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에 도착해보니 방문이 모두 닫혀있다.
음- 냄새가 난다. 달코롬한 불고기 냄새. 냄새가 많이 나는 요리를 할 때면 방 문을 닫아둔다. 나는 크게 개의치 않지만 냄새에 예민한 아내분은 집에 음식 냄새가 배는 걸 못 참는다. 어차피 좀 지나면 냄새도 안 나는데 말야.
평소 거실에 나와있는 두 녀석이 안 보인다. 아마 방에서 그림 그리고 놀고 있겠지. 퇴근을 반기지 않는 서운함보다, 없는 셈치고 편하게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쪽 마음이 더 크다. 어차피 옷 갈아입는 건 똑같은데 극 N의 성향으로는 미묘하게 좀 더 자유로운 느낌이 든다.
제법 미적거리면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여전히 아이들이 안 보인다. 그림에 푹 빠졌구먼. 만날 똑같은 걸 그리면서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는 몰라도 한번 그리기 시작하면 A4용지 몇 장씩 그림을 그리고 있는다. 작은 인기척을 내며 방 문을 열어본다. 내가 집에 온 걸 알고 있었는지 새침하게 돌아보는 큰 녀석이 아는 척을 한다. 작은 녀석은 없다.
"혀기는?"
"몰라."
대상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한 모습에서 리얼한 가족애를 느낀다. 어이없이 한번 웃어버리고는 다른 방을 열어본다. 장난감을 만지작 거리던 작은 녀석과 마주친다.
"왜 누나랑 같이 안 있어?"
"내가 병원 놀이 하자고 했는데, 누나가 안 한데..."
"저런."이라고 작은 감상을 전해주며 다시 문을 닫는다. 위로 따위는 없다. 신경 안 쓰는 편이 내 정신건강에도 이로우니까.
딱히 무심한 건 아니고, 감정은 이미 풀렸지만 상황 때문에 삐짐을 유지하는 게 보여서 그렇다. 예전에는 그런 상황까지 잡아주려 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너무 많은 개입을 하면 녀석들이 문제 해결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결코 내가 귀찮아서가 아니다. 아- 진짜로.
집안 상황과는 별개로 개운한 기분이 든다. 내가 할 일에서 '아이들'이라는 무게감이 덜어진 듯하다. 아내분이 요리하시는 동안 수저와 젓가락을 세팅하고. 각 자리에 물 한 컵씩 배치하고, 냉장고에서 잔반찬들을 꺼내 두고. 신경 쓸 곳이 부엌 한 곳으로 줄어드니 의미 없이 일의 효율이 높아진다.
"밥 먹자-"
저녁상이 거의 다 차려질 즈음 아이들에게 밥 먹게 나오라고 말한다. 말한다고 후딱 튀어나오는 게 아니니까 미리 선포해두지 않으면 제때 식사를 시작할 수 없다. 잔반찬들을 보기 좋게 접시에 덜어담고 메인인 불고기까지 식탁 위에 자리하고 나면 다시 한번 통보한다.
"빨리 나와-"
뭔가 정리하는지 스스스-하는 소리를 기다려주면 문이 달칵 열린다.
드디어 다시 마주한 두 녀석.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 묵직한 긴장감이... 전혀 돌지 않는다. 삐지고 싸우고 그런 것도 없다. 마치 한 방에서 같이 놀다가 나온 것처럼 금세 장난치며 자리에 앉는다. 그럴 거면 왜 삐져서 따로 있던 거냐...
아이들의 감정 상황은 어른들의 그것처럼 복잡하지 않다.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싫은 거다. 치고받고 싸운다면 당연히 중재를 해줘야겠지만, 설렁설렁한 상황 정도는 내가 나서지 않아도 시간이 해결해준다. 아이들에겐 별 거 아닌 작은 일인데, 괜히 내가 나서서 그 가벼움에 진지함과 무게를 얹을 필요는 없지.
식사 분위기가 좋다. 아무런 불온도 없이 편안한 식사시간. 몇 년의 시간을 겪고 나서야 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배웠다. 시간을 이용할 줄 아는 노하우라고 표현하고 싶다.
다시 말하지만 절대 신경 쓰기 귀찮아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