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교수님이 아니라 PA 간호사가 왔다. 교수님은 지금 응급수술 중이라고 했다. 오늘 있었던 검사 결과를 전해주었다. CT 검사 상 뇌부종이 많이 가라앉았으며 혈액검사에서 나트륨 수치가 많이 낮게 나왔다고 했다.
그에 대한 처치는 신선했다. 식사 때 따로 소금 봉지를 2개 줄 테니 적당히 간을 추가해서 먹으라는 것. 언제부터인가 내 머릿속의 병원식은 간을 최소한으로 한 저염식단이었다. 한국인의 나트륨 섭취량이 WHO 권고량을 훨씬 상회하며 이는 성인병과 직결되는 문제라며 하루 멀다하고 언론에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럼에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짜게 먹던 나였고 의외로 병원식은 내가 원하는 수준의 간이 되어있었다. 물론 맛이 없었지만. 심지어 잘 먹는 게 최선이라는 의료진의 지시에 충실히 따라 병문안 오는 사람들에게 햄버거, 피자, 베이크 등을 부탁하고 그걸로 매 끼니를 해결 한 나였다. 그런 사람에게 소금을 더 먹으라니 정말 신기한 노릇.
종양의 grade에 대해서 살짝 물어보자 아직 나온 것이 없다며 대답을 피하며, 스테로이드를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미성숙한 WBC가 많으니 염증 및 청결에 주의를 많이 기해야 된다고 당부하고 떠났다.
보이는 듯 보이지가 않는다. 진행 상황도,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든 것이 그러하다. 답답함이 또 한 번 나를 스쳐 지나간다. 초조하다.
응급수술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아니면 퇴근했는지 교수님은 오지 않았다. 그 분도 어떤 한 가정의 구성원이다. 집에는 나보다 훨씬 소중한 사람들이 모여 그 분을 기다리고 있다. 그 곳에 가는 것이 백 번 옳다. 회진 오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못 온다고 알려주고 갔으면 이렇게 기다리지 않을 텐데 아쉽다.
학교에서 퇴근하고 병실로 출근 온 어머니와 주중에는 나와 함께 24시간을 보내는 아버지. 두 분 간에 병간호 문제가 대두되었다. ‘아버지의 감기’가 사건의 발단. 밤새 컨디션이 좋지 못했던 영향을 지우기에는 한나절은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안색이 좋지 않은 아버지를 보고 어머니는 자신이 밤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보호자의 감기는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으니 당분간 집에서 잠을 자고, 충분히 회복한 뒤에 밤을 지키라는 어머니
당장 내일 출근해야 하는 사람이 병실에서 자는 것이 말이 되는가. 마스크 계속 쓰고, 얼굴 마주하는 일은 되도록 피하는 등 감염 예방에 주의를 기울이면 큰 문제가 안 된다는 아버지
두 분의 의견대립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감기 걸린 채 찬 바닥에서 불편한 잠을 이루어야하는 아버지도 아버지이지만, 그렇다고 어머니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더 싫다. 당장 1시간 거리를 운전해서 출퇴근해야 하는 어머니다. 내가 운전 안 해본 것도 아니고 졸음운전이 얼마나 위험한 지 잘 아는데 그것을 볼 수 없다. 병원에 매일 오지 말고 조금이라도 집에서 쉬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에도 열두 번씩 생각하는데 어머니가 여기 있으면 안 된다.
그리고 나는 혼자 일 때가 가장 마음이 편하다. 나 때문에 비좁고 추운 보호자 침대에서 자야 하는 부모님을 볼 필요도 없고, 그렇게 힘들게 겨우 잠든 부모님을 고작 소변 하나 보자고 깨울 일도 없다. 간호하다 감기 걸릴 일도 없고, 서로 병실을 지키겠다고 싸울 일도 없다. 그 뿐일까? 혼자 있으면 울적할 때 눈물 흘릴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전화 걸어 힘들었다고 또 힘들다고 솔직하게 털어놓고 엉엉 울 수도 있다. 하지만 부모님 앞에서 그럴 수는 없다. 그러고 싶지 않다.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다. 혼자서 하루 정도는 버틸 수 있는데. 굳이 24시간 보호해줄 필요는 없는데. 왜 아무도 안 믿어주는 걸까? 한 사람이 아프다는 것은 이렇게나 힘든 일이다.
결국 오늘 밤 내 옆은 어머니가 지키게 되었다. 내가 나가야 한다. 여기서. 빨리.
(31 D-2 Ⅰ 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