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덕경 : 아직 동완이 소식이 없네. 동완이 카톡 1만 없어지지 않네.
지만 : 하아...
덕경 : 먼저 연락해보기가 그러네. 지금쯤 나왔을 건데 말이지.
나기 : 휴...
덕경 : 의외로 엑윽엑윽하면서 잘 나왔을지도?
승현 : 동완이 방금 수술 끝났대요. 확인하러 CT 찍으러 갔다가 중환자실 갈 거 같네요.
덕경 : 별다른 이야기는 없고?
훙윤 : 수술은 잘 되었나요?
승현 : 주변 High Signal로 보였던 모든 부분들이 악성이라 거의 LT를 다 드러낸 거 같아요.
덕경 : 딴 카톡에서 해야지. 요거 혹시나 보면 어쩔
그 후부터 대화의 일부가 끊겨있었다. 궁금하다. 상황이 꽤 심각했나보다. ‘LT’ 아마 병소라던 Left Temporal lobe, 죄측 측두엽을 의미할 것이다. 이걸 모두 들어내었다니 상상이 안 간다. 잠시 걱정하다가 이내 마음을 거두었다.
‘지금 내 머리에 측두엽 하나가 없다 이거지? 그래도 되나? 근데 그것치고는 말짱하네? 머 다 제거했으면 좋은 거지. 지금 멀쩡하고, 거기에 많이 없애기까지 했으면 이보다 좋은 결과가 어디 있겠어?’
동완 : 저도 모르는 제 이야기들을 톡보고 알았네요.힘들기는 했어요.
최대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2박 3일 여행 갔다 온 것처럼 한 마디 적었다. 무사히 돌아온 나를 반가워하는 메시지들이 쏟아졌다. 열심히 대답하며 덤으로 힘들었던 일들을 하나둘 늘어놓았다.
동완 : 중환자실에서 나오기 직전에 두피에 철심 박아 둔 거 뽑아갔는데 통증 장난 없네요. 다음 주 쯤에 와서 남은 반틈 뽑는다는 데 겁나 아파요. 진짜.
덕경 : 팔 다리는 어때?
동완 : 감각 문제없습니다!
덕경 : 아니 감각 말고 운동
동완 : 글씨 써봤는데 적힙디다.
덕경 : 운동영역은 안 건드린 모양이다.
민성, 나기, 좔, 승현, 홍윤, 형석 : 다행이다. 수술 잘 되었나보네. 고생 많았어.
동완 : 고생 좀 했어요. 진짜.ICU에서 얼마나 심심했는지 몰라요.라디오 틀어주기는 했는데 잘 들리지도 않고,책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나기 : 머 하면서 보냈는데?
동완 : 반성도 하고 계획도 세우고. 생각한 것만 옮겨놔도 책 다섯 권은 뽑을 듯. 특히 좔이 형이 옛날에 해준 조언이 많이 도움 되었어요.
한참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는데 인턴이 들어왔다.
‘폴리 빼는 건가?’
이제는 외간 여자에게 아래를 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쁘지만 또다시 치부를 드러낼 생각에 심란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의 손이 향한 곳은 아래가 아닌 목이었다. 카테터를 뽑는다고 했다.
어?
인턴의 입에서 흘러나온 외마디 비명. 짜증이 치민다. 의료인이 당황하면 어쩌자는 건지 답답하다. 그러면 환자는 더 불안해지는데 말이다. 국가고시 통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인턴이라 이해하며 넘어가려던 그때, 인턴이 갑자기 내 경정맥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극심한 통증이 목을 넘어 혈관을 타고 전신에 퍼졌다. 1시간 같은 5분이 지난 후에야 시퍼런 멍을 하나 남기고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인턴이 간 뒤 부모님은 나에게 그동안 있었던 여러 일들을 이야기해주었다.
동완아, 중환자실에서 나올 때, 출입문 바로 옆에 누워있는 사람 봤어?
보기는 봤지. 엄청 말랐더라. 할아버지는 아니어 보였고.
의식은?
나올 때까지 의식은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 건 왜? 아는 사람이야?
아니, 고등학생이래. 너랑 같은 날 수술했어.
무슨 병이래?
보호자 대기실에서 그 애 엄마한테 대충 들었는데 출혈이니 종양이니 어쩌구 그러더라. 여튼 애가 갑자기 쓰러져서 119타고 병원 가는데 온 병원이 다 수술실 꽉 차서 여기로 왔다네? 마침 교수님 한 분이 남아있어서
다행이네. 큰일 날 뻔 했다.
근데 그 교수님이 왜 있었냐면, 왜 저번에 형이 너 좀 부탁한다고 병원에 이야기 해주었잖아.
아, 지만이 형? 덕분에 중환자실에서도 많이 배려 받았지.
그래 그 때 교수님 한 분이 더 참관하신다고 했잖아. 그 분이 얼른 먼저 처치한 다음에 너 수술한 김 교수님이 이어서 수술했대.
오, 형 덕분에 한 명 더 살았네?
무슨 전산 착오가 있었는지 전광판에는 너 계속 수술 중이라고 뜨고 교수님은 나오지도 않는데 너는 갑자기 나오고, 어찌나 가슴이 철렁 내려 않던지...
전광판도 있어? 수술 중이라고도 나오고?
응 수술실 앞에 TV 화면에 누구누구 수술 중이다, 회복실에 있다 이런 거 다 떠. 너 다음에 수술실 들어간 사람 5명이나 되는데 먼저 나가버리고 너는 계속 수술중이라고 뜨고. 가슴 타들어가는 줄 알았어.
회색 신사가 먹어치운 내 9시간은 어머니에게는 9년, 어쩌면 90년이었을지도 모른다. 지만의 형의 배려로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고등학생 정호는 2주 가까이 의식을 찾지 못했고 3주를 훌쩍 넘긴 다음에야 중환자실에서 나왔다. 가끔 친구들이 찾아와 정호를 휠체어를 태운 다음 바깥으로 데려나가곤 했다.
정호가 중환자실에서 있는 그 시간동안 정호 어머니는 SGI, 속칭 남묘호렌게쿄에 열성을 다하였다. 정호의 회복 또한 믿음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 정호 어머니는 어머니께 전도하기 위해 종종 병실에 찾아와 피해 다니는 일도 있었다.
여러 정황증거들을 맞추어 보았을 때 정호의 병명은 ‘종양 내 출혈’. 종양세포는 다른 정상 세포에 비해 빠르게 자라고 증식한다. 그래서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며, 필요한 에너지를 흡수하기 위해 혈관을 많이 만들어내고 굵어지게 만든다. 그러면 자연히 터질 확률도 높아지게 되며, 그렇게 해서 혈관이 터져버린 게 지금의 ‘정호’.
1분 1초가 지체될 때마다 급격히 떨어지는 생존확률 속에서 그를 살린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지만의 형의 부탁으로 한 병원의 배려가 교수님의 참관이 아니었다면, 지만이 형에게 부탁할 인맥이 없었더라면, 내와 지만이 형이 모르는 사이였다면, 그리고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정호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선(死線) 아닌 사선을 넘은 이후로 ‘운명’의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런 이야기들을 비롯하여 중환자실에서 있었던 여러 에피소드들을 무용담처럼 한참 늘어놓았다. 확실히 같이 있으니 혼자 있을 때보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그 사이에 뇨의를 느껴 일러준 방법대로 한 후 간호사를 불렀고, 소변량을 확인한 간호사는 곧바로 초음파 기기를 가지러 갔다. 얼마 뒤 이루어진 검사도 무리 없이 통과.
주홍글씨가 제거되었다.
(20 완의 귀환 Ⅲ 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