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이별의 김포공항》
노파는 영검을 믿으며 지성껏 빌기를 좋아했다. ……
훗날 소원이 이루어졌느냐 안 이루어졌느냐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빌 때의, 뭐든지 곡 이루어질 것 같고, 사는 것이 외롭거나 겁나지 않고, 마치 든든한 빽이 생긴 것 같고, 제신(諸神)들과 영통이 이루어진 듯한 그 짜릿한 도취경을 노파는 사랑했던 것이다.
……
노파의 조그만 머리엔 빌어두고 싶은 것이 쇄도해서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부처님, 석가모니 부처님, 그저 비나이다. 그저그저... 부처님, 제 마음 아시지요, 네, 제 마음 아시지요."
(박완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 231~2p)
자기 전에 성호경을 긋고 기도하는 것은 절대 잊지 않는다. 그게 하루 중 유일하게 주님을 떠올리는 시간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직 세례 받지 못한 예비신자 아니랄까봐, 식사 전후는 물론 일상 전반에서 그분을 떠올리는 일이 극히 드물다. 그래놓고 잘 때 돼서야 생각이 드는 거다.
‘아, 오늘도 깜빡했네요, 하느님. 죄송합니다.’
교리 봉사자 선생님은 나이가 드니,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감사하여 일어나자마자 기도를 드린다는 데, 그보다 더 큰 위기를 겪은 주제에 나는 아침에 눈 뜨면 밤새 채운 뇨의(尿意)를 해결하기에 급급하다.
결국 자기 직전의 이 시간이 하루에서 가장 영적인 순간인 셈.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음을 고하고 ‘한 말씀만 하소서’ 하며 대답 없는 대화를 던져본다. 사실 대답하셨는데 내가 못 들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상관없다. 답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을 생각하기는 했다는 그 느낌을 가질 수만 있다면 좋다.
기도를 드릴 때에는 정확히 특정 지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문제는 기도를 하다보면 자꾸 대립된 욕망이 떠오르고, 이 생각 저 생각이 마구마구 떠올라 무엇이 대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인지를 나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때는 별 수 없이 ‘주님 제 마음을 읽으시고 옳은 결정을 내려주소서.’ 로 끝맺음 한다.
그런데 제 아무리 전지전능하신들, 제멋대로 날 뛰는 욕망을 파악하실 수 있을까 하는 불경한 생각이 든다. 거짓말쟁이로부터 진실을 꺼내는 것보다 바보한테 꺼내는 게 더 힘든 법 아니겠는가.
그리고 설사 욕망의 본질을 꿰뚫고 어여삐 여겨 소원을 들어주신 들 변덕쟁이인 내가 “에이, 이거 말고요.” 하고 투덜거릴지도 모를 일.
그래도 기도를 드린다. 왜? 내가 편하려고.
판단력은 그래도 나보다는 그분이 더 뛰어날 테니 그거 믿고 그냥 지른다.
모르는 숙제 다 찍어놓고 채점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빈다.
틀렸다고 혼내시며 올바른 답과 풀이과정을 알려주시는 선생님처럼 내게 다가와 주시길 바라며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