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려놓음 24 D-4 Ⅰ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by 한남



24 D-4 Ⅰ




[3/13 일]

오전 2:00

수액을 제거했으니 소변이 덜 마려울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체기(滯氣)’가 가져온 공포에 지배되었던 그때 물을 많이 마셨다. 알약 먹을 때 같이 마신 물, 더부룩한 속을 가라앉히고자 마셨던 물, 지금은 괜찮으니 무엇을 먹어도 괜찮다며 자기암시를 걸면서 마셨던 바나나맛 우유 등등. 소변이 마렵다. 어머니 깨우기 싫은데... 그래도 화장실 가려면 깨워야겠지?



오전 6:00

밤에 식겁 좀 했다. 화장실에서 쓰러질 뻔 했다. 곤히 주무시는 어머니를 깨우고 침대에서 발을 내려 신발을 신었다. 좀 어지러웠지만 늘 그랬던 터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살짝 비틀거리며 도착한 화장실. 그 안에서 소변을 누기 위해 바지를 내린 순간 눈앞이 아찔해지며 내 몸의 모든 기능이 일시 정지되었다. 그렇게 쓰러지는 몸뚱아리를 오로지 문고리 잡은 팔 하나에 의지하여 간신히 버텼다. 무서운 경험이었다. 어렵다는 수술도 잘 이겨내고 돌아왔는데 낙상사고로 도루묵 된다면 이 얼마나 허무한가. 조심해야겠다. 나는 아픈 몸이다.

기립성 저혈압 때문인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증상을 혼자 삼키지 말고 꼭 이야기 할 것이다. 도망치지 말자. 일과성이라고 별 일 아니라며 넘기지 말자. 다 이야기하고, 다 인정하고, 더 조심하자.



오전 7:00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어젯밤 정도는 아니지만 어지러움이 살짝 남아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동완 : 어제 자다가 화장실 갔다 왔는데 잠시 시야가 아득해졌다가 돌아왔어요. 기립성 저혈압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승현 : 너 자꾸 이상한 진단명 자꾸 갖다 붙이지마. 아주 나쁜 습관이야. 다른 가능성에 대한 생각을 차단시켜버려.필터링 거치지 말고 이상한 거 있으면 주치의에게 다 이야기하고 물어봐. 주치의는 모두 알아야 해. 그래야 생길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검사를 하지.

동완 : 저번에도 혼나놓고 또 까먹었네요.

승현 : 그리고 만약에 한 번 더 비슷한 일이 있으면 나는 뇌파검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숨기는 거 정말 목숨 걸고 도박하는 거야. 절대 증상 숨기고 혼자 그러려니 하지 마. 모든 것들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해. 그래야 일상생활 가서도 혹시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을 원천 차단할 수 있어.

동완 : 명심할게요.

승현 : 회진 왔을 때 ‘~~걸 이야기하고 ~~건 꼭 답을 들어야지.’ 이런 걸 정해놓고 확실히 짚고 넘어가고 이야기하고 그래야지.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너도 한의사인데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그러려니 하는 게 장점은 아닌 거 알잖아. 그런 거 잘 챙겨.



이 시간에 일어나 있을 양반이 아닌데 답장이 칼 같이 왔다. 좀 혼났다. 혼날 만한 행동을 하긴 했다. 뉘앙스를 전달하고자 선택한 단어 하나가 선입견을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모자란 막내 꾸지람하는 것 같다. 혼내는 것도 애정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법. 고맙다.



오전 10:00

전공의들이 다녀갔다. 승현이 형 조언대로 미리 준비해둔 질문을 했다.

먼저 조직검사. 결과는 더 기다려봐야 한다고 했다. 대개 1주일에서 10일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수술이 월요일이었으니 내일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간밤에 있었던 어지럼증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사견은 모두 배제하고 날 것 그대로 전달했다. ‘행동을 천천히 하라’는 티칭을 받았다. 일반인도 갑자기 움직이다보면 어지러울 수 있는 일이라며 크게 개의치 말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내일 실밥 뽑고 시야 검사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야 검사를 할 때는 동공을 확장시키는 안약을 넣는다. 그럼 몇 시간 정도는 흐릿한 눈으로 지내야 한다. 한동안 눈앞을 제대로 못 볼 걸 생각하니 좀 서럽다. 되도록 자기 직전에 검사했으면 좋겠다.


수술하기 전에도 시야 검사를 한 번 했었다. 시야 검사를 통해 수술 전후를 비교해보려는 것 같다. 그날은 밤 9시에, 어머니가 잠시 설거지 하러 간 사이 간호사가 와서 휠체어에 태워 날 데려갔었다. 전력을 아끼기 위해 최소한의 조명만 킨 밤의 외래병동은 스산했다. 나를 안과 외래로 데려다 준 간호사는 곧 의사 선생님이 올 것이라 이야기하며 떠났다. 저 멀리 켜진 조명 하나에 의지하여 하염없이 안과 선생님을 기다렸다. 종양이 가져온 어지러움과 겨울의 끝자락이 선사하는 떨림, 혼자라는 두려움, 어두컴컴한 실내. 그 곳에서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 그 분을 기다렸다.

뒤늦게 달려온 사람은 전공의였다. 그녀는 검사를 위해 기기를 세팅하면서 전화로 쉴 새 없이 화를 내었다. 업무 전달에 있어서 무언가 문제가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잔뜩 주눅 든 상태에서 검사를 해서 그런지 검사 결과를 내는데 실패하여 한 번 더 해야만 했다.


검사가 끝났지만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았고 나중에 다른 간호사가 뛰어와 나를 병실로 데려갔다. 그렇게 도착한 병실에 어머니는 사색이 되어 있었다. 잠시 설거지 하고 왔더니 자식은 사라졌고 한 시간 넘게 돌아오지 않았으니. 심지어 신경외과 간호사실에서도 나의 행방을 몰랐으니 어머니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발휘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이상하게도 그날 밤은 안과도 신경외과도 이래저래 혼선이 많았다. 내일은 그러지 않기를 바라본다.




(25 D-4 Ⅱ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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