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려놓음 05 기다림의 시작 Ⅲ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by 한남


05 기다림의 시작 Ⅲ




진료의뢰서를 받아들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때마침 퇴근시간대와 맞물려 주차장이 된 도로에서 한참 고생한 끝에 겨우 도착한 병원. 응급실 후미진 곳에 하나 남아있던 빈 침대에 자리 잡았다.

또다시 시작된 기약 없는 기다림.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가만히 있고 주위 배경은 빠르게 움직이도록 표현하는 걸 스텝 프린팅 기법*이라고 하던가? 딱 그 느낌이었다. MRI영상을 본 뒤 극심해진 공포감과 응급실이라는 이질적인 공간은 나와 세상의 연결을 끊어버렸고, 그때부터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허깨비처럼 의식 속을 둥둥 떠다닐 뿐 도저히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다.


스텝프린팅(step printing)
저속촬영을 한 다음 특정부분을 필요한 만큼 복사해 붙이는 방법으로 물체의 움직임을 묘사해 내는 영화기법이다. 스텝프린팅 기법을 사용하면 동작의 잔상이 그대로 이어져 흐르듯이 묘사되는 슬로모션 화면을 만들어낼 수 있다. 또한 이 기법을 이용해 느리게 움직이는 전경과 빠르게 움직이는 배경을 한 화면 속에 모순적으로 담아내어 단절된 듯한 비현실적인 감각을 줄 수도 있다.


응급실 구석에 방치되어 있기를 두어 시간. 조급해진 어머니와 아버지는 번갈아 자리를 비웠다. 필시 의사나 간호사를 붙잡고 우리 아이 좀 봐달라고 하소연하고 있겠지. 나도 몸만 멀쩡했으면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응급실에 온 지 몇 시간이 지나도 어떻게 한 번 찾아오지도 않습니까?” 소리치며 화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응급실에서 의료진을 향한 폭력이 많다는 것이 일면 이해가 된다. 마음이 급한 것이다.


부모님의 애원이 먹혔는지 인턴이 와서 몇 가지 검사를 하고 갔다.

‘이제 인턴이 와서 검사 했으니, 검사 결과랑 아까 전달한 MRI 영상을 토대로 대강 어느 과로 보낼지 결정하겠지? 신경과일까? 신경외과일까?’

오늘이 2월 29일인 걸 감안하면 방금 다녀간 인턴은 국가고시를 갓 통과한 꼬꼬마임이 분명하다. 엉성한 손놀림이 영 못미덥긴 하지만 그래도 그 뒤에 존재하는 병원 시스템을 믿으며 처치를 기다렸다.


얼마 뒤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왔다. 또 인턴이었다. 아까 받은 검사를 그대로 한 뒤 떠나갔다. 응급실 전달 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신뢰는 깨졌고 그 빈 자리는 불안이 메꾸었다. 그리고 불안해진 마음은 이내 딱딱한 침대가 주는 불편함과 그보다 더 불편하게 앉아있는 부모님을 장작 삼아 타오르는 화(火)로 변했다. 네 번째로 찾아온 인턴은 심지어 제일 처음 왔던 인턴이었다. 결국 애꿎은 사람에게 분노가 쏟아졌다.



아까 오셨잖아요. 와서 또 똑같은 검사하고. 쌤 말고 다른 쌤도 와서 똑같은 검사하고. 응급의학과 레지쌤들에게 제 검사결과가 가긴 했나요? 여기 온지 몇 시간인데 왜 레지던트 쌤 한 번 안 옵니까?
지금 사람들이 많아가지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잘못은 수뇌부가 했음에도 그 항의는 콜센터 직원이 받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이었다. 결정권이 없는 사람에게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불만을 표시하도록 만든 시스템에 도무지 정이 가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지금 아무 힘없는 인턴에게 진상을 떨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훈련소에서 같이 생활한 응급의학과 형이 해준 이야기, 동기들이 인턴시절 고생했었던 여러 에피소드 등등 주변 사람을 통해 익히 병원의 사정을 알고 있었던 나였다. 그럼에도 나는 화를 내고 있었다. ‘기다림’ 의 가혹함 앞에서 나의 이성은 그렇게 무너져 내려갔다.



신경질을 한바탕 부린 덕분인지 얼마 뒤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나타났고 간단한 문진을 몇 개 하더니 부모님을 모셔갔다. 결정한 사항이 많은 듯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고, 부모님을 기다리는 내 귀에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갑자기 들렸다. 그 소리는 응급실 한 켠에 마련된 방에서 흘러나왔다.


수연아. 엄마 여기 있어. 눈 떠봐 수연아. 엄마 왔어. 수연아. 수연아. 수연아아...


수없이 이름을 불러보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조용한 응급실에 들리는 건 오직 자식 잃은 어미의 슬픔 뿐. 그런 처절한 절규도 오래가지 않아 ‘억’ 하는 소리와 함께 멈추었다. 뒤이어 들리는 다급한 발소리. 그리고 얼마 뒤 또다시 한 무리의 의료진이 뛰어간다. 이번에는 죽어버린 손녀와 까무러친 딸을 본 할머니가 쓰러진 것이다. 3대에 걸친 비극.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응급실에는 생(生)과 사(死)가 공존하고 있었다.


예전에 고등학교 한의사 동문회에서 익렬 형님께서 술자리에서 해준 조언이 있었다. 자기가 너무 게을러졌다고 느껴지거나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는 큰 병원 응급실에 하룻밤 있어보라고, 그러면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알겠노라고 대답하는 나의 머릿속의 응급실은 미디어에서 등장하는 응급실이었다. 밀려드는 응급환자를 대처하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는 의료진, 응급 상황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기에 대낮같이 환하게 밝혀놓은 조명, 신음하고 있는 환자/보호자들과 의사들의 대화로 시끌시끌한 실내.

그러나 막상 지금 당장 내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의 응급실은 달랐다. 조명은 동틀 무렵의 하늘처럼 잔잔해서 오히려 어둑하게 느껴졌고, 실내는 환자들의 신음 소리만 간간히 들리는 적막의 극치였다. 보호자 없이 혼자 와서 간호사를 애타게 찾는 할아버지의 외침도, 아이의 죽음을 두고 오열하는 어머니의 통곡도 이내 삼켜버리는 무서울 정도의 고요함. 마녀에게 목소리를 빼앗긴 인어공주처럼 나도 응급실에게 목소리를 빼앗겨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공포감에 일부러 아버지께 말을 걸어 보기도 했다.


엄마는 어디 갔나?
니 입원 준비한다고 짐 싸러 갔다. 내일 아침에 올 거야


막 진급하고 임용된 전공의와 간호사들이 존재하는 3월. 결정내릴 능력 있는 사람들이 없었던 응급실. 그날 컨트롤 타워는 부재(不在)했다. 나중에 들어 안 것이지만 그 날 신경외과 병동에는 빈자리가 여럿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빈자리에 초대받을 수 없었던 우리 가족은 뜬 눈으로 밤을 지낸 다음 날 점심에야 비로소 병실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 이후로 한 동안 병원 문 밖을 못 나가리라고는.




(06 잊혀진 시간 Ⅰ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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