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큰 파도를 만난 배의 흔들림에 승객은 나뒹굴기도 토하기도 한다. 대한민국호의 1등석에 초대받지 못한 부모님은 세상과 세월이 주는 파도를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았다. 아버지는 2남 5녀, 7남매 중 여섯째이자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유일하게 대학교를 졸업하셨다. 어릴 적이라 잘 기억나지 않지만 친가는 몇 십대 째 내려오는 종갓집은 아니더라도 몇 대 수준의 종갓집은 되었고 선산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IMF와 함께 물거품이 되었고 허물어져가는 집안에서 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선산이라도 지키기 위해 아버지는 많은 걸 잃어야만 했다.
어머니는 1남 2녀 중 둘째딸. 당신의 능력에 비해 보수적인 친가 분위기가 문제였다. 연고대에 갈 수 있는 성적에도 ‘여자가 어디 서울에?’, ‘동생 등록금 댈 돈 없으니 사범대에 가라’ 이 말들 때문에 결국 경북대 사범대에 갔다. 그런 친가에 방패막이가 되어주지 못했던 외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많이 미안해하셨고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쏟으셨다. 그 편애를 마냥 즐겨도 되었으련만 어머니는 그에 보답하고자 더 많이 신경 쓰고 또 이모와 외삼촌에게도 미안해했다. 그래도 이모도 어머니도 외삼촌도 다 좋은 사람이라, 교사인 어머니를 대신하여 나와 내 동생을 이모가 키우다시피 할 정도로 굉장히 깊은 우애를 자랑했다.
그러나 외할아버지의 집이 화근이었다. 어머니는 싫다고 했지만 외할아버지가 집의 명의를 어머니에게로 돌려놓아 버린 것이다. 이것 때문에 어머니는 유산을 독차지 하려한다는 주변 친인척의 오해를 감내해야 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모두 세상을 떠나신 지금, 집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심지어 일체의 유산도 받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들이 오해임을 증명하고, 도리어 존경받고 있지만 매우 춥고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때 어머니 옆에는 오직 아버지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도 암 투병 중이었다. 지금은 건강하시지만.
무심한 아들은 이런 상황을 대강 알면서도 짐을 나눠들기 싫어 모른 척했다. 그냥 열심히 공부해서 내 꿈을 이루는 게 더 중요했다. 덜 신경 쓰이도록 내 할 일이나 잘 하는 것만 해도 충분하다며 회피했다. 대학에 들어가고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를 점점 알아가면서, 그동안 부모님이 걸어온 길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그 후로 웬만하면 부모님에게 짐이 되는 일은 피하려 했다. 성공에 대한 강박관념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그 중에는 내 욕심 부린 것도 있고, 부모님이 원하지 않는데 착각한 것도 있고, 내 욕구도 채우면서 부모님도 신경 쓰느라 남에게 실수한 것도 많이 있지만.
이렇게 어렵사리 지켜온 집을 흔들고 있는 내가 싫어진다. 무너져버린 가정에서 이제 갓 대학교에 입학한 내 동생은 잘 지낼 수 있을까? 기댈 다른 곳이 있으면 좋겠다. 애초에 부모님께 말 못할 그런 것들도 있는 법이다. 그런데 나에겐 없다. 이야기할 사람이.
부모님 생각을 세 번 정도 복습했을 즈음 전공의들이 ICU로 들어왔다.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 게 몇 번이든 상관없다. 준비했던 이야기를 전하고 말리라.
저기요. 선생님들!
흠칫 놀란 표정을 한 전공의들이 달려왔다. 준비한 이야기를 꺼내려는 찰나 갑자기 검사가 시작되었다. 자기 코에 초점을 두고 있되, 여기저기로 움직이는 손가락이 몇 개인지 맞춰보라고 했다. 시야 검사로 보였다. 왠지 맞춰야 할 것 같다. 내가 오른쪽 위 시야에 문제가 있다고 들었다. 그 쪽이 더욱 신경 쓰인다.
스무 번 정도의 테스트가 끝났다. 전공의가 갸우뚱하며 자기들끼리 의견을 교환했다. 좀 걱정된다. 눈앞에 있는 문제는 다 맞춰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오른쪽 위 시야에 더욱 신경을 썼다는 점이 bias*로 작용할 것 같다. 지금 중요한 것은 검사 결과가 ‘잘’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나오는 것인데, 알면서도 또 사고 쳐버렸다.
bias : 통계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오차, 편견
아까 하려고 했던 말이 머에요?
시끄럽고 밝아서 밤새 못 잤어요. 저 언제쯤 나갈 수 있어요?
그게. 음...
그거 교수님이 오더 내려놓은 거 있어요. 그니깐 좀 기다려 봐요. 그리고 저 안쪽 방 오늘 점심 때 비니까 거기 들어가게 해줄게요. 좀 덜 시끄러울 거예요. 문도 있고 하니까.
저 멀리서 걸걸한 목소리가 대신 대답한다. 치프(chief)다. 무슨 오더가 내려왔을지 내심 기대가 된다. 신경외과에는 전공의가 4명 있었다. 한 분은 분야가 척수 쪽이라, 회진 돌 때는 항상 3명이 찾아왔다.
가장 먼저 치프. 치프는 건장한 체격의 걸걸한 목소리를 지녀 드라마 『주몽』의 오이 역을 맡은 배우 여호민 씨를 항상 떠오르게 했다. 내가 입원한 사이 1년 차에서 2년 차로 진급한 박 쌤은 부드러운 인상의 소유자였고 친한 동기 형을 닮아 그분을 보면 절로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그리고 주치의인 1년 차 쌤은 흰 피부가 인상적이었으며 매우 귀여운 인상을 가져 어머니는 늘 꼬마 쌤이라 부르며 좋아하셨다. 평소 ‘푸우’를 많이 닮았다고 자신하던 나였는데 그는 정말 ‘푸우’의 현신이나 다름없었다.
(16 I see me in ICU Ⅵ 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