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나의 간호를 둔 부모님의 대립은 어머니의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잠든 뒤에도 계속 되었다.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논리나 감정, 사고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 없는 조각조각난 생각의 홍수였다.
ICU (중환자실)
인큐베이터
무너지는 병원과 다급히 뛰는 의료진과 환자들
침대에 묶여있는 나
가정의 붕괴
공포, 당황의 감정
떠오르는 대로 적어놓고 몇 번을 곱씹어보아도 그 시간이 나에게 무엇을 전하려 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환자복에 흠뻑 베인 땀과 갈비뼈를 부술 듯이 뛰는 심장만이 그 당시의 마음고생을 증명할 뿐이다. 인큐베이터는 무엇이고 무너지는 병원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다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걱정하지 말자.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내 정신건강밖에 없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부모님을 믿자.
몸 상태도 나쁘지 않다. 밤에 잘 때 땀이 많이 나서 골치지만 화장실 가는 빈도도 줄고, 낮에는 혼자 있어도 별 무리가 없다. 그래서 오늘 낮에는 동생이 와서 보호자 역할을 한다. 동생의 손을 빌려서라도 감기 걸린 아버지에게 휴식을 드리고,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도 마음의 평화와 몸의 건강이 왔으면 좋겠다.
옆 침대 아저씨는 가끔 형님이 다녀가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혼자 계신다. 신사적이고 양보도 많이 해주시고 항상 고마운 분이다. 아저씨가 감기기운도 있고 코골이가 있는 게 도리어 위안이 될 정도.
그 분이 퇴원한 후를 생각하면 눈앞이 깜깜하다. 그런데 방금 의사가 와서 주말쯤 퇴원해도 되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갔다. 내일 나가면 어쩌나 날마다 걱정했는데 앞으로 5일 간은 안심해도 된다. 그래도 영 아쉽다. 아저씨가 더 입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기적이라는 거 알지만 다른 사람이 오면 지금처럼 마음 편히 지내지 못할 것 같아 더 마음이 쓰인다.
교수님이 회진 왔다. 어제 회진 오지 못하여 오늘 오전에 오실 거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일찍 오실 줄은 몰랐다. 할 이야기가 많아 준비도 했는데 막상 얼굴을 마주하니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당황한 나머지, 간밤에 느낀 왼쪽 눈 부근의 압박감 이야기로 시간을 벌면서 노트를 찾았다. 그리고 준비한 대사를 기록해둔 페이지를 찾아 지난 주말에 있었던 현기증 사건을 보여드렸다.
교수님은 침대에 누워 지내다보면 그럴 수 있으며 다른 검사 수치들도 괜찮고, 컨디션도 좋으니 별 문제 없다며 씨익 웃었다. 치프와 똑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마음이 놓인다. 권위자의 여유에서 오늘도 위안 받는다.
이제는 반자동으로 나오는 질문, 조직검사 결과 유무에 대해서는 아직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병리과 단체로 휴가라도 갔나?’
병원에 어느 정도 더 입원해야 할지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있고 싶지 않았는데 사람 쉽게 안 변한다.
(32 D-2 Ⅱ 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