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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06. 2016

[단편소설] 어느 날, 오후 #2

이별한 남자들의 찌질한 순간 (성시경 -《거리에서》)

#2



 초보운전을 크게 써 붙인 차를 몰고 어둡고 혼잡한 거리 풍경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영화 봐야지.’


 최근에 영화 볼 일이 잘 없었다. 마침 집 근처에 큰 영화관도 있다. 영화만큼 시간이 잘 가는 것도 없을 터. 조심스럽게 주차를 하고 영화관으로 올라갔다. 알콩달콩 꽁냥꽁냥 연애하는 커플들이 곳곳에 보인다. 귀엽다. 예쁘다. 영화 시간표를 보니 적당한 영화가 없다. 보고 싶은 것은 시간이 없고 보고 싶지 않은 것조차 자리가 없다. 얼른 어플을 켜서 근처 다른 영화관 시간표를 보았지만 상황은 별 차이가 없다. 재수가 없으려니 혼자 영화 보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목적지를 잃고 다시 방황하기 시작한다. 갓길에 잠시 차를 대고 다음 목적지를 생각하는데 버스가 내 앞에 정차했다. 그녀의 집 앞으로 가는 버스. 무언가에 홀린 듯이 따라가기 시작했다. 찌질한 행동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그 것이 어떻게 비춰지는지 알면서도 하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목적지가 정해지니까 착잡했었던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갈 곳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이렇게 편안해질 수 있음을 체감한다. 



 익숙한 그 곳이다. 마지막, 그녀와의 마지막 순간을 보냈던 그 곳. 두 달이 지난 지금 혼자서 찾아왔다. 언제나 이별은 한두 발짝 뒤에 찾아온다. 그림자처럼. 근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그 거리를 거닐어본다.



 떠난 그녀를 붙잡기 위해 그녀가 이별을 고했던 그 다음 날, 나는 아무리 전하려 해도 전해지지 않을 문자하나 보내놓고 그녀의 집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렸었다. 그 날 내가 그녀에게 전해주었던 편지를 썼던 곳. 그녀의 집 앞 까페로 발걸음을 옮긴다. 걸으면서 생각은 한 달 전으로 되돌아간다.


 그녀와 헤어지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 스터디 멤버들과 연말 송년회를 회식을 했었다. 하필 그녀와의 추억이 가득했던 그 장소에서. 마침 카 오디오에서는 성시경의 ‘거리에서’가 흘러 나왔고 나는 심란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부끄럽게도 모두의 앞에서 감정을 흘려버렸다. 그 날의 기억이 머리를 잠시 스친다.



 아무도 없는 거리를 혼자 걷다보니 쓸쓸하다. 텅 빈 공간을 《거리에서》 음악으로 채워본다. 마치 영화 속 비련의 주인공인 된 것 마냥 찌질함을 한껏 즐긴다. 까페에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다 문득 그녀와 마주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든다.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과 마주 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뒤섞여 어지럽다. 하지만 이내 마음은 결정되었다.


 ‘까페에 그녀가 있다면 아마 누군가와 함께이지 않을까? 그 모습은 보기 싫어.’



 멍청한 다리는 마음의 명령을 잘 못 알아듣고는 나를 까페로 인도했다. 그녀와 마주보고 앉았던 그 자리에 잠시 앉아 커피를 마신다.

 ‘내가 여기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혼자 앉아있건만 내 앞에 그녀도 커피를 홀짝인다. 사진도 거의 남아있지 않기에, 보고 싶은 마음만이 남아있는 줄 알았는데 내 뛰어난 기억력이 그녀를 되살려버렸다. 참 잊기 힘든 사람이다. 하긴 잊으려 노력해본 적도 없었다.



 그녀는 오지 않았다. 안도인지 아쉬움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며 까페에서 빠져나와 그녀 집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길가에서 3년 만에 찾아왔다는 개기월식이 있었던 날, 우리는 순정만화 속 주인공처럼 애틋한 헤어짐을 겪었다. 헤어지는 것이 너무나 아쉬워 서로 발걸음을 돌리지 못한 채 마주보고 서서 30분이나 있었다고 말하면 어느 누가 믿을까. 우린 그런 쌍팔년도 로맨스를 즐겼다. 그 때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눈망울, 너무나 아름다웠던 눈망울이 또다시 떠오른다.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하루 이틀 못 보는 것 가지고도 힘들어 했었던 우리였는데 지금은 나 혼자 그 곳에서 그 날을 생각한다. 달빛 아래에서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했었던 키스. 그러고 보면 그녀는 달을 참 좋아했었다.



 조금 더 걸으니 어느새 그녀의 집 앞이다. 주말에 늦은 저녁시간인데 그녀는 집에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 듣는 노래가사처럼 어디쯤에 머무는지 또 어떻게 살아가는지. 누가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혹시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두려움을 가지고 집 앞을 지나친다. 주위를 걸어본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 들리는 적당한 BGM이 나의 찌질함을 한층 증폭시킨다.



 함께했던 그 시간들, 거리거리마다 묻어있는 추억, 우리 발걸음이 나란했던 익숙한 거리, 아무도 없는 텅 빈 거리에서 혼자 살아난 설레임만이 갈 곳 잃은 채 공연히 내 가슴만 두근거리게 한다. 참 잊기 힘든 사람이다.



 그녀의 집근처 공원. 헤어짐이 아쉬워 여기 벤치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마을 회관 앞에 정자가 보인다. 그 곳에서 엄한 집안 분위기에 대해 힘들어하는 그녀를 위로했었다. 나의 집안 분위기 또한 엄했기에 그 마음 십분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런 집안 분위기 속에 숨 쉴 틈을 만들기 위해 했었던 수많은 노력에서 우리는 공통점을 많이 찾을 수 있었다.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어두운 밤, 공감 속에 전달되는 그녀를 향한 나의 진심, 그녀 앞에서만 서면 나도 모르게 음유시인처럼 흘러나왔던 말솜씨.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그녀의 눈에서 하트가 쏟아져 나오게 만든 날이었다. 그 날에도 그녀의 눈망울은 어김없이 참 예뻤다. 다만 그 다음 날 나에게 이별을 고했었다는 것은 빼고. 그 때는 다시 붙잡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녀는 나에게 마음을 모조리 열고 줄 것 같은 위기에 닥치면 나에게 이별을 고하곤 했다. 짧은 연애 기간 동안 3~4번은 되었다. 마음을 준 상대에서 크게 배신이라도 당한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일까? 양치기 소년처럼 이별을 고했었던 그녀였기에 마지막 이별의 순간조차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시 잡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처음에는.


 ‘좋게 생각하자. 그 말은 즉, 내가 잔뜩 날을 세우고 있는 그녀의 마음을 3~4번이나 넘게 함락시켰다는 것이다. 그만큼 난 매력적인 사람이었던 것이고.’



(#3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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