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저녁 식사시간이 가까워지자 좀 두려웠다. 이제는 고문이 되어버린 식사. 아침에 어머니께서 떠나시며 가능하면 저녁 식사도 도와주러 오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곳이 병원 아니던가. 아니나 다를까 밥차가 ICU내로 들어왔지만 어머니는 오시지 않았다. 낙담하며 식판을 전달받는데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어머니 들어오려고 소독하고 있어요. 먼저 식사하지 말라고 기다리라고 전해 달라고 하시네요.
네, 감사합니다.
좀 있으니 출입문 사이로 어머니가 보였다. 어머니는 원래 내가 누워있던 자리를 바라보고는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 있다고 알리고 싶어도 몸은 링거라인에 묶여 움직일 수 없었고 억지로 짜낸 목소리는 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답답했다.
당황해 하는 어머니를 본 간호사가, 내가 안쪽 방으로 옮겨졌음을 알려주어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어머니가 떠주는 죽을 받아먹으며 바깥소식을 묻기도 하고 물 컵, 책, 안경 반입과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었다. 의외로 융통성이 발휘되는 중환자실이 좀 놀랍다.
수술 끝나서 추웠을 때 나를 감쌌던 따뜻하고 부드러운 물체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핫팩으로 따뜻하게 데워둔 숄이라고 하셨다. 예전에 나와 내 동생을 낳는 수술을 받았을 때 굉장히 추웠던 기억이 나서 혹시나 싶어 기다리는 내내 그걸 준비해두었다고 했다.
어머니가 떠나고 다시 혼자 남겨진 시간. 감정의 기복에 따라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수술 직전에 했던 생각이 떠오른다. 수술 후에도 기억이 남아있기를 바라며 소중한 순간들을 형광등 하나하나에 담던 모습과 병신이 될 바에는 차라리 죽여 달라고 빌던 내 모습. 상반된 것 같으면서도 실은 같은 것이었다. 나에게 있어 ‘살아있음’은 단순히 숨 쉬고 있음이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이었으니까. 죽여 달라는 소망도 실은 살려줄 거면 멀쩡하게 해놓으라는 앙큼한 욕망이 쓴 가면에 불과했다.
그 외에도 앞으로의 삶에 대한 극도의 자신감 저하,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에 대한 반성, 현재 나의 몸 상태에 대한 궁금증 등등 ‘과거 – 현재 – 미래’에 대한 총체적 고찰들이 머리를 채웠다. 그것만 모아도 아마 몇 백 장은 나오리라. 그 끝에서 나는 결론 내렸다.
여기가 나의 바닥이라면, 괜찮다. 충분히 잘 이겨내고 있다. 존재 자체가 위협 받는 순간에도 멘탈 잘 붙잡았고, 지금은 잘 이겨내서 이렇게 돌아와 있다. 사고도 정상, 몸도 이만하면 만족. 간호사에게 똥 싸기 싫다고 대변 완하제 빼달라고 거래 하는 사람은 어디 있을 것이며 중환자실에서 책 보는 사람은 또 있었을까? 난 강하다. 이게 바닥이라면 이제 반등만 남았다. 난 나의 존엄성을 스스로 지켰다. 목표를 100% 이상 수행했다.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밤도 느린 발걸음으로 다가왔고,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잠도 살포시 나의 곁에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설핏 든 잠은 밖에서 들리는 부산스러움을 기회로 삼아 재빨리 도망가 버렸다. 억지로 눈을 감고 버텨도 소용없었다. 꽤 오래 지속되는 소란스러움에 결국 눈을 떴다. 조심스레 뜬 눈에 침대 하나가 조용히 중환자실 바깥으로 나가는 모습이 비쳤다.
‘무슨 일 일까...’
아침이 되었다. 많은 말을 속으로 삼킨 아버지와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울음을 가득 채우고 나타난 동생도 보고, 어머니가 떠먹여주는 죽도 잘 받아먹었다. 그리고 얼마 뒤 한가로이 책장을 넘기고 있던 나에게 전공의와 간호사들은 일반 병실로의 이동을 넌지시 알려주며 6인실과 2인실 중에 원하는 곳을 물어보고 갔다. 그리고 오후 1시. 중환자실에 들어온 지 40시간 째. 간호사들은 나를 이동용 침대로 옮기기 시작했다.
저 나가는 거 맞죠?
네, 맞아요.
아싸!
알려줄 게 있어요.
머예요?
여기에 룰이 하나 있는데, 나갈 때는 OOO번 환자 OOO 나갑니다! 하고 소리쳐줘야 해요.
그거야 머, 217273번 환자 김동완, 나갑니다!
큰 소리를 외치며 나온 바깥세상, 나를 반기는 부모님, 그리고 지난 일주일을 보냈던 2인실 그 곳.
내가 돌아왔다.
(18 완의 귀환 Ⅰ 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