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도착한 병실은 2인실이었다. 잠귀가 밝아 옆에서 누가 코를 골거나 부스럭거리면 힘들어 하는 나를 위한 배려로 보였다. 부모님은 여기를 신경외과 병동이라고 알려주었다.
‘수술이 있겠구나.’
바뀐 상황을 공보의 형들에게 재빨리 업데이트했다. 내가 응급실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걱정하던 형들은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병실로 한 달음에 달려왔다. 병원에 온지 만하루가 다 되어가건만 이렇다 할 설명 하나 없는 것이 형들에게도 답답하게 다가온 모양이었다. 위로도 하고 상황도 파악할 겸 바로 찾아왔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K신경과에서 받아온 MRI 영상이 담긴 CD를 보기 위해서는 컴퓨터가 필요했다. 그래서 집에서 급히 챙겨온 고물 노트북을 꺼냈는데 비밀번호가 걸려있었던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빌려준 적 없었기에 분명 범인은 가족 중 한 명일진대 온 가족이 모여 있어도 노트북은 끝끝내 침묵을 지켰다. 형들은 넓은 병원에 남아도는 컴퓨터 하나 없겠냐며 CD를 들고 호기롭게 길을 나섰지만 결국 실패였다. 너무 미안했다.
결국 이튿날이 되서야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병명은 뇌종양이며 양성/악성은 수술 때 떼어낸 조직으로 생검을 하여 진단한다고 했다. 수술 날짜는 다음 주 월요일로 결정되었다. 남은 시간은 앞으로 5일. 꼭 남의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실감이 나지 않는다.
‘뇌종양? 그렇구나... 에휴, 집에 가고 싶다.’
내가 입원한 C대병원은 3개의 관으로 되어 있으며 곧 암센터가 완공될 예정이었다. 예전의 구관은 라파엘관, 신관은 스텔라관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얼마 전에 새로 지은 건물은 데레사관이라 불렸다. 내가 입원한 곳은 그 중에서 지은 지 가장 오래된 라파엘관, 신경외과 ICU와 의국실이 같이 있는 6층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왼쪽 꺾은 뒤 가장 끝까지 걸어가면 왼편에 있는 652호가 나의 입원실이었다.
그 옆에는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위한 휠체어 보관소가 있었고 몇 발자국만 걸어 나가면 바깥으로 통하는 큰 문이 있었다. 문을 열면 비상용 계단과 침대용 엘리베이터가 있어 간호사들이나 전공의들이 자주 이용했다.
652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에는 벽이, 왼쪽에는 차례로 화장실과 침대 2개가 나란히 붙어있었으며 편의 시설이라고는 히터와 냉장고, TV가 전부였는데 모두 창가 쪽에 자리했다. 처음에는 깨끗한 흰 색이었을 거라 짐작되는 벽은 곳곳에 묻어있는 손때를 통해 세월이 흘렀음을 짐작케 했고, 오른 벽 한가운데에 달린 조그마한 십자고상의 예수님은 항상 환자들을 아련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자리는 창가가 아니라 복도 쪽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병실이 좁은 탓에 2인실 임에도 환자 1인당 제공되는 공간은 6인실과 별 차이가 없건만 먼저 병실을 쓰고 있던 아저씨는 텃세를 부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했다. 심지어 항상 그와 나 사이에 커튼을 쳐놓아서 햇빛도 TV도 볼 수 없었고, 냉장고도 송구스러워하며 이용해야 했다. 게다가 히터 스위치에는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오직 화장실이 가깝다는 것 이외에는 장점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자리였고 그마저도 화장실 갈 일이 잦은 그를 위해 간호사들은 밤에도 화장실 앞 조명을 켜둘 것을 부탁했다. 문제는 그 조명이 내 머리 위로 쏟아진다는 거였다. 불을 켜게 만든 장본인은 커튼으로 빛을 모두 가려버리고 코를 심하게 골며 자는 동안 정작 나는 안대의 불편함과 귀마개 너머로 들리는 코골이에 잠을 설쳐야 했다.
그럼에도 나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항의 한 번 하지 않았다. 불편하지 않아서도 참을성이 많아서도 아니었다. 단지 그가 무서워서였다. 혈액검사 자주 한다며 간호사에게 소리치고, 아내 병간호가 맘에 안 든다며 폭언하고 장인 장모에게 화내고, 병문안 온 부하직원에게 일처리가 왜 그 모양이냐며 신경질을 부리는 그가 무서웠다. 그의 심기를 거슬렀을 때 어떤 몽니를 부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 그저 참을 수밖에.
그렇게 나의 병원 생활은 시작되었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왔다. 간만에 만나는 대학동기와 동문선배, 가족보다 더 자주 보는 공보의 형들 등등. 빵을 좋아하는 나를 위한 케이크, 병원에서의 지루함을 달랠 책이나 인기 드라마를 담은 USB들도 함께 챙겨왔다. 참 고맙고 내가 잘못 살지는 않았구나 싶어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특히 어지러움의 강력한 지배하에 침대에 구속되어버린 나에게 있어 손님과 이야기 나누었던 시간은 무엇보다도 더 소중했다.
그러나 병실은 손님을 맞이하기에 너무 비좁았다. 그래서 살짝 꾀를 내어 중환자실 옆에 작은 온돌방 두 칸으로 된 보호자 대기실에서 만나는 민폐를 저질렀다. 찾아오는 사람마다 자기가 근무했던 병원을 이야기하며, 병실도 좁고 휴게 공간도 없는 구식 건물을 욕했다. 당장 옆의 데레사관만 하더라도 깔끔하다며 원래 신경외과는 같은 병원에서도 가장 후진 곳에 배정받는다고 이야기했다. 환자 상태가 급해서 병실 여건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있는 보호자가 없기 때문이라 했다. 딱 지금 나의 상황 같아 서글펐다.
수술을 앞둔 3일 전, 병문안 왔을 때 손을 한 번 써볼테니 잠깐 기다려보라던 지만이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병원에 각별히 신경써줄 것을 부탁했으니 마음 편히 쉬고 있으라는 이야기였다. 그 말은 곧 현실이 되었다. 수술할 때 집도의 말고도 다른 교수님 한 분이 더 참관할 것이라는 연락이 왔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대학병원 의사 한 명쯤은 알아두어야 된다는 말이 이런 것이었음을 확 와 닿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부탁은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또 한 명의 생명을 살리는 기적을 만들었다.
(07 잊혀진 시간 Ⅱ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