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공보의 단체톡방에서 드립을 하나 쳤는데 완전 실패했다. 급속 냉각된 분위기를 어떻게 수습할 것이냐며 무진장 까였다. 그러면서 간만에 내 이야기로 주제가 넘어왔다.
내 두 팔에는 멍으로 가득했다. 처음에는 왼손잡이인 나를 배려하여 오른팔에 라인을 잡았었다. 그러다가 멍이 많이 들어 다시 왼팔로 옮겼다. 라인 주위로 넓게 퍼진 오른팔의 멍은 식빵에 핀 곰팡이를 연상시키듯 푸르렀고, 푸른 팔을 볼 때마다 마음 아파하는 부모님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헐렁거리는 환자복 소매 끝을 노란 고무줄로 묶어놓았었다. 그 푸른 팔이 노랗게 변할 때쯤 이제는 왼팔이 얼룩덜룩한 푸르고 붉은 멍으로 가득해졌다. 스테로이드, 진해거담제를 비롯한 주사 5방을 한꺼번에 넣기에는 나의 혈관벽은 한없이 연약했던 게 분명했다.
아침에 회진 오신 교수님이 가고, 주사를 놓기 위해 남은 간호사는 내 팔을 살피더니 링거라인을 다시 오른팔로 옮겨야겠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간호사에게 급한 콜이 들어와 대신 다른 간호사가 작업을 이어받았다. 그녀는 뽀얀 지방 아래에 숨은 혈관을 찾는 걸 굉장히 힘들어했다. 2번이나 찔렀지만 허사였다.
‘ICU에서 대변 완하제를 빼주던 천사가 오늘은 날 아프게 하네.’ 넌지시 물었다.
몇 년차에요?
이제 막 2년 차 되었어요. 티 많이 나죠? 죄송해요.
괜찮아요. 저도 대학생 때 실습하면서 친구 팔에 멍 잔뜩 만들어 놓았어요.
그래도 잘 하시는 분 대신 모셔올게요. 죄송해요.
제 팔 많이 힘들죠? 부탁드릴게요. 보시다시피 여기저기에 멍이 너무 많아가지고 좀 힘드네요.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잠깐 있으니 고수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간호사 분이 와서 능숙하게 라인을 잡았다. 따끔거리는 통증 한번 느껴지지 않아 신기할 정도. 귀찮은 발걸음 한 수고도 감사하고 그래서 그녀의 실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칭찬 안에는 혹시나 돌아가서 한 소리 들을지도 모를 초보 간호사를 위한 배려도 좀 섞여있었다.
방금 있었던 이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운을 띄우자 형들은 당황하는 간호사의 모습에서 옛 여친의 흔적을 느낀 것은 아니냐면서 바로 장단 맞추어 주었다. 가볍다. 대화의 가벼움 속에서 나는 또다시 희망을 찾는다.
동생이 왔다. 살다보니 동생한테도 의지할 순간이 온다. 항상 모자라 보이고 챙겨줘야 할 것 같고, 둘만 남게 되면 어떻게 책임져야 하나 걱정만 되던 동생인데 반대가 되었다. 가끔 표독스럽게 굴고 고집도 세지만, 착할 때는 또 한없이 착한 동생이 가족이 진 짐을 나눠들러 왔다. 이제 막 대학 새내기가 되어 자신의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데도 힘이 많이 들 텐데 내가 아픈 바람에 응당 받아야할 관심을 뺏겨버렸다. 미안하다.
대학교 생활에서 염두에 두면 좋을 것들, 지금같은 비일상적인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가장 옳은지 등등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전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두 마디쯤은 투정할 법 한데 군말 없이 내 말을 다 들어주었다. 고맙다.
경상도 남자답지 않게 말투나 단어선택이 부드럽다는 평가를 많이 받은 나였다. 사랑 표현에도 적극적이었으며 느끼하고 달콤하고 오글거리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그런데 가족에게는 그게 잘 안 된다. 멋쩍다. 사랑한다는 말은커녕 고맙다는 말도 어렵다. 결국 고맙다는 말 대신 미안하다가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미안하다’는 말 밖에 못해서 더 미안하다.
부모님과 함께 있다가 동생이랑 있으니 운신의 폭이 넓어져서 좋다. 잠시 가진 자유 시간. 20분 정도 산책했다. 오늘도 연락처를 훑어보지만 마땅한 곳이 없다. ‘이야기’가 하고 싶다. 하지만 들어줄 사람이 없다. 오늘은 그냥 조금 먼 곳을 거닐며 먼 산을 보았다는 것에 의의를 두자.
(33 D-2 Ⅲ 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