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려놓음 14 I see me in ICU Ⅳ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by 한남



14 I see me in ICU Ⅳ




간호사들이 2배로 늘어났다. 나이트와 데이 근무를 교대하는 모양이니 대략 5~6시쯤 되었을 것이다. 9시간이나 푹 자고 깨어난 탓에 시차적응도 안 되고 잠자리도 다르고 소란스럽기도 해서 잠은 거의 못 잤다.


괜찮겠지...
네? 무슨 불편한 점이라도?
아니에요. 그냥 혼잣말 한 거예요. 잠을 별로 못 자가지구.
네~


아침이 되면 면회 시간이 주어진다. 부모님께 하고픈 이야기를 하면 의료진에게도 내 의견이 전달될 것이다. 밤새 생각해둔 대사를 곱씹어 본다.

‘엄마. 밤새 한 숨도 못 잤어. 여기 완전 밝고 시끄럽다. 앞으로도 못 잘 거 같아. 잠 못 자면 오히려 스트레스 받고 그럼 회복도 안 될 걸? 무엇보다 잠을 자야 회복을 하지. 그러니까 나 빨리 여기서 나가야 돼. 많이 힘들다.’

어떻게 하면 더 호소력 있을지 순서도 바꿔보고 더 강력한 워딩을 찾아보고 있는데 갑자기 간호사들이 내 침대를 옮기기 시작했다.


저 지금 나가는 거예요?
아니요. 지금 MRI 찍으러 가요.
지금 면회시간 다 되었는데 그럼 면회는요?
글쎄요. 저희도 오더대로 하는 거라 지금 일단 가야해요.


하필 이 시간에 MRI라니. 서럽다. 하루에 2번 밖에 없는 소중한 외부 세계와의 연결이 사라졌다.


오?
환자분 지금 MRI 찍으러 가요.


문이 열리자마자 들리는 어머니의 당황한 목소리. 어머니와 간호사의 대화는 1층 MRI 검사실까지 이어졌다. 이동하는 와중에도 준비했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지만 침대가 덜컹 거릴 때마다 찾아오는 통증 때문에 도저히 할 수 없었다. 그 놈의 폴리가 문제다. 검사실에 도착해서는 주렁주렁 매달린 선들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어두운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좀 잘 수 있겠다.’

시끄러운 기기 소리도 어젯밤에 비하면 자장가. 마취에서 깬지도 10시간쯤 되니 잠이 솔솔 온다. 한 숨 자고 나니 검사도 끝나있었다. 다시 올라가는 동안에도 어머니와 간호사와의 대화는 이어졌다. 이윽고 도착한 ICU. 어머니도 같이 들어 왔다.

어머니는 나를 꼭 끌어안고 말없이 등을 계속 토닥였다. 지금 그녀가 토닥이는 건 내 등이 아니라 힘든 싸움을 이겨내고 돌아온 자식 앞에 눈물을 보이기 싫은 당신이리라. ‘울지 말자. 참자.’ 이 다짐을 속으로 수없이 되뇌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면회시간도 아닌데 어떻게 들어왔어?
아까 간호사한테 계속 부탁했어. 그러니까 한 번 알아보겠다고 하더니 괜찮다고 하더라. 아빠랑은 좀 있다 교대할 거야. 한 번에 한 명 밖에 면회 못한다네?
아 물 먹고 싶다.
여기 있어 마셔.
그나저나 눈이 흐릿하니까 생각도 흐릿하고 들리는 것도 막 흐릿하고 그러더라. 간호사나 의사 쌤한테 부탁해서 안경 좀 쓸 수 있는지 이야기 해줄 수 있어? 얼마나 답답하던지 ‘이왕 수술하는 김에 라식도 시켜주지.’ 이런 이상한 생각도 했음. 다 끝나고 나면 진짜 라식인지 라섹인지 하고 싶다.


준비해둔 이야기와 함께 이것저것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렇게 10시간만의 해후(邂逅)를 즐기고 있는데 간호사가 아침 식사을 가져왔다. 깜짝 놀랐다. 중환자실에서 식사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했다.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도 까먹어버린 바보가 여기 있다. 먹여주겠다는 어머니의 말을 거부하고 직접 수저를 들었지만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께서 수저를 들어야 했다. 수술 후유증 때문인지 잘 벌어지지 않는 턱을 억지로 벌려가며 아기 새처럼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민망해 하는 나와는 달리 어머니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래, 엄마가 즐거웠으면 됐어.’


면회 허용 시간이 다 되고 어머니는 나가야만 했다. 계속 뒤돌아보며 나에게 손을 흔드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는 나. 아버지에게 배당된 시간은 없었다. 다음에 봐야겠지. 그렇게 길던 30분이 지금은 너무나 짧다. 아쉬움에 자꾸 문만 바라보게 된다.

‘괜찮은 지 확인하셨으니 이제 편히 좀 쉬셨으면 좋겠다.’




(15 I see me in ICU Ⅴ 에 계속)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