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정호 Jul 20. 2017

샛강 생태공원으로 바라본 여의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 샛강다리


여의도 샛강다리는 기존의 한강 다리와는 다르게 곡선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직선으로만 이루어져 효율성만을 강조한 일반적인 다리와는 달리 보행자들이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걸을 수 있도록 되었습니다. 샛강다리는 자전거도 타고 다닐 수 없이 오로지 도보를 통해서만 여의도에 들어가거나 나올 수 있습니다.



여의도 샛강다리


여의도 건너편에서 40여 년 동안 샛강을 바라보며 자라온 저에게 샛강은 아련한 회색빛의 단편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던 어린 시절 겨울이 되면 샛강은 늘 얼어있었습니다. 얼어붙은 샛강 한쪽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스케이트를 대여하고 있었고, 어린아이부터 어른들까지 그 옆에서 신나게 얼음을 제쳤습니다. 그 당시 얼마를 주고 스케이트를 대여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케이트를 배우고 얼음 위를 미끄러졌던 장소가 샛강이었습니다.




샛강다리에서 바라본 올림픽도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던 80년대 후반에는 샛강이 늪지로 변해가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방과 후 샛강에 놀러 가서 동경하던  '톰 소여의 모험' 속 주인공이 되어 샛강 탐사를 했습니다. 나만이 아는 장소를 하나 둘 늘려가면서 작은 아지트를 만들고 다음날은 좀 더 멀리 샛강 여행을 떠났습니다. 운이 좋으면 버려진 배를 발견하기도 하면서 친구들과 해가 지는지도 모르고 놀았습니다. 서울에서 살았지만 샛강 덕분에 거머리에 피도 빨려보고, 잠자리와 물고기를 잡는 등 농어촌의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물론 샛강에서 신나게 논 증거로 여기저기 진흙이 묻어 더럽혀진 신발과 옷을 입고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가 회초리를 들고 저를 집에서 쫓아냈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그렇게 자주 놀러 가던 샛강에서  나쁜 형들을 만나 고생도 고,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자연스레 잊힌 것 같습니다.




샛강 생태 공원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샛강에 쓰레기가 쌓여가면서 악취와 벌레가 들끓는 곳으로 변해간 것이 진짜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잊어졌던 샛강이 2000년대 들어와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다시 되돌아왔습니다. 도심 속의 살아있는 생태공원으로 말입니다.




샛강 생태공원 습지



현재 샛강 생태공원은 여의교에서 서울교까지 1.2km 구간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생태공원에는 버드나무 군락지와 연못 여러 개가 조성되어 있어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쉽게 수생식물과 많은 조류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생태공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포장된 도로가 아니라 흙길로 조성되어있습니다. 서울에서 흙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풀풀 날리는 흙먼지의 냄새를 맡을 수 있고, 비가 오면 빗물과 함께 올라오는 흙냄새를 가까이서 마음껏 맡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생태공원의 흙길이 좋습니다.




억새숲


샛강 생태공원에는 억새풀도 조성되어 있어 흙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많은 새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억새풀 속에는 많은 아기새들이 있어 다른 곳보다도 유난히 새들이 시끄럽게 지저귑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들의 곁에 너무 가까이 오면 조용해집니다. 자신들이 이곳에 없었음을 정적을 통해 알려주며 인간과의 거리를 유지합니다. 동물과 사람의 공존 거리를 알려주지만 인간에게는 호기심이 있어 억새숲을 들어가 새를 꼭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새를 찾지 못하고 애꿎은 억새에게 화풀이를 하고는 다른 곳으로 가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샛강 습지


오늘날 여의도는 대한민국의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이자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의도가 과거에도 이렇게 중요한 장소로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여의도가 선조들에게 어떤 곳이었는지 적어봅니다.




생태공원에서 바라본 여의도 타워팰리스


여의도는 한강 하구의 퇴적물이 쌓이는 위치에 있어서 예로부터 모래섬으로 불리던 곳입니다. 모래섬이다 보니 농사를 짓기에는 적합하지도 않았고 홍수가 일어나면 섬의 많은 부분이 물에 잠겨서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여의도 면적이 크지도 않았기에 거주하는 주민도 많지 않았습니다. 서울을 바로 앞에 두고도 버려진 땅이 여의도였던 것입니다.(조선시대 서울은 사대문 안으로 현재 대부분의 서울은 경기도에 속해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의도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대부분 천민으로 양이나 염소를 방목하여 키우며 살아가는 지역이었습니다.




여의도 방면에서 흘러나오는 하천


조선 시대 여의도는 나의주, 양화도라 불리었습니다. 지명 이름이 '너벌섬'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는 여의도 섬이 쓸모없어서 누가 가져도 관심이 없다는 뜻에서 너의 섬, 나의 섬이라 불린 것입니다. 그것을 한자로 변환하여 여의도라 부르다가 1946년 여의도로 지명이 확정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쓸모없는 땅이었는지 이곳에 부임하는 관리들에게 여의도는 작은 유배지와 같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도성과 가깝지만 섬에 갇혀 목장이나 관리해야 했던 관료들을 따라 가족들이 오려하지 않았기에 여의도에 살고 있던 천민 여성과 정을 붙이며 무료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관료 임기가 끝나고 여의도를 벗어날 때 간혹 여의도에서 얻은 첩을 데리고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따라 나온 여성들 대부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버림을 받고 객지에서 힘든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샛강에 유입되는 하천


여의도가 버려진 땅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섬으로 바뀌게 되는 계기가 만들어진 것은 일제 강점기 시절 비행기가 이륙할 수 있는 비행장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1916~58년까지 여의도 비행장은 선망의 대상이었던 비행기를 마음껏 볼 수 있었던 장소였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안창남이 1922년 비행기를 몰고 국내에 들어왔을 때 5만여 명의 군중들이 모여들어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애국심을 고취시켜던 장소가 바로 여의도입니다.





자전거길


김포공항이 만들어지면서 여의도 비행장은 없어졌지만 여의도의 가치는 점점 높아졌습니다. 밤섬을 폭파하면서 나온 돌덩이와 모래를 여의도에 쌓으면서 여의도의 면적이 넓어지고 높아지게 됩니다. 1975년에는 국회의사당이 여의도에 건립되면서 대한민국의 정치 중심지가 되며 KBS, MBC 등 방송사들도 여의도에 둥지를 틀면서 여의도는 과거의 버려진 작은 섬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중심지가 됩니다.




억새, 하천 그리고 샛강다리


1983년 여의도는 만남을 상징하는 곳이 됩니다. KBS가 이산가족 찾기 특별생방송을 하면서 전국 이산가족들이 잃어버린 가족을 찾기 위해 여의도로 몰려왔습니다. 이산가족을 통해 6.25 전쟁이 남긴 상처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슬퍼했으며, 상봉하는 가족을 보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서로의 아픔을 치유하는 공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산가족 찾기는 기네스북에 생방송 최장시간이라는 신기록을 남겨놓았고, 이 방송을 통해 세계 많은 국가들이 전쟁의 아픔을 느끼고 평화의 소중함을 같이 공유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여의도를 넘어 역사적, 세계사적으로 큰 족적을 남기는 장소가 됩니다.




다리에서 바라본 샛강


1985년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63 빌딩이 여의도에 들어서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가보고 싶은 랜드마크가 들어서게 됩니다. 그 당시 농어촌에 있던 살던 학생들은 서울에 수학여행을 와서 이곳을 꼭 방문하고 사진을 찍어갔습니다. 초등학생이던 저는 이 건물의 높이와 구조를 설명하는 책받침을 사용했습니다. 지금도 가을이 되면 63 빌딩 앞에서 불꽃 축제를 즐기며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얼마 전 마포대교를 건너는동안 지는 태양빛을 맞아 황금색으로 되돌려주는 63 빌딩을 봤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라는 타이틀은 아주 오래전 내려놓았지만 우리들 마음속에는 아직도 63 빌딩은 여의도를 넘어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기억합니다.


억새풀로 가득한 샛강 생태공원



여의도는 빠르게 성장했고 지금은 늙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방송사들이 여의도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금융권도 많이 이전했습니다. 과거의 활기는 없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생각을 합니다. 여의도는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경제성장이라는 슬로건으로 90년대까지 여의도를 보았다면 문화강국이라는 슬로건에 맞게 변화되어 젊어지는 여의도를 봅니다. 높은 빌딩 외에는 볼 것이 없던 여의도에 벚꽃길과 생태공원 등 자연친화적인 모습으로 변화되는 여의도를 보는 것은 또 하나의 즐거움입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주말에 여의도 생태공원을 한 번 가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이야기가  풍성한 서울성곽 1코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