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대개 사람들은 작가의 말을 읽지 않는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나 결혼식의 주례사처럼, 앞으로 있을 중요한 본론에 관심이 더 많기에 어서 지나가길 바라는 절차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나도 책을 몇 번이나 읽고 나서 더 이상의 새로움을 느낄만한 텍스트가 없을 때, 그제야 한 번 서문이나 작가의 말을 읽었다.
그런 나였음에도 서문을, 그것도 장황하게 적는 이유는 오로지 부족한 글 실력 때문이다. 주제를 미리 밝히지 않고는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기에. 귀찮더라도 꼭 읽어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미리 장르를 밝혀두자면, 이는 자전적 소설이다.
글을 쓰는 데에는 제각기 이유가 있다. 그렇지만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이라면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글을 읽는 이유 또한 서술자의 이야기를 듣기 위함이고. 그렇기에 목적이나 주제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글을 독자의 시간만 빼앗는 불쏘시개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전문작가가 썼음에도 당장의 인기나 여타 사정으로 스토리가 산으로 가버려 비판받는 글이나 만화, 드라마들을 종종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초보자들에게는 에필로그를 먼저 쓰는 법을 많이 추천하곤 한다. 끝이 정해져있으면 옆길로 새는 것을 어느 정도 방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진지하게 글 한 번 제대로 써본 적 없던 나에게 적절한 방법임에 틀림없었지만, 사용할 수 없었다. 바라고자 하는 끝은 있었지만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보장도 없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하나도 예측되는 것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중간 결과물을 보여주며 충고를 듣는 것으로 갈음했다. 글을 받아든 사람에게 목적을 설명하고 그 것이 잘 표현되었는지를 중점으로 봐달라고 부탁했다.
수술과 암 진단이라는 풍파 앞에서 불안에 떨었던 그때, 도움을 얻고자 인터넷에서 관련 정보를 검색했다. 9할은 광고였다. 벼랑 끝에 선 자들의 희망을 먹고 자라는 괴물들. 그 사이에서 겨우 찾아낸 수기도 의심이 많은 나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2006년에 방영한 드라마 《미스터 굿바이》의 주된 무대인 엠파이어 호텔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노트가 있다. 그 노트에는 오직 자신의 실패만을 기록할 수 있고 성공담을 적을 수 없다. 후대 사람들이 그 성공담에 얽매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사회의 발전이나 변화에 따라 과거의 성공 사례가 현재 상황에 들어맞지 않을 수 있으므로.
이와 같이 나는 그들이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했느냐는 밝은 ‘길’보다는 힘들 때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실수를 했는지, 정도(正道)에서 벗어났을 때 맞닥뜨릴 수 있는 함정이나 어두운 현실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기대에 맞는 글은 찾을 수 없었고 결심했다. 길, 함정, 밝음, 어둠 모든 것을 담은 지도(Map)를 만들겠다고. 다른 사람만큼은 내가 만든 지도를 통해 더 나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작은 그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이유도 추가되었다. 암 환자 중에는 증상이 심각하거나 경과가 안 좋은 분들도 많지만, 요즘에는 진단 기술의 발달로 초기나 증상이 없을 때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더 많다. 얼마 전까지 내 옆에서 멀쩡히 일하던 사람이 심심풀이로 해본 검사에 암이 발견될 수 있다. 바로 나처럼. 즉 모르고 있었을 뿐 어제 술 마시던 그 사람의 몸 안에는 암 세포가 있었다. 진단 전후로 달라진 것은 오직 ‘병식(病識)의 유무’ 뿐. 오히려 진단 받고 치료가 시작된 후가 그때보다 더 건강하다. 문제는 암 진단 받기 이전의 나부터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의 암환자는 아직까지도 링거 꽂고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고통에 시름시름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편견을 깨고 싶었다.
드라마 《질투의 화신》에서 유방암에 걸린 조정석이 멀쩡히 출근하고 공효진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님을.
이번 사건이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난 2년간을 동고동락했던 공보의* 3년차 형들이 소집 해제되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다 같이 으쌰으쌰 축구하고 배드민턴치고 골프 치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내가 집안에서 틀어박혀있는 동안 몇몇은 결혼하고 몇몇은 개원하고 또 몇몇은 좋은 자리에 취직하였다. 취직 못하고 헤매던 학창시절 친구들도 취업에 성공하고, 취업한 친구들은 어리버리 신입사원 티를 벗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갔다. 하루가 다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과 달리 병마에 발목 잡혀 나아가지 못하는 나. 윤동주 시인의 「쉽게 쓰여진 시」 속 한 구절이 절로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홀로 침전하고 있던 나에게 어느새 ‘글 쓰는 행위’는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게 할 수 있는 등불이 되었다.
‘뒤처지는 것 아니야. 오랜 꿈이던 책 쓰기에 투자하는 중이지.
조금 느릴지는 몰라도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
이렇게 글을 쓴 목적이 하나둘 추가되다보니, ‘이 글에 과연 주제가 있기는 한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답은 의외의 장소에서 나왔다. 방청소를 하다 발견한 대학시절의 정리노트. 그 안에 적힌 매슬로의 욕구 단계 이론에서 찾았다. 인간의 욕구는 위계적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하위 단계의 욕구 충족이 상위 계층 욕구의 발현을 위한 조건이 된다고 보는 매슬로의 이론을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02 - 서문Ⅱ'에 계속)
*공중보건의 : 줄여서 공보의라고 한다. 병역의무 대신 3년 동안 농어촌 등 보건의료 취약지구에서 공중보건 업무에 종사하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를 지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