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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Jun 08. 2024

가보지 않은 길

등산 일기 5

용문산관광단지를 향해 달리는 차 안.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이 양평으로 뻗은 길 위로 유도선처럼 이어졌다. 분홍색 유도선을 닮은 이 기분은 설렘에 가깝지만, 두려움도 더러 존재한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설레면서 동시에 두렵고, 두려운 일이기에 값지다. 가보지 않은 산도 다르지 않다.



지리산 종주를 앞둔 나는 마지막 점검을 위해 용문산에 오르기로 했다. 필히 용문산이어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막상 내려와서는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버거운 하산길이 나의 심신을 무장시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피로가 쌓인 다리로 가파른 너덜길을 내려오며 지리산은 훨씬 고된 종주가 될 것임을 예견했다.



경기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용문산은 들머리의 고도가 낮아 900~1,000미터를 제힘으로 올라야 하는 만만치 않은 산이다. 급격한 경사나 계단로는 없지만 정상까지 계속되는 너덜길에 피로감이 상당하다. 그만큼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탓인지 유독 인적이 드물었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물소리에 우리의 발자국 소리만이 더해진다.



용문산처럼 처음 와보는 산에서는 온몸의 신경이 곤두선다. 블로그나 유튜브를 통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지만 실제 피부로 느껴지는 감각은 다른 문제다. 눈으로만 보았던 등로가 발끝에서 펼쳐질 때 무릎에 난 작은 생채기부터 동행의 컨디션까지 모든 것은 변수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재미있는 경험이 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잠시 돌아보니 절경이 있다.



용문산관광단지를 시작으로 그대로 내려가는 코스를 구상했던 우리는 현장에서 하산 코스를 변경했다. 올라온 길로 내려가기에는 너덜길 경사가 상당해 힘들고 위험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언제나 안전이 최우선이기에 거리가 조금 늘어나더라도 무리할 필요가 없음을 인정했다. 이렇게 변수를 수용하는 태도는 경험의 가치를 좌우한다.



다소 수월했던 상원사 방향으로 내려오니 저녁 7시 10분 전이다. 휴식시간을 포함해서 7시간 정도 산속에

있었던 셈이다. 7시간이라는 시간은 내세울만한 기록은 아니지만, 왕복 9km와 957m의 누적고도를 견뎌낸 나의 의지다. 뛰어난 기록보다는 뇌리에 어떠한 모양으로 기록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첫 용문산 산행은 나에게 ‘가능성’으로 기록되었다.



용문산 정상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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