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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May 14. 2023

맛있는 클래식 입문서

책 [이토록 클래식이 끌리는 순간] |도서 리뷰

‘아. 음악 듣기 좋은 세상이다.’


클래식에 입문한 뒤로 종종 감탄한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부터 음악 큐레이션 서비스, 신곡이 빠르게 업데이트되는 음악 플랫폼까지. 이런 기술이 보편화된 것도 꽤 된 지라 나의 감탄은 새삼스러운 호들갑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중학생이던 10년 전만을 돌아보더라도 음악 디깅은 생각보다 번거로운 과정의 연속이었다. 특히 대중적인 장르가 아니라면 마니아들이 모여 소통하는 커뮤니티를 찾아 정보를 얻고, 신곡 소식을 찾아보는 일이 필수였다. 그뿐일까 취향에 맞는 음악을 고르기 위해 수십번 수백 번 모르는 음악을 하나하나 클릭하며 20초 이상 들어봐야 했고, 거기서 선정과 다운로드의 과정을 거쳐 MP3 기기에 넣기까지 최소 하루 2~3시간을 투자했다. 물론 그때는 그것도 음악을 즐기는 과정 중 하나라 시간이 아깝지도, 싫지도 않았지만 힘들기는 했었다. 이제 와 그때를 회상해 보면 지금의 시스템에 새삼 감사함을 느끼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클래식은 내가 아주 좋아하던 분야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관심이 없는 분야도 아니었다. 학창 시절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가 유행할 때 나도 전편을 정주행하면서 콘텐츠의 힘으로 클래식에 푹 빠져 나온 음악은 죄다 찾아들었다. 그 때 라흐마니노프라는 작곡가를 처음 알게 되었고, 그의 음악에 매료되기도 했다.


줄거리는 아득하지만, 이것에 미쳐있었다는 것, 라흐마니노프의 음악만은 기억이 난다..

 

또 공부할 때 뉴에이지를 찾아 들으며 이루마를 비롯한 뉴에이지 아티스트를 알게 되었고, 일 년에 두세 번 정도는 클래식 공연을 찾았다. 그럼에도 클래식은 타 장르에 비해 진입장벽이 좀 높은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공부하고 들어온 사람이 아니라면 검색하는 것부터가 난관이고, 넘버를 기억하고 그 차이를 구별하기도 쉬운일이 아니다. 심지어 작곡가, 연주가, 시대, 공연장에 따라 다양한 음반이 존재한다. 이 부분이 클래식 감상의 즐거움을 넓혀주는 부분이지만, 입문자에게는 넘기 어려운 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곡과 Room with a view 는 이루마의 곡 중 최애


큐레이션 서비스가 없었다면 난 내 취향의 음악을 만나지 못해 금방 흥미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원하는 음악을 원하는 만큼 들을 수 있고, 공부하지 않고 나의 선호만으로도 괜찮은 노래를 추천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그렇게 일 년간 좋아하는 음악이 쌓였다. 자연스럽게 선호하는 클래식이 생겼고, 좋아하는 아티스트도 생겼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내 취향을 특징지을 용어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좋아하면 그 마음을 넘어서서 설명하고 표현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큐레이션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까지는 대신 설명해주지 않는다. 자칫하면 음악만 알고 아티스트 이름과 제목은 모르는 허울뿐인 팬이 될 것 같았다.


보석같은 곡을 하나씩 주워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시점에 책<이토록 클래식이 끌리는 순간>을 만났다. 책을 한 번 훑으며 내가 느끼는 갈증을 풀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대로 <이토록 클래식이 끌리는 순간>은 따로 공부하긴 부담스럽고, 키워드를 몰라 찾기 힘들었던 나에게 클래식 가이드가 되어주었다. 마치 어린 시절 미술 도서를 읽으며 감상의 즐거움을 알았을 때의 시간을 다시 마주하는 듯했다. 눈으로 보이지 않아 표현하기 힘든 음악의 영역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저자의 표현에 감탄하고, 연주법의 차이에 대한 섬세하고도 자세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와닿았다.



특히 같은 작곡가의 곡이라 하더라도 연주자가 누구냐에 따라 곡의 분위기가 바뀌고, 같은 작곡가에 심지어 같은 연주자라도 언제 어느 시점에 어떤 오케스트라와 연주하느냐에 따라 또다시 해석과 느낌이 바뀐다는 이야기가 새로웠다. 클래식은 작곡가와 연주자의 이름이 익숙하지 않으면 더욱 생소하게 느껴지고, 제목도 넘버로만 표시되기에 분간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음악 링크는 QR 코드로 표기하여 검색과 감상을 용이하게 했다. 저자는 같은 곡이라도 해석과 연주자, 사람이 처한 환경과 시대적인 분위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며, 나아가 음악이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음미할 수 있는지 덧붙인다. 


첫 장 비발디<사계>를 중심으로 해석의 차이와 연주의 연관성을 설명한 ‘고양이로 둔갑한 바로크의 호랑이’부터 무척 흥미로웠다. 사실 나는 비발디<사계>, 베토벤 5번 교향곡<운명>과 같은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 너무 유명한 클래식에 대해서는 반감을 갖고 있었다. 너무 자주 노출되어 익숙했고, 그렇다 보니 고루하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그러나 시대와 연주자에 따라 같은 곡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유명 클래식일수록 ‘잘 알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제대로 감상할 기회가 없던 것 같았다. 저자가 짚어주는 부분을 상기하며 감상에 돌입했다. 익숙한 것이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no.1의 곡 비교도 무척 재밌었다. 이 작품 또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은 만큼 나도 잘 알고 있고, 자주 듣는 곡이었다. 그러나 작곡가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마음으로 이런 곡을 작곡했는지는 몰랐다. 에릭 사티의 괴짜적인 면모와 더불어 매력적인 부분을 알고 들으니 짐노페디 뿐 아니라 그의 음악 세계가 궁금해졌다. 특히 연주자에 따른 곡 해석을 비교하며 들으니 그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졌다. 라인베르트 데 레우가 연주한 짐노페디는 눈 앞이 자욱한 새벽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몽환적으로 느껴졌다. 


그 외에도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들으며 그의 배경이 된 러시아의 역사와 특유의 민족적 감성을 이해하며 곡을 이해하는 폭을 넓혔고, 스트라빈스키<봄의 제전>을 들으며 나의 감상과 곡의 모티브가 된 스토리텔링이 얼마나 다른지 느낄 수 있었다.


<이토록 클래식이 끌리는 순간>은 잘 차려진 밥상 같은 책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깊이 있고 색다른 클래식 이야기를 통해 클래식의 매력을 하나씩 알아가기 좋다. 아는 곡도 모르는 곡도 그의 가이드에 따라 흘러가듯 감상하다 보면 어느 새 취향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한 장씩 넘길 수록 클래식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 숨겨진 재미와 포인트를 알게 된다. 우리는 저자가 떠먹여 주는 밥상을 펼쳐 보기만 하면 된다. 다시 여유로운 아침 혹은 저녁 한 장씩 넘기며 하루 하나의 작품을 꼭꼭 음미하고 싶은 마음에 기대가 된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4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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