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려놓음 04 기다림의 시작 Ⅱ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by 한남

04 기다림의 시작 Ⅱ




오전에는 동생 입학식도 있고 컨디션도 별로라서 오후에 MRI를 찍으러 가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섞여있던 결정이었다. 그러나 어지러움은 점점 더 심해져갔고 누군가가 내 머리를 움켜쥐고 바닥에 짓누르는 것처럼 괴로울 뿐이었다. 결국 바람 빠진 주유소 풍선 인형마냥 축 늘어진 몸을 이끌고 어머니 차에 타야만 했다.

이 근방에 유일하게 MRI 기기가 있는 K신경과. 거대한 메디컬 빌딩의 3개 층을 차지한 어마어마한 규모였지만 환자들로 가득 차 대기실 의자가 남아나지 않았다.


‘좀 일찍 출발할 걸. 괜히 밍기적거렸네...’


일찍 출발하자던 어머니의 말씀을 듣지 않을 걸 후회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깜깜무소식이라 카운터에 가서 어느 정도를 더 기다려야 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어렵사리 구한 빈자리마저 잃을까 두려워 그럴 수 없었다. 아니 몸 상태가 영 메롱이라 자리에서 일어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집을 다섯 채쯤 짓고 부술 때쯤 겨우 마주할 수 있었던 의사는 간단한 질문 몇 가지를 던진 뒤 칼로릭 테스트(caloric test)*를 지시하는 것으로 진료를 마쳤다. 3시간을 기다린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5분 남짓. 같은 의료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에 공감하지만, 막상 환자가 되니 섭섭하기 그지없다.


칼로릭 테스트(caloric test) : 온도유발안진검사, 전정기능검사의 가장 기본이다.


내 뒤에 기다리고 있을 수많은 환자를 생각하며 검사실로 이동하여 테스트를 받았다. 그리고 30분 정도를 더 기다려 MRI 검사실로 이동했다. 검사실은 꽤 웅장했다. 별 이상이 있을 리가 없다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잔뜩 긴장한 채 기기에 누우니 방사선사가 다가왔다.



기계가 많이 시끄러우니까 귀마개 꼭 끼세요. MRA도 같이 찍으니까 좀 오래 걸릴 겁니다.
MRI 이거 하나 찍으려고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정말 기다리기 힘드네요.
환자 분은 그래도 운 좋은 편이에요. 이게 오늘 MRI 마지막 촬영이거든요. 조그만 좀 늦었어도 다음에 예약 잡고 오셔야 했을 걸요?



방사선사가 쥐어준 손때 묻은 귀마개. 수많은 사람들의 귓구멍을 거쳤을 것을 생각하니 영 찝찝했지만 그냥 귀에 꽂았다. 내가 어디 찬 밥 더운 밥 가릴 형편이던가. 그리고 그것은 이내 탁월한 선택이 되었다. 귀마개를 했는데도 굉장히 시끄러웠다. 소음 속에서 40분을 보내고 나오자 바로 대기실로 안내되었다. 이제는 판독결과를 기다리는 시간.


‘지겹다 진짜. 이제 좀 그만 기다리고 싶다. 도대체 몇 번을 기다리는 거야. 기다렸다가 의사 만나고, 기다렸다가 MRI 찍고, 기다렸다가 진료 받고. 오늘 하루만이니깐 참는다. 나중에 개원하게 되면 난 절대로 환자 오래 기다리게 안 할 거야.’


그렇게 10시간 같은 1시간을 기다려 만난 의사 선생님은 나와 부모님께 MRI 영상을 보여주었다. MRI 영상은 내 눈에도 참담했다. 짙은 회색을 보이는 우뇌와는 달리 좌뇌는 한없이 흰색에 가까웠고 좌우에 하나씩 있어야 할 뇌실이 우측에만 있었다. 심지어 좌뇌가 너무 부푼 나머지 우뇌를 밀고 있어 중심선까지 흐트러져 있는 상태였다. 아마 일반인이었어도 좌우의 심각한 불균형에서 무언가 좋지 않음을 느꼈으리라.



상태가 좀 심각하네요. 여기에 하얀 부분이 보이죠? 하얗게 보이는 것은 수분이 많다는 이야기인데, 수분이 많다는 건 부종을 의미하거든요. 좌우를 비교해보면 차이가 좀 있죠? 이러면 뇌압이라는 게 많이 올라가서, 굉장히 어지럽고 토하고 싶고 그랬을 겁니다. 맞나요?
네, 며칠 전에는 밤에 토하고 그랬었습니다.
이렇게 뇌가 붓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으니까 여기보다는 큰 병원 가서 더 자세한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네요. 환자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의학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큰 병원 가서 붓기 빼는 약 먹고 하면 다 될 겁니다.


설명을 마친 의사는 종합병원에게 보낼 진료의뢰서를 준비하며 어머니께 다시 물었다.


어느 병원으로 해드릴까요? K대병원은 여기에서 좀 멀고, Y대병원이랑 C대병원이 가깝네요. 어디 가고 싶으세요?



사람은 급하면 익숙한 것을 찾게 된다. C대병원은 익숙하다 못해 인연이 깊은 곳이었다. 어릴 적부터 병약했던 나는 툭하면 그 병원에 입원했고 그 곳에서 받은 수술만 두 차례였다.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나기를 거기에서 했으니 그것까지 합치면 총 3번. 심지어 천식 때문에 중학교 입학할 때까지 1주일에 한 번씩은 꼭 내원해야 했던 곳도 C대병원이었다. 그래서 한때는 나를 태어나게 하고 살아갈 수 있게 만든 의사선생님들 밑에서 배우는 모습을 상상하며 C대 의대에 원서를 낼까 고민도 잠시 했었다. 비록 가정형편도 걸리고 초등학생 때부터 꿈꿔온 한의사의 길을 포기하기 싫어 한의대에 진학했지만. 그래서일까? 난 C대병원에서 치료받고 싶었다. 어머니도 내 마음을 안 듯 C대병원을 선택하셨다.


시일이 흐른 후에 어머니께 그 당시 C대병원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에 대해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 천식 발작으로 Y대병원에 입원했다가 2차 감염되어 엄청 고생한 기억이 떠올라 거기는 피하고 싶으셨다고 했다. 그리고 외할머니도 아버지도 치료해준 병원이기에 나도 치료해줄 거라고 믿고 싶었다고.




(05 기다림의 시작 Ⅲ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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