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려놓음 29 D-3 Ⅲ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by 한남



29 D-3 Ⅲ




[3/14 월]

오후 1:00

CT와 X-ray를 찍고 왔다. 좋은 경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왜 뜬금없이 Chest(흉부) X-ray를 찍는지 궁금해서 형들에게 물어보았다. 수액을 맞으면 폐에 물이 찰 수 있어 확인하고자 찍는다고 했다. 각기 다른 곳에 붕대감은 사람들이 Chest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그 광경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교수님이 회진 오기 전에 빨리 주치의를 만나 드레싱하고 싶다. 머리가 가려운데 긁을 수가 없다. 배포장지 머리를 보면 서글프다. 지금이 꿈이 아님을 알리는 토템. 이 모든 게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꿈이라면 스크루지 영감처럼 개과천선해서 더 잘 살 자신 있는데.


토넴 : 영화 『인셉션』의 용어, 현실과 꿈을 구분 짓게 해주는 자신만의 물건



오후 2:00

주치의가 드레싱 하러 왔다. 시원하니 낫다. 왼 머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비롯하여 여러 준비해둔 이야기를 전했는데 영 반응이 시큰둥하다. 염려할 필요 없다는 뉘앙스이긴 한데 좀 불안하다. 의국실로 돌아가서 더 열심히 알아봐주기를 기대한다.

조직검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 바로 앞 환자 것까지는 나왔다며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해온 만큼만 앞으로도 해 나가면 충분하다고 격려해주고 갔다.

‘앞... 도대체 그 앞에는 무엇이 있고 그 끝은 언제일까?’



오후 3:00

교수님 오기 전에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미리 적어두어 본다.



① 지난 토요일 밤 증상침대에서 일어나 슬리퍼를 신고 화장실까지 걸었다. 어떤 상태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화장실 문 열고 몸이 들어간 순간 순간적으로 눈이 아찔해지면서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불안정한 마음으로 얼른 배뇨를 마치고 떨리는 심장을 움켜쥐고 침대에 복귀했다.

② 왼쪽 관자놀이 부근이 뻐근하게 종종 아플 때가 있다.

③ 왼쪽 후두부에 당기는 듯한 통증이 종종 있다.

④ 조직검사 결과 및 향후 치료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들을 수 있는지 알고 싶다.


국가고시를 통과한 뒤 1주 있다 졸업하고, 졸업하고 2주 있다 훈련소 가고, 1달 훈련 받고 3일 쉬었다가 보건소에서 근무 시작했다. 한 사람의 의료인으로서 사람들을 진료하고 한약을 처방하고 침을 놓았지만 아직 마냥 한의대생 같았다. 실제로 로컬에 나가서 한방병원이나 한의원에서 근무한다면 모를까 나에게 ‘한의사’라는 직함은 어릴 때 한 번씩 입어보는 아버지 양복처럼 어색했다.

본과 7학년. 학생만 9년째 하는 기분. 그랬던 탓일까? 나에게 집도의 선생님은 의사 선생님의 ‘선생님’이 아니라 스승의 ‘선생님’이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부작용의 가능성들을 다 쳐내버린 실력에 대한 경외감도 한몫했다. 그래서 집도의 선생님에 대한 호칭은 항상 교수님이다.


교수님은 나를, 상황에 따라 때로는 환자로 때로는 한 사람의 의료인으로 대우해주었다. 후에 침구치료 병행 여부에 대해 의견을 나눌 때에도 “침구치료해서 더 나빠졌다는 연구 결과나 이야기는 아직 들은 바 없네요. 의사가 자기 자신을 치료한다는 데 어떻게 말릴 수 있겠어요.” 라고 말씀할 정도. 그 후로 나는 다짐했다. ‘한의사’ 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될 것이라고.




(30 D-3 Ⅳ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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