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걱정한 문제들이 기우였음이 하나둘 확인되자 주위에 시선을 돌릴 여유도 생기고 사소한 욕구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말랐던 목은 이제 타들어가고 있었다.
저기요~
네?
물 언제 마실 수 있어요?
음... 교수님이 내일 9시까지는 주면 안 된다고 했어요.
‘뭐야. 이제 물 먹고 토할 일도 없는데 왜 안 돼. 내일 9시면 아직 12시간이나 남았는데.’
목마른 건 해결 불가능했다. 투덜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흔히 중환자실이라 불리는 집중치료실(ICU)은 밖에서 볼 때보다 꽤 넓었다. 출입통로를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간호사들이 업무 보는 곳이 있었고 나머지 3면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침대가 놓여있었다. 중환자 간에도 경중의 차이가 있는 듯 의사들이 쉽게 올 수 있도록 출입문 부근에는 기계가 많이 붙은 의식 없는 환자들이 주로 누워있었다. 일반 병실과는 달리 각각 침대에는 벽을 제외한 나머지 3면에 모두 커튼이 달려있었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의료진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항상 열어두고 있었다. 그중에서 나는 간호사와 마주보는 왼쪽 벽 한가운데 침대에 자리했다.
대강의 파악이 끝나자 배신감이 몰려왔다. 응급실에 이어 또다시 느끼는 미디어와 현실의 괴리. 미디어의 중환자실은 어두컴컴하고 조용하다. 빛과 소리가 거의 없는 그 곳에서, 오직 간간히 들리는 기계음과 화면의 그래프만이 환자의 생존을 알린다.
현실은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 여기 중환자실은 아니었다. 강렬한 조명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눈꺼풀 사이를 기어코 비집고 들어와 잠을 방해하고 중환자실 안에 마련된 간호사실에는 쉴 새 없이 그들을 찾는 전화와 부저 소리로 가득하다. 빛과 소리, 어느 하나 모자람 없이 넘쳐나는 곳이 중환자실이다.
그 뿐일까? 부저가 울릴 때마다 내 왼편에서 쥐죽은 듯 누워있던 할머니는 “네~ 용암슈퍼입니다.” 대답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저 멀리 안쪽 벽에는 “못 간다고 전해라~” 구성진 한 가락을 밤낮없이 뽑아내는 할머니가 누워있다. 섬망(譫妄)이다. 뇌가 제대로 사고 기능을 작동 못 하는 상태. 나중에 의식이 돌아오시더라도 이 시간은 그분들의 기억 속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무의식이 몸을 지배하고 있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일을 하고 누군가는 가슴에 담아둔 한(恨)을 노래로 승화시키는 곳. 신경외과 ICU에는 항상 인생이라는 영화의 예고편이 상영되고 있었다.
사람들이 막 뛰어가더니 각자 팔다리 한 짝씩 붙잡고 재빨리 커튼을 쳤다. 그 안에서 한참을 웅성웅성 시끄럽더니 사람들이 땀을 훔치며 빠져나왔다. 마침 바이탈 체크하러 온 간호사에게 물었다.
아까 무슨 일이에요?
저 분요? 여기에서 자주 있는 일이에요. 뇌수술하면 발작 종종 와요. 저렇게 빨리 제압 안하면 지금 환자분 몸에도 이렇게 달려있는 줄 있잖아요? 그거 다 뽑히고 난리 나거든요. 그래서 저렇게 하는 거예요. 환자분은 멀쩡하시니 다행이네요. 불편한 거는 없어요?
아, 밝기도 하고 시끄러워서 잘 수가 없어요.
그 거는 저희가 어떻게 해줄 수가 없네요.
그쵸~ 그럴 거라 생각했어요.
고장 난 CPU가 보낸 잘못된 신호에 컴퓨터가 렉 걸리듯, 고장 난 뇌가 잘못 보낸 신호는 발작으로 드러나게 된다. 몸이 들썩들썩 거리게 내버려두면 경정맥에 꽂혀있는 카테터, 몸에 약물들을 쏟아 붓는 링거 라인들, 배뇨를 위한 폴리 같은 것들이 모두 뽑혀 나갈 수 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남궁인 씨가 쓴 『만약은 없다』 책에서 묘사한 장면들이 머리를 스친다. 저걸 내가 할 뻔 했다. TV와 현실이 주는 괴리감이 다시 한 번 각인된다.
중환자실은 병마를 상대로 하는 전쟁의 최전방이다. 고요할 수가 없다. 전장이 고요하다면 누가 승리했든 이미 그 전투는 끝난 것이다. 이제 약간의 뒤처리만 필요할 뿐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명작 《인셉션》의 주인공 코흐는 말한다.
꿈속에서는 마음이 훨씬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낀다.
생각은 과거와 미래, 병실 안과 밖을 자유로이 넘나들지만 몸은 수많은 링거라인이 만들어 낸 거미줄에 묶여있다. 특히 목 오른편에 꽂혀있는 카테터는 조금의 움직임에도 크나큰 통증으로 응징한다. 의료진의 허가나 명령, 조치 없이 스스로 판단 하에 몸을 움직이는 것이 무섭다.
몸은 자고 있지만 머리는 깨어있는, 지금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매우 실감나는. 코흐의 말처럼 아무리 생각을 해도 벽에 붙은 시계는 고장 난 듯 멈춰있다. 회색 신사가 다시 보고 싶다.
전신마비가 되어 움직일 수 없지만 정신활동은 정상인 상태를 가리켜 ‘locked-in syndrome’ 이라고 한다. 이 상황에서 ‘장 도미니크 보비’는 간호사의 도움으로 『잠수종과 나비』라는 책을 썼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에서는 이 상태에 놓인 ‘장 루이 마르텡’이 주인공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들을 간접 체험하고 있다.
빛보다 빠른 게 사람의 마음이라고 사람들은 종종 이야기한다.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빠른 속도로 운동하는 물체의 시간은 느려진다. 시계가 움직이지 않는 이유가 이때문인 것 같다.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알지만 그러지 않고는 이렇게 흐르지 않는 시간을 이해할 방법이 없다. 진리에 대한 탐구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든 무엇이라도 하려했던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아무 것도 안 하기에는 너무나 긴 시간이기에. 그것은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13 I see me in ICU Ⅲ 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