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려놓음 13 I see me in ICU Ⅲ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by 한남



13 I see me in ICU Ⅲ




시계를 보니 11시였다. 중환자실에 들어온 지 약 2시간쯤 지난 것이다. 중환자실은 하루 2번 30분씩 면회가 주어지며 아침 면회는 7시 반쯤에 있다. 아직 한참 남았다.

‘엄마 아빠 보고 싶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상태 좋은 나를 보고 안심하며 미뤄둔 집안일들을 해결하러 가셨을까?’


일주일 내내 걱정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던 두 분이다. 지금만큼은 편하게 계시기를 빌어본다. 그래도 보고는 싶다. 힘들었다고, 지금도 힘들다고 기대고 싶다.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품 안에 안겨 소리 내어 울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부모님에게 짐이 너무 많다.

얼마 전 지용이 형과 승현이 형이 결혼했다. 인맥을 동원하여 신경 많이 써준 지만이 형은 2주 있으면 결혼하고 좔이 형도 올 여름에 결혼한다. 나기 형은 이미 결혼한 것과 다름없는 9년째 지고지순한 연애 중. 공보의 끝날 때쯤 되니 유부남이 쏟아져 나온다. 3포 시대라고들 하지만 다들 잘난 몸이라 취직, 연애, 결혼 다 문제없다. 부럽다. 무엇보다 부모님이 아닌 또 한 명이 내 옆을 지켜준다는 것이 부럽다.

내가 엄청 따르는 동문선배 형은 암에 걸렸지만 약혼자와 그 시간들을 함께 견뎌내었고 결혼하고 이제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나도 결혼하고 싶다. 내가 가장 바닥일 때 힘이 되어주고 옆을 지켜주는 사람. 이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가. 아쉽게도 지금 내 옆에는 아무도 없다.

‘뇌종양 병력의 한의사. 결혼할 수 있을까?’


다시 시계를 보니 11시 반쯤. 시간 참 안 간다. 잠이라도 자야 시간이 흘러갈 텐데 잠들 수가 없다. 생존을 건 처절한 각개전투가 벌어지는 포화 속에서 홀로 구경꾼이 된 나라도, 지금 누워있는 이곳은 전쟁터. 옆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자못 시끄럽다. 게다가 붕대 감은 머리는 배게 위에 얹어져 측두동맥이 뛸 때마다 함께 들썩거리며 지금껏 몰랐던 머리카락의 기능을 가르쳐주느라 여념이 없다.


생각하고 있는 건지 생각 많은 꿈을 꾸는 건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헤매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역한 기운이 감도는 ICU. 백세인생 할머니도 용암슈퍼 할머니도 지쳐 잠든 지금 나를 깨운 것은 오른편 침대에서 흘러나오는 소란스러움이다. 원래라면 다 뚫려있어야 할 침대가 커튼으로 사방이 막혀있다. 그 안에서 다들 무언가 열심이다.


하나, 둘, 셋!


힘쓰는 소리가 들리고 얼마 되지 않아 마스크하고 장갑 낀 사람들이 미처 지우지 못한 대변 냄새와 함께 빠져나왔다.

‘아 맞다. 나도 기저귀 하고 있지.’


과민성 대장 증후군은, 검사로 확인되는 특정 질환은 없지만 복통과 설사나 변비 같은 배변습관의 변화를 가져오는 만성 질환으로 전 인구의 7~15% 정도가 이 증후군을 가지고 있다고 추정된다.

나는 평소 지내던 곳이 아닌 장소에 가면 대변이 마르고 잠도 잘 못 이루는 불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훈련소에서도 첫 날은 잠들지 못했고 대변은 일주일이 넘은 다음에야 만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도는 점점 약해졌지만 이번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술 전까지 깊은 잠 한번 든 적 없었고 대변도 입원한지 5일이 돼서야 겨우 누었다. 사는데 정말 불편해서 고치고 싶었던 점이었는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의 유일한 희망이다. ICU는 병원이 아니라 또 다른 병원이라며 무의식에 넌지시 말을 건네 본다. 긴장하라고, 마음 놓지 말라고.




(14 I see me in ICU Ⅳ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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