의 그림자체가 부정한 것 취급 됐다. 마치 오랜 명맥을 이어온 도공 장인이 공장에서 찍어내는 그릇을 보며 악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해를 못 하는 것도 아니다. 오랜 시간을 통해 쌓아 올린 자신의 실력을 EBS나 보던 어린아이가 느낌이라도 얼추 따라 한다면 허무하고 화가 날 거다. 그래도 나는 사람들의 마음에 날개를 달아준 밥아저씨 쪽에 좀 더 마음이 간다. 일단 어떤 전통적 기법이 있는지는 몰라도 밥아저씨의 그림은 내 눈에 너무 완벽했다.
마음이라는 게 그런 건가 보다. 내 마음에 먼저 닿은 쪽으로 흘러가는 것.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내 편은 감싸고도는 게 마음인가 보다.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닌 나도 누군가에게 밥아저씨로 기억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