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점심이 왔는데 또 죽이었다. 간호사는 중환자실은 죽식만 나온다고 일러주었다. 등 각도를 조절하여 앉는 시늉을 내고 눈앞에 놓인 식사를 쳐다보았다. 먹을 자신이 없다. 조금만 까딱하는 것도 무섭고 귀찮다. 그 정도는 움직여도 된다는 판단 하에서 식사를 준 것이겠지만 그래도 꺼림칙하다. 특히 경정맥에 꽂아둔 카테터 때문에 고개 숙이는 게 잘 안 된다. 굶을까? 주위를 둘러보니 능숙하게 식사를 하시는 분도 간간히 있다. 신기하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보던 간호사가 외쳤다.
학생간호사~
네~
이 분 식사 좀 도와드려요.
알겠습니다.
학생간호사가 쪼르르 달려와 젓가락으로 생선살을 능숙하게 발라내어 죽과 함께 먹여주었다. 이 나이 먹도록 X자 젓가락질 하는 나보다 훨씬 낫다. 내가 대학생 때 과외 했던 제자가 간호대에 갔던 것이 생각난다.
‘이 학생 나이쯤일까? 혹시 이 병원에서 실습하고 있지는 않겠지?’
제자가 밥을 먹여주는 기분이 들어 괜스레 민망하다. 학생간호사는 식사가 끝나자 인사하고 식판을 챙겨 떠나갔다. 그 뒷모습에서 아름답고 숭고함을, 의료 현장의 최전방에 간호사가 있음을 느낀다. 환자 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의료인이 간호사라며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던 그 아이의 말이 떠오른다.
점심식사 후 얼마 되지 않아 출입구와 마주보는 가장 안쪽 방의 환자가 ICU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정리가 마무리가 되자, 그 자리로 이동되었다. 덜 밝고 문을 닫으면 조용해지기까지 하여 한결 낫다. 간호사에게 심심하다고 몇 번 징징거렸더니 안경과 병실에서 읽던 책, 빨대 달린 물병도 반입되었다. 그러면서 책과 물병 놔두기 편하라고 빈 트레이도 두고 갔다. ICU 퍼스트클래스. 빨대 달린 물병은 향긋한 와인 잔. 책은 고급 스테이크나 다름없다. 와인의 풍미를 즐기며 여유 있게 스테이크를 썰고 있는데 출입구에 노교수와 의료진들이 중환자실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곧이어 내 방문을 열었다.
자네가 김동완 이구만. 경과가 많이 좋아 보이네요.
네. 다행이에요. 조직 검사 결과는 나왔나요?
안 그래도 오늘 병리과 교수랑 점심 먹으면서 이야기 했어요. 빨리 좀 해달라고. 금방 결과 나올 거예요.
좋게 나오겠죠?
다 알잖아요. 머리에 나는 놈한테 좋은 놈 나쁜 놈 어디 있겠어요. 그냥 생각 말고 편히 쉬는 게 좋아요. 그럼 쉬어요. 나중에 한 번 더 봅시다.
지만의 형 부탁으로 수술 때 참관한 교수님인 듯했다. 교수가 자리를 떠나자 간호사가 와서 점심 약을 건넸다.
저기요. 간호사님.
네? 머 불편한 거 있으세요?
저... 여기서 금방 나갈 것 같지 않아요?
네? 뭐... 바이탈은 좋으세요.
그러면요. 대변 완하제는 빼주실 수 없나요? 저 여기서 똥 누기 싫어요.
아,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데...
저 금방 나갈 거예요. 나가서 눌 게요. 한 번만 이야기해주세요.
당황한 표정을 짓던 간호사는 약봉지를 들고 자리를 떴다. 이내 돌아와 약봉지를 잘라 흰 알약 하나를 빼고 나에게 쥐어주었다. 이런 환자 처음 봤다며 씨익 미소를 지으며 떠나는 뒷모습에 살짝 설렌다.
(17 I see me in ICU Ⅶ 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