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더 나은 수술을 위해서, 극심한 뇌부종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스테로이드 주사가 하루에 4번 정도 투여되었다. 어느 누가 마약을 하면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 든다는 이야기를 했던가? 스테로이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깊은 굴속에 숨어버린 나를 바깥으로 꺼내기에 충분했다. 어두컴컴한 터널에서 잠시 나와 바라본 세상은 정말 눈부셨다. 조금만 머리를 움직여도 마치 뇌가 한 발짝 늦게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하는 어지러움이 찾아와 거동하기가 굉장히 불편했지만 스테로이드를 맞고 난 뒤 한두 시간 정도는 괜찮았다. 그때가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도 하고 잠시 산책도 하고 손님도 맞이했다.
당연하게 여겼던, 때론 귀찮다 느꼈던 앉고 일어서고 걷는 행동 하나하나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시간이었다. 역시 가치는 희소성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수술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자 형들은 아껴두고 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중환자실에 대개 1~2주 정도 있는 것이 기본이다.’
몰랐다. 수술 후 상태가 이상한 응급상황이 아니라면 중환자실에 갈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옆 침대 아저씨가 하루에도 수십 번을 중환자실에서 있었던 일주일이 살면서 제일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고 투덜거렸지만 그건 그냥 남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내가 중환자실에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이 있을 거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자 때늦은 의문이 생겼다.
‘아저씨는 왜 중환자실이 지옥 같았던 거지?’
‘일주일이라는 건 또 어떻게 알고?’
‘그래도 의식이 돌아오면 바로 병실로 오는 거 아니야?’
떨리는 마음으로 단체카톡방에 물었다.
동완 : 중환자실에 1~2주 있으면, 그때 의식은 있어요? 없어요?
승현 : 수술 경과에 따라 다른데 일반적으로 1주 정도는 의식이 없어. 항상 그렇다는 거는 또 아니고. 그리고 의식이 돌아온다고 해도 바로 나올 수는 없어. 바이탈이나 여러 증상들이 좀 안정되어야 나올 수 있다.
동완 : 와... 의식 있는 상태로 며칠 있으면 정말 지루하겠네요. 어쩐지 옆 침대 아저씨가 그리 지옥 같다고 하더라.
승현 : 거기 오래 있을 곳은 절대 아니지. 마룻바닥에 널 기다릴 부모님한테도 미안할 짓이다. 빨리 나와. 그리고 의식 있는 환자한테는 라디오 틀어준다. 20분마다 간호사가 와서 바이탈 체크하고 가니까 말 걸어봐, 심심하면.
그때 다른 형들이 놀리기 시작했다.
덕경 : 동완아.모르나본데 중환자실에선 의식 있어도 똥 싸는 건 기저귀야.간호사가 그거 갈아줌. 존나 쪽팔려.의식 없는 상태 환자면 간호사들이 간간히 뒷담화 깐다?‘똥 존나 싸 저 환자~’ 야 톡에서도 똥내 난다.
동완 : 헐... 그럼 오줌은요?
덕경 : 그거 폴리 꽂지. 졸라 아퍼. 그거 인턴이 꽂는다? 딴 병원은 모르겠는데 우리 병원은 여자는 간호사가 하고 남자는 짤 없이 인턴이 했어. 근데 남자가 아니라 여자 인턴 오면 좆 되는 거지.
좔 : 어? 니네 병동 인턴, 저번에 보니까 여자던데?김동완 망했네.
동완 : 아 똥망이다...
덕경 : 기저귀 갈 때도 동완이 존슨을 간호사들이 들었다 놨다. 글구 물티슈로 슥슥슥. 어휴 오늘은 많이도 쌌네... 만약에 그러다가 무의식 중에 거기가 벌떡 서기라도 한다면?
나기 : 어휴, 듣는 제가 다 부끄럽네요. 나는 절대로 중환자실 안 가야지.
미치겠다. 충격에 또 충격이 밀려온다. 기저귀에 똥 싼다니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진다. 나는 아마 같은 층에 있는 신경외과 전용 ICU* (Intensive Care Unit, 중환자실, 집중치료실) 에 들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똥기저귀 갈아준 간호사를 병동에서도 계속 마주쳐야 한다. 의식이 돌아왔을 때 얼굴 들고 간호사를 볼 자신이 없다. ‘이 간호사는 내 기저귀를 몇 번이나 갈았을까? 며칠이나 지난거지?’를 생각하는 내 모습이 절로 상상된다. 그렇다고 마냥 간호사가 올 때마다 자는 척할 수도 없는 노릇.
수술에 대한 공포에 떨고 있는 나를 위해 일부러 가벼운 분위기를 조성한 모양인데, 그 목적은 매우 성공적으로 달성되었다. 이제 수술 자체보다 당장 중환자실의 시간이 더 중요해졌다.
‘아 젠장. 중환자실에서 똥 안 싸는 방법 어디 없나?’
혼란스러운 마음에 갈피를 못 잡고 있는데 간호사가 들어왔다. 밤 12시부터 금식이라며 꼭 지켜줄 것을 당부하고 돌아갔다.
‘상관없다. 대변 때문이라도 어차피 오늘 저녁부터 굶으려고 했어.’
부모님께 저녁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계속 회고록을 써내려갔다. 남기고 싶은 말이 많아 1분 1초가 아깝던 차에 잘 된 셈. 오히려 글 쓰는 것에 집중하니 배고픔, 중환자실에서의 배변 문제, 수술에 대한 공포들이 잠시 뒤켠으로 밀려나기까지 했다.
한참을 쓰고 노트를 덮었다. 할 만큼 했다. 더 적고 싶은 게 많지만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것 같다. 수학에는 골드바흐의 추측을 비롯하여 풀리지 않은 수많은 난제들이 있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것은 해결된 지 20년 가까이 되어감에도 수많은 사람에게 회자되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가 아닐까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난 이 문제에 대한 진실로 경탄할 만한 증명을 찾았다.
하지만 여백이 좁아 이곳에 남기지 않겠다.
나는 이 한 마디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다만 이야기만큼 사람으로 하여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또 어디 있을까? 남은 사람들에게 그런 고통을 주고 싶지 않다. 내 가슴에 담아 두는 것이 최선이다. 영 아쉽다 싶으면 돌아와서 마저 적으면 된다. 그리고 여한 없이 다 적어버리면, 정말 떠날 것만 같아 하나쯤은 남겨두고 싶다.
(09 떠날 준비Ⅱ 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