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려놓음 22 D-5 Ⅰ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by 한남



22 D-5 Ⅰ





[3/12 토]

오전 7:00

돌아온 후 3일 내내 밤에도 수없이 화장실을 드나들고 있다. 한두 번이 아니다. 기본 5번. 게다가 Input과 Output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병원에서 준 소변통에 눈 다음 그 양을 기록해야 하는데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혼자서 화장실에 갈 수 없는 현실. 보호자 침대에서 쪽잠을 주무시는 부모님을 깨우고, 부축 받아 링거를 질질 끌고 화장실에 간다. 그리고 변기가 아닌 소변통에 대고 오줌을 눈다.

모두가 잠든 어두운 밤. 그냥 침대에 앉아 소변통에 오줌을 누면 될 일이다. 그러나 20년 넘게 훈련된 내 몸은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의 배설 행위를 거부했다. 수없이 시도하지만 단 한 방울도 짜낼 수 없다. 결국 부모님을 깨운다. 번거로움 속에 소변이 마려운 나도, 그런 나를 부축해야하는 부모님도, 소란스러움에 설핏 든 잠을 깨야하는 옆 침대 아저씨도 힘들다. 적게 마시면 좀 낫지 않을까 싶어 5시 이후로 수분 섭취를 피했다. 그러나 결과는 똑같다.


왜 그런 것일까?

수술 할 때 뇌하수체를 잘 못 건드린 것일까?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내가 왜 이렇게 된 거지?



오전 8:00

간호사가 링거와 수액을 제거해갔다. 주기적으로 주사를 맞아야 한다며 왼 팔뚝에 라인 하나만 남겨두고 갔다.

‘링거 맞고 있지 않은 입원환자’

생각해본 적 없는 지위가 놀랍기만 하다. 활동이 자유로워져서 좋다. 이제 샤워할 수 있겠다. 물수건 샤워만으로는 한계가 많았다. 여름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오전 11:00

생각해보니 어제 수액을 갈 때, 간호사는 수액을 1시쯤에 제거한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8시에 제거했다. 15시간 동안 들어가야 했던 수액이 10시간 만에 모두 주입된 것이다. 밤에 화장실 자주 간 것이 이제 이해가 된다. 어제 물을 거의 마시지 않았는데도 똑같이 밤에 소변이 마려웠던 이유도 알겠다. 다 수액 때문이다.

잠든 그 시간에도 링거를 타고 끊임없이 혈관으로 공급되는 수액, 그리고 자리가 바뀌면 깊게 잠들지 못하는 나. 더 많이 생산되는 소변과 더 쉽게 느껴지는 뇨의가 만들어낸 비극이다. 이제 수액이 제거되었으니 밤에 화장실 갈 일은 줄 것이다. 밤에 깊게 자고 싶다. 자리가 바뀌면 잠을 못자는 성격. 고치고 싶다. 그렇다고 병실에 익숙해지는 것은 사양이다.



오후 2:00

링거를 빼니 삶의 질이 확실히 좋아졌다. 걸리적거리는 것 하나 없이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 충전기 줄을 벗어난 스마트폰을 만질 때의 쾌감은 이에 비할 바가 아니다. 치료받는 것도 주기적으로 주사 몇 방, 식사 때 마다 먹는 알약이 전부다. 심지어 실험용 쥐 같은 기분을 들게 하던 소변량 체크도 안 해도 된다. 이제 변기에 오줌을 본다.

다만 승현이 형 말로는 이 항경련제는 꽤 오래 먹어야 한다고 한다. 어쩌면 평생. 그렇지만 상황이 좋게 흘러가면 2년 후에 그만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오후 6:30

아버지는 10여 년 전인 내가 고등학생 때 암 투병한 뒤로 학원 일을 그만두시고 주말에 과외 몇 개 하시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는 경북 구미의 한 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시고 있다. 주중에는 아버지, 주말에는 어머니 이렇게 두 분이서 번갈아 24시간 나를 간호하고 있다. 하지만 주중에도 어머니는 퇴근길에 꼭 병원에 들러 몇 시간씩 내 얼굴을 보고 가신다. 그러므로 대개 6시부터 10시까지는 부모님 모두와 함께 있다.

그런데 오늘은 3명이 아니다. 가족 4명 모두 모였다. 내가 걱정된 동생이 예고 없이 병원에 온 것이다. 부모님은 당황했다. 빨래, 설거지, 청소 등 밀린 집안일이 산적해있는데 여기 와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는 노릇.


한 사람이 아프다는 것은 이렇게 힘든 일이다. 4명 가족이 4명 일을 해도 삐걱거리는 게 일상이다. 그런데 아프다고 1명이 빠지고, 그런 아픈 사람을 24시간 간호하기 위해 또 1명이 빠진다. 2명이 4명 몫을 해야 하고 심지어 그 2명 중 1명은 이제 대학생이 된 꼬꼬마라 1명 몫은커녕 스스로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다. 그래도 그 일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마당에 이렇게 와버린 것이다.

뒷감당을 걱정하는 부모님과 나, 그리고 자신의 방문을 반갑게 여기지 않는 가족에게 실망감을 느끼는 동생. 잠시 병실이 소란스럽다. 옆 침대 아저씨가 외출 나간 게 그나마 다행이다.




(23 D-5 Ⅱ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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