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려놓음 23 D-5 Ⅱ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by 한남



23 D-5 Ⅱ




[3/12 토]

오후 7:00

속이 좀 좋지 않다. 가슴이 답답하고 더부룩하다. 토하고 싶은 듯 아닌 듯 애매한 기분. 급하게 먹은 베이크가 문제인 걸까? 소란스러웠던 아까 그 시간이 문제인 걸까?



오후 9:00

오늘 소란스러웠던 잠깐을 제외하고는 거의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링거 빼고 샤워도 했다. 주말이라 찾아온 손님도 많았다. 이모네 식구, 종훈이 형, 소꿉친구 일리의 어머님까지. 그들이 가져온 내가 좋아하는 먹거리들로 냉장고가 가득 찼다. 코스트코 베이크랑 고구마 케이크, 직접 만든 수육. 병원 밥 진짜 맛없는데 참 잘 된 일이다. 손님들이 찾아올 때마다, 사건 첫 날부터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힘들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고 자랑했다. 분명 그들에게 이야기했지만 진정 듣기를 바란 상대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잘 했으니까 잘 했다고 생각해도 된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 평소보다도 더 많이 보냈다. 그런 나에게 숨어있던 어둠이 말을 걸었다.

‘걸리는 게 있어서 그거 덮으려고 오늘 막 내달렸지? 다 알아’


체한 것 같은 이 느낌. 영 불안하다.

‘체하다 ≒ 속이 더부룩하다 … 구역감 ……… 이번 사건의 시작’ 비논리적이고 비약으로 점칠된 이 미약한 연결고리는 불안감을 덧대어 점점 단단해져갔고 날 겁박해갔다. 보이지 않는 ‘생존의 위협’. 무섭다. 커져가는 공포가 이성을 또다시 삼킨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홀로 참지 않았다.


간호사와 어머니에게 도움 요청을 했고 마침 회진 돌고 있던 주치의에게 바로 연결되었다. 급히 달려와준 꼬마쌤. 그의 입에서 알싸한 냄새가 난다. 바쁘게 다니느라 미처 해결하지 못한 저녁을 의국실에서 급히 해결하고 있었을 그가 여기에 와있다. 아직 1년차이기에 신경외과에 대한 전공지식이 많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래도 그의 차분한 말투와 친절한 모습에서 난 신뢰하고 안심한다. 별일 아닐 것이다.



오후 10:00

이번 체기(滯氣) 사건의 원인은 두 가지로 요약가능하다.


식상(食傷) : 급하게 먹은 베이크

간비불화(肝脾不和) : 6~7시 부근에 있었던 소란스러움


주치의와의 대화를 통해, 마음의 영향으로 발생한 ‘간비불화(肝脾不和)’가 조금 해소되었다. 애초에 사소한 체기(滯氣)를 공포까지 확장시킨 범인도 바로 마음이었다.




간비불화(肝脾不和)

한의학에서는 간(肝)을 뻗어나가는 기운과 연관시키며, 간(肝)의 뻗어나가고 소통시키는 힘을 토대로 비위(脾胃)가 소화 능력을 발휘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간(肝)이 스트레스나 여타의 문제로 기능에 장애를 가지게 되면 소화 능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격한 감정에서 식사를 했을 경우 체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간비불화(肝脾不和)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ex)

불편한 자리에서 식사 후 복통 호소

시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수험생에게 자주 발생하는 소화불량




이렇게 약해져버린 멘탈을 다시 만나게 되니 만감이 교차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일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이번에 깨달은 진리를 다시는 까먹지 말라고 운명이 일깨워준 거라 여기겠다.

그리고 오늘처럼 특이한 증상이나 사소한 불편함이 있으면 참지 말고 간호사, 전공의에게 이야기하겠다. 지레 겁먹고 아무 일도 없다며 스스로를 속이는 일은 이제 없다. 내 몸에 좀 더 신경 쓰고, 미묘한 변화라도 모조리 캐치해내리라. 숨기고 피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무섭더라도 상황을 직시하고 최대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여기를 떠나자.




(24 D-4 Ⅰ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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