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려놓음 18 완의 귀환 Ⅰ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by 한남



18 완의 귀환 Ⅰ




드디어 마주한 바깥세상. 얼마 만에 보는 햇살인가. 수술을 위해 환자용 엘리베이터를 탈 때가 12시 즈음이었으니 근 50시간 만이다. 이곳에 조금이라도 일찍 나오기 위해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10시쯤 간호사가 와서 나에게 물었었다.


일반 병실로 가면 어디로 가고 싶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2인실이랑 6인실 중에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물었어요.
2인실 가고 싶어요. 보통 2인실이 더 잘 빠지죠?
글쎄요. 그건 그때그때 다 달라요.
지금 2인실이랑 6인실 중에 어디가 비었는지 아세요?
한 번 확인해드릴게요.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기에 인기가 적을 것이라 생각되는 2인실, 병상이 많기 때문에 빈자리가 생길 확률이 높은 6인실. 어디가 유리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2인실부터 말한 것이 후회된다. 특히 알아봐주신다던 간호사가 그 이후로 단 한번도 ICU에 나타나지 않아 속이 더 타들어갔다. 실제로도 6인실에 자리가 먼저 났지만 때마침 2인실의 이비인후과 환자도 퇴원 결정이 나면서 별 차이 없이 일반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6층의 남자 2인실은 좁디좁은 652호 뿐이기에 수술 전 입원했던 그 병실 그대로, 심지어 창가 쪽 그 자리. 이동용 침대에서 병실 침대로 옮기기 위해 사람들이 잠시 자리를 정리하는 동안 어머니와 수간호사는 대화를 나누었다.


이렇게 금방 돌아오는 일은 극히 드문데 다행이네요.
정말이에요. 수술실에 나와서 올라가는데, ‘내가 누구야?’ 물으니까 ‘엄마, 아빠’ 하고 대답하더라구요.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중환자실에서도 할머니 시끄럽다, 빛이 너무 밝다 어찌나 깐깐하던지. 신기했어요.
저희 아들이 좀 까탈스러웠나 봐요?
아니요. 그냥 대화 안 되는 환자들만 많이 보다가 농담하고 책 보고 그러니까 재미있었죠.
정말 교수님 대단하신 것 같아요. 어쩜 이렇게 멀쩡하게 만들어 놓을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저희에게도 상담할 때 ‘환자분이~’ 이렇게 안하고 ‘동완이가~’라고 말해주시면서 따뜻하게 대해주고. 교수님 굉장히 다정다감하신 분 같아요.



그러자 수간호사는 팔짱을 끼더니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그럴 리가. 얼마나 괴팍한데. 말도 못해요. 진짜.

침대 정리가 마무리 되고 병실 침대로 옮겨졌다.


아!

폴리가 발에 걸린 것이다. “아직 너는 중환자여야만 해!” 하고 떼쓰는 이놈을 언제 떼놓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폴리는 배뇨훈련을 한 다음에 뺄 수 있어요. 환자분은 얼마 안 되어서 금방 회복하시기는 할 텐데, 1~2주 하다보면 괄약근 힘도 없어지고 다 까먹어서 소변 질질 흘리는 사람 많아요. 훈련하고 검사 통과해도요. 그래서 환자복 자주 버리시고 그러거든요.
훈련은 어떻게 해요? 금방 끝나나요?
사람마다 달라요. 지금 폴리를 잠가 놓을 거예요. 그러다가 소변 누고 싶은 마음이 들면 여기를 푸세요.



폴리 비닐관 위쪽에 달려 있는 흰 잠금장치를 쥐어주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누고 나면 다시 잠그고 저희를 불러주세요. 양이 적당하고 상태 괜찮다 싶으면 초음파로 방광에 잔뇨량을 체크할 거예요. 기준 통과하면 그때 빼드릴 거예요.
알겠습니다.
참 뇨의가 안 느껴져도 3시간 이상 잠그면 안 돼요. 그때는 다시 풀고 저희 불러주세요.
감사합니다.


ICU의 40시간에 비하면 3시간쯤은 아무것도 아니련만 또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심란해진다. 원래 잡힐 듯 말듯할 때 더 마음이 힘든 법이다. 간호사들이 자리를 떠나자 부모님께 휴대폰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살며시 공책에다가 이름을 써보았다. 내 이름, 엄마 이름, 아빠 이름. 잘 써진다.


거 봐. 내말 맞지? 동완이 돌아오자마자 폰 찾을 거라 했잖아.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는 100% 충전된 폰을 꺼냈다. 몸이 불편한 지금, 병원 바깥과의 통로는 오직 스마트폰 뿐. 수많은 히키코모리를 양산한 주범이라 욕먹는 온라인 세상이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히키코모리도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낸 것 또한 온라인 세상이다. 나처럼 반강제적으로 유폐된 이에게는 ‘사람답게’ 지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폰을 받자마자 ‘완의 귀환’을 알리기 위해 톡을 열었다. 제일 먼저 선택한 곳은 공보의 단톡방. 나 없을 때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밀린 메시지가 300개가 넘어 표시도 다 되지 않았다. 지난 3일 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찬찬히 읽어보았다.


내 상황에 대한 걱정

골프 잘 치는 법

민성이 형의 목 디스크

기타 등등.

그러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19 완의 귀환 Ⅱ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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