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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Jul 26. 2017

사랑을 무소유로 승화시킨 길상사

서울특별시 성북구

               

삼각산 길상사


서울에 많은 사찰이 있지만 성북구의 길상사만큼이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곳은 없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존경하고 좋아하는 법정 스님이 계시던 곳이며, 이곳이 사찰이 아니라 요정으로 있을 당시 주인이었던 김영한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담겨 있는 곳입니다.


길상사 현판에서 삼각산이란 단어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삼각산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져 가는 지명이기 때문에 더욱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삼각산의 또 다른 명칭이 북한산입니다. 삼각산은 백운·인수·만경봉을 가지고 붙여진 지명이고 북한산은 고구려 때 서울을 북한산주라 부른 것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두 가지 이름이 같이 쓰였으나 1983년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사람들에게 삼각산이란 지명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사라져 가는 삼각산을 어떤 의미로 길상사 앞에 붙였는지 잠시 고민해보며 길상사에 들어갑니다.




길상사에 걸린 좋은 문구


길상사에 들어가면 곳곳에서 많은 문구들을 볼 수 있습니다. 불교계의 큰 스님이자 훌륭한 문인이셨던 법정 스님이 계시던 사찰이란 특색이 잘 드러납니다. 그렇기에 길상사는 풍경만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문구를 읽어보고 사색에 잠겨보는 시간을 필히 가져야 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길상사 내 쉼터


10~20대 시절 삶에 대한 고민을 할 때 법정 스님의 '무소유'란 책은 저에게 이정표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어린 왕자'와 더불어 '무소유'는 매번 읽을 때마다 다른 해석을 내려지며 제 자신을 반성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저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추천하거나 선물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특히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이해하기 쉬운 필체 속에서도 심오한 인생이 담겨 있습니다. 책은 친근하고 쉽게 삶의 지혜를 알려주지만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바람 그늘' 쉼터


'무소유'란 수필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법정스님이 소중하게 기르던 난을 밖에 내놓고 외출을 하게 됩니다. 외출 도중 뜨거운 태양 아래 난을 두고 왔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돌아갔지만 이미 난은 시들어 버립니다. 이미 시들해진 모습을 보며 미안함을 가지던 법정 스님이 순간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난에 집착하여 본인 스스로가 난의 소유물이 되었음을 인식하고 자유로움의 소중함과 더불어 무소유의 가치를 얻었음을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무소유'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공감도 하지 못했습니다. 대학교 시절에는 무소유의 삶을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욕심을 경계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무소유는 기억조차 못한 채, 누구보다 더 많은 삶의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법정 스님이 무소유를 평생 동안 실천을 통해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감탄하며 큰 스님이었음을 생각해봅니다.




쉼터


길상사에서는 쉼터가 참 많이 있습니다. 급하게 왔다 가지 말라고 쉼터를 많이 만들어놓은 것 같습니다. 길상사에서 자신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살아온 삶을 잠시 내려놓고 쉬다 가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법정 스님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뜻을 길상사 곳곳에 남겨놓은 것이 아닌가 짐작해봅니다.




법정 스님의 강연 내용


나무에 법정스님의 강연 내용이 걸려 있습니다. 문구를 읽으면서 나 자신을 바라봅니다. 부모님이 다른 사람의 아이를 칭찬할 때마다 힘들었던 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비교당할 때마다 '나는 절대 남과 비교하지 않을 거야'라고 되뇌었던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누군가와 자주 비교하며 말을 하는 저를 반성해봅니다.




돌에 새겨진 부처님


제가 좋아하는 법정 스님이 만든 사찰이기에 더욱 의미를 부여하는지 모르겠지만 돌에 새겨진 부처님을 보면서 역할과 조화를 생각해봅니다. 부처님의 형상을 만드느라 돌을 깨뜨리기보다는 돌 속에 부처님을 새겨놓았습니다. 이를 통해 종교가 삶 속에 녹아들어 가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법정스님이 종교를 위한 삶이 아니라 삶을 위한 종교를 지향했음을 읽어봅니다.


큰 부처님 밑으로 작은 돌들이 모여 지탱하는 모습에서 이 세상에 불필요하고 작은 역할이 없음을 배웁니다. 각자 맡고 있는 역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충실할 때 세상이 조화를 이루고 행복할 수 있다고 믿으며 부처님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기도를 올려봅니다.



관음보살상


관음보살을 보면서 길상사의 옛 주인이었던 김영한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길상사는 예전 3대 요정이라고 불리는 대원각이었습니다. 대원각의 주인으로 큰돈과 권력을 가질 수 있었던 사람이 바로 김영한이었습니다. 김영한은 15세에 결혼을 하였으나 남편이 일찍 죽으면서 어쩔 수 없이 '진향'이라는 이름으로 기생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영한은 시와 가무 등 모든 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당대 지식인들의 큰 사랑을 받는 기생으로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런 김영한의 삶에 큰 변화를 준 이가 나타났으니 바로 백석이라는 시인이었습니다. 백석은 김영한에게 '자야'라는 필명을 주며 서로 뜨거운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길상화 공덕비


백석은 시인이자 영어교사로서 사회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영한을 만난 이후로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의 비난이 일어나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과감히 버리게 됩니다. 교사라는 직장도 버렸으며 억지로 하게 되는 세 번의 결혼도 포기하게 됩니다. 세상 어떠한 것도 김영한보다 우선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백석은 김영한에게 만주로 같이 가서 둘만의 자유롭고 행복한 새로운 삶을 살자고 이야기합니다.




설법전


그러나 김영한은 백석을 따라 만주로 가는 것을 거부합니다. 개인적으로 백석과의 행복한 삶을 꿈꾸었지만, 자신에 의해 백석의 꿈이 좌절되고 가족들과 이별하고 힘들어 할 백석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 더 힘들었습니다. 백석은 그런 김영한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였을까요? 둘의 만남은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더이상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분단과 전쟁 속에서 백석은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했고, 김영한은 북으로 올라가지 못하면서 육체적으로는 헤어지게 되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영원히 지속되었습니다.




길상사 법고


김영한은 백석을 너무나 그리워했습니다. 그를 잊지 않고 평생을 백석과 함께 하기 위해 백석이 공부했던 영문학을 공부하여 1953년 중앙대 영문과를 졸업하게 됩니다. 영어를 배우기 위함보다는 백석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공부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후 글을 써서 책으로도 출간을 합니다. 백석이 영어교사와 시인이었던 점을 생각해보면 김영한은 그를 잊지 않기 위한 행동으로 설명이 됩니다.




송월각


김영한은 법정스님의 무소유에 깊은 감명을 받고 1987년 대원각을 시주하고자 하나 법정스님은 거절합니다. 7천여 평의 대지와 40여 동의 건축물로 이루어진 대원각은 당시 1000억 원이 넘는 가치로 무소유를 이야기하던 법정스님에겐 큰 부담이었을 겁니다. 김영한에게도 주변 사람들은 기부를 만류했다고 합니다. 세인들에게 1000억 원이라는 가치는 누구도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기에 당연하겠죠. 이때 김영한이 한 말이 유명하죠. '1000억 원은 그 사람의 시 한 줄 만도 못하다.'


대원각은 백석을 잊고자 열심히 일한 대가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거였던 것입니다.




길상 선원


김영한은 백석과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무소유를 선택했고, 법정스님의 거절에도 포기하지 않고 설득을 한 결과 1997년 대원각은 길상사로 다시 태어납니다. 김영한과 백석의 사랑이 집념과 집착에서 승화되어 자유로워지는 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길상사가 창건하는 날 김영한은 염주와 '길상화'라는 법명을 받게 됩니다. 모든 것을 비우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게 된 김영환은 1999년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사랑만을 남겨둔 채 육신마저도 화장되어 길상사 뒤뜰에 뿌려졌습니다.



스님들의 거처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여 실천한 김영한의 뜻을 새기며 이곳에 거처하는 스님들은 오늘도 온갖 번뇌를 버리며 수행에 전진하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길상사를 방문하여 무소유를 되뇌며 김영한이 사랑을 무소유로 승화시킨 내용을 되새기며 잠시 동안 의자에 앉아봅니다.





스님들의 거처


푸르른 나무에 둘러싸여 있으며 그 속에 있는 작은 문을 드나들 때마다 고개를 숙이며 겸손해질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주는 스님들의 거처는 길상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였습니다.


복잡한 도심 속에서 길상사는 쉽게 만날 수 없는 휴식처입니다. 그 속에서도 이곳은 속세와 거리를 둔 비밀스럽고 감추어진 보물 같았습니다.





길상사 대나무 숲과 계단


길상사는 많은 것을 함축하여 담아내고 있습니다. 어느 곳을 보아도 아름다운 풍경이 가득합니다. 풍경을 바라보다 문득 이곳이 요정이었을 당시를 상상해봅니다. 그리고 그 속에 김영한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분의 표정을 상상해봅니다. 마음속에 불타고 있는 사랑을 감추고 웃음과 행복을 주어야 하는 기생으로서의 숙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았을지 그려보지만 선뜻 그려지지 않습니다. 저 스스로에게 어려운 숙제를 부과해버린 느낌입니다.




낮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쉼터


길상사에는 작은 쉼터가 참으로 많습니다. 이 쉼터의 경우도 많은 사람이 쉬도록 되어있지 않습니다. 홀로 앉아 잠시 삶을 떠나 쉬거나, 둘이서 작게 대화를 나누며 오붓한 시간을 나눌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낮은 담장을 통해서 혼자만의 세상에 너무 빠지지 않도록 경계합니다. 둘이 있을 때는 주위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주변을 살피도록 해줍니다.


멀리서 보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가와 가슴을 따뜻하게 만듭니다.





길상사 내 작은 폭포


분명 도심 속의 사찰인데 이곳에서 우리나라 산천을 다 만납니다. 더불어 법정스님도 만나고 김영한과 백석의 숭고한 사랑도 만나보며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길상사에는 좀 더 깊은 사색을 할 수 있도록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침묵의 집


바로 침묵의 집입니다. 누구든 침묵의 집에 들어가 자유롭게 사색을 즐기면 됩니다. 절을 하면서 복잡한 생각을 잊어도 되고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명상을 해도 됩니다. 이곳에는 아무도 없기에 자신만의 시간을 편하게 가지면 됩니다. 저도 이곳에 앉아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내 삶을 되돌아보며 한참을 앉아있으려고 했는데 금방 다른 생각이 나면서 조바심이 생깁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하고 시계를 들여다보니 시간이 참 더디게 흘러갔습니다.  늘 명상하며 살아가는 스님들이 얼마나 힘들지 생각해봅니다. '참 쉬운 일이 하나도 없고, 익숙하게 하고 있는 지금 일이 제일 쉬울 수도 있구나'하며 침묵의 집을 나섭니다. 나서기 전 방명록에 글을 남기기 위해 펜을 드는 순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보입니다. 짧은 문구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진실과 소망이 담겨있음을 느껴봅니다. 그리고 김영한과 백석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떠올립니다.



길상사 연못


법정스님이 2010년 이곳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조그만 일찍 길상사를 방문했다면 법정스님을 직접 뵙고 좋은 말씀도 들어봤을 텐데 지금은 그분의 발자취만 따라가 봅니다. 법정스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무소유를 통해 사랑을 승화시킨 숭고한 사랑도 만나게 됩니다. 나 자신도 만나게 됩니다. 길상사를 통해 많은 것을 만나고 돌아오면서 다시 한번 '무소유'를 읽어보리라 다짐하는 나를 만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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