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려놓음 21 완의 귀환 Ⅳ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by 한남



21 완의 귀환 Ⅳ




일반병실로 돌아온 다음 날부터 보건소와 지소에 감사가 돌기 시작했다. 다들 문제가 될 소지는 없는지 점검하느라 병문안이 모두 취소되었다. 좀 심심하겠구나 싶었는데 내가 있던 지소에서도 문제가 터져서 도리어 바빠졌다. 운수지소의 김 여사님이 보험용 한약 엑스제나 침, 뜸, 부항 같은 소모품 재고 파악하는데 어려워하여 내가 도와드려야 했다. 내가 지소에 있었으면 도와주고 간단히 끝날 일이었는데 병원에서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니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고 있던 사이 병실에도 문제가 발생했다. 투덜이 아저씨가 떠난 옆 침대에는 20대 이비인후과 환자가 혼자 입원해있었는데, 외출 준비 중에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쓰러져버린 것. 급하게 의료진들이 달려오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더니 다른 곳으로 급하게 이송되었다. 그리고 그가 떠난 빈자리는 2시간 뒤 50대 쯤 보이는 아저씨로 다시 채워졌다.


감사의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보건소이지만, 사실 공보의에게는 큰 타격이 없다. 환자가 거의 없는 오후 시간대에 한의과 진료실에 모두 모여 뜨뜻한 온돌 베드에 누워서 시간 때우는 사치를 못 하는 정도? 그래서인지 오히려 톡방은 전보다 더 활기를 띄었다.

처음은 골프 이야기로 흥했다. 많이 시일이 흐른 것 같아도 입원한지 2주밖에 안 되었는데 그새 다들 고수가 되었다. 싱글 치는 사람들은 2배가 되고, 100타 안쪽은 그냥 무난하게 기록했다. 같은 시기에 골프를 시작한 홍윤이는 어느새 싱글의 경지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꼴찌였는데 이제는 같이 치자고 하기 민망할 수준. 복귀할 때쯤이면 이 똥폼조차 다 망가져있을 걸 생각하니 살짝 섭섭하다가도, 수술 전에는 생존을 걱정하던 때가 생각나서 웃음도 났다.

해외여행 이야기도 흥했다. 전역을 앞둔 형들이 여행계획을 짜는데 규모가 자못 컸다. 3개월짜리 유럽여행을 떠나는 용현이 형, 그 여행 중 한 달을 동행하는 민성이 형. 부럽다. 내일로 여행 5번, 틈틈이 대구 근교에 놀러가기 등 국내 여행은 그럭저럭 했지만 살면서 바다 건너 본 적은 딱 2번뿐이었다. 4년 전 대학교 졸업여행으로 간 제주도와 8년 전 3박 5일 일본 여행. 그래서 꼭 공보의 때는 해외여행을 하리라 마음먹었었다. 다만 돈이 문제였다. 월급을 받으면 그 중 100만원은 학자금 대출 갚는데 쓰고, 나머지 돈을 아끼고 아껴 해외여행 경비로 모았었다. 그렇게 알뜰히 돈을 모아두었는데 지금 병원에 누워있는 신세가 되어 모든 계획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다 낫고 나면 미래의 나에게 돈을 빌려서라도 해외여행 꼭 가보고 말리라.


1년차 공보의들이 훈련소 들어간 이야기로 한참 떠들썩하던 톡방도 퇴근 시간이 되니 시들해졌다. 골프연습장에 가고, 집에 가고, 데이트하러 가고, 술 마시러 가고. 제각기 할 일을 찾아 떠난 자리에 홀로 남은 나. 그리고 다시 돌아온 현실. 슬프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점심마다 모여 수다 떨던 고령읍내의 카페에 있었는데 어느새 병원 침대에 앉아있다. ‘나’라는 톱니바퀴 하나가 빠졌어도 세상은 잘 굴러간다. 조금의 삐걱거림도 없이 원래도 없었던 것처럼.


재고 확인, 진단서 발급, 병실 짐 정리 등등 급한 불들이 하나 둘 꺼져갔다. 이제 조직검사 결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고민하는 내 앞에 놓여있는 노트 하나. 수술 전 힘들었던 그때의 내가 담긴 노트. 그때처럼 무언가를 쓰고 싶다. 하지만 이 노트에 쓰고 싶지 않다. 다른 내용으로 덧칠하기엔 너무나 고결하므로.

첫 노트가 불안과 공포의 기록이라면, 두 번째 노트는 기다림과 희망의 기록이기를 원한다. 퇴근길에 들리는 어머니께 오면서 노트 하나를 부탁드렸다. 아래는 3월 12일부터 검사결과가 나오기 전 날까지의 기록이다.

그 스타일을 살려 적어본다.




(22 D-5 Ⅰ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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