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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Dec 05. 2017

알면 역사, 모르면 낯부끄러움

강원도 삼척시

  

해신당 공원 입구

동해안에 하나밖에 없는 19금 공원을 아십니까? 19금이지만 모든 연령대가 함께 산책하고 관람할 수 있는 해신당 공원이 삼척에 있습니다. 제주도 성박물관은 들어 봤지만 강원도 삼척에도 19금 공원이 있다는 사실은 제 호기심을 발동시켰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블로그를 통해 검색을 해보니 어린이들도 입장할 수 있어 수위가 높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친구네 가족과 입장 관련 논의를 했습니다. 미취학 아들 둘을 가지고 있는 친구는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는 딸이 있는 우리 집은 성이라는 주제가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친구 놈과 저는 19금 공원을 가보고 싶은 호기심이 너무 컸습니다. 가족과 함께 갈 수 있는 이 기회가 아니면 떳떳하게 방문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여행코스를 전적으로 맡고 있는 입장에서 아내들이 깊은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대강 설명한 후 바로 출발을 했습니다.


친구와 저는 장호항에서 멀지 않은 해신당 공원을 내비게이션 목적지로 설정하고 각기 출발했습니다. 해신당 공원에 도착했지만 친구네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걸어보니 친구도 도착했다고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서로 의아해하며 서로의 위치를 확인해보니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우왕좌왕하다 해신당 입구가 산 정상과 아래 해안가 두 군데 있음을 알고 산 정상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가족들이 산을 올라가는 것보다 아래로 내려가는 편이 수월할 것이라는 판단 했는데, 나중에 아빠들만 차를 가지러 다시 산을 올라가야 한다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해신단 곳곳에 있는 남근석 작품

해신당공원 입장료를 구매하고 공원으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저를 포함한 일행 8명은 순간 얼굴이 굳어지며 멈칫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각보다 19금 수위가 높았습니다. 서로가 어떻게 이 상황을 모면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상황 속에서 친구네 어린 두 아들만이 신나게 뛰어다니며 즐기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유일하게 선글라스를 쓰고 있던 저는 그나마 여유가 있었지만, 걱정되는 것은 중학생으로 사춘기에 접어든 큰 딸이었습니다. 남근석으로 가득 찬 이곳을 두 딸들에게 설명할 방법을 찾는다고 찾은 것이 이건 작품이다라는 궁색한 변명이었습니다. 친구 놈도 제 딸들이 의식되는지 어색하게 큰 소리로 동조하는 모습이 웃기기도 했지만 천군만마를 얻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남근석에 대한 거부감은 점차 사라지며 아이들은 서로 손을 잡고 뛰어다니고, 친구네 부부와도 일상 대화를 나누며 공원을 걸었습니다.







남근석을 주제로 한 작품

삼척 지방에는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 처녀의 억울한 죽음을 풀어주기 위해 무속행위가 이루어졌다는 애랑 전설을 기반으로 조성된 해신당 공원에는 다양한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보는 남근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지도 못한 기발하고 참신한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남근석을 표현하는 예술 작품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지'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창의력을 기반으로 만든 작품들을 보면서 손재주가 있다고 예술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작품들도 대단했지만 작품명도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릅니다. 사실 많은 작품들을 올리고 싶지만 남근석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 차마 올리지 못하고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보관해 두었습니다. 하드디스크에 보관은 했지만 해신당 공원을 다녀온 이후로 글을 쓰는 지금 외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보면 오해할까 봐 조심하고 있습니다.


공원에서 청소년을 둔 가족들을 여럿 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집 부모와 자녀들의 표정들을 살펴보니 우리 가족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이 비슷비슷했습니다. 어딘가 어색함이 느껴지면서도 가족들 간의 어색함을 무마하기 위해 의미 없는 제스처를 취하는 모습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이 다들 비슷하구나 싶습니다.





신윤복의 '춘화도'를 작품으로 재현

해신당 공원 내에 전통가옥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강원도의 전통 가옥의 형태를 보여주는가 싶어 다가가 보니 신윤복의 '춘화도' 작품을 조형물로 만들어놓고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 영조 때 태어나 활약했던 신윤복은 3대 풍속화가로 남녀 간에 사랑을 그리는 춘화도를 많이 그렸습니다. 해신당 공원이 남녀의 사랑을 주제로 조성된 만큼 신윤복의 춘화도를 가지고 재현해 놓은 의도는 알겠는데 작품이 영 부실했습니다. 신윤복의 춘화도를 재현했다고 안내문은 세워져 있지만 읽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읽는다 한들 아무런 감흥이 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복제된 그림을 놓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잘 만들어놓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다른 나라의 남근석

춘화도를 재현한 전통 가옥 밑으로는 세계 각국의 남근석 숭배 신앙을 표현한 작품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는 남근석을 숭상하는 문화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사람들마다 생각하고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큰 관점에서 본다면 거기서 거기일 것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식을 생산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남근은 자손을 낳아 종족을 보존하고 번성하려는 상징물로 사용되었습니다. 남근을 상징하는 조형물은 최대한 크고 과장되게 표현하여 더 많은 자손을 낳고자 하는 신념을 담으면서 신앙의 형태를 지니게 됩니다. 과거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제일 중요했던 요소가 노동력이었던 만큼 남근석은 자손을 번영시키는 것을 넘어서 풍요를 상징하며 현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신앙이 되기도 합니다. 해신당 공원이 있게 한 애바위 전설도 물고기를 많이 잡아 풍요로운 삶을 살고자 한 선조들의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삼척 어촌민속전시관 입구


삼척에 내려오는 애바위 전설을 따라가 보면 그 옛 날 결혼을 약속한 사랑하는 두 남녀가 있었다고 합니다. 두 남녀는 하루라도 빨리 혼인하여 같이 살기 위해 바다에 나가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살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처녀는 애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애랑은 사랑하는 남자가 이른 아침에 배를 몰고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면 함께 승선해서 바다 건너 작은 바위섬에서 내렸습니다. 바위섬에 내린 애랑이는 인근 해초를 걷어 바위섬에 널어놓으면, 남자는 오는 길에 애랑이와 해초를 배에 실어 뭍으로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위섬에 혼자 있던 애랑이는 높은 풍랑에 휩쓸려 바다에 빠져 죽는 사고가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 열심히 던 애랑이 불의의 사고로 죽은 이후, 인근 바다에 물고기들이 자취를 감추어 버립니다.


어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어민들은 물고기가 사라졌지만 바다에 나가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매일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그물을 던졌지만 언제나 빈 그물만 올라왔습니다. 마을의 혈기왕성한 한 젊은 어부가 빈 그물만을 끌어올리자 화를 참지 못하고 바지를 내려 오줌을 바다에 갈겨버리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바다에 던진 그물에는 물고기가 가득 잡혀 만선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물고기를 못 잡게 된 것이 결혼을 하지 못하고 죽은 애랑의 원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근을 보고 화가 누그러진 애랑이를 위해 정월대보름만 되면 남근을 만들어 제사를 올렸습니다. 죽은 애랑은 남근석을 정성껏 만들어 제사를 지내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얼어붙었던 마음이 풀렸는지, 바다에는 다시 물고기가 돌아왔습니다. 그 이후 바다에 나가면 늘 만선으로 돌아온 어민들은 지금까지 애랑이를 위해 제를 올리며 풍어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애랑이를 위한 굿판을 재현한 모습

전설의 내용이 재미있지 않나요? 예전에는 전설이 삶의 형태로 녹아들어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애랑 전설도 무속신앙으로 변하여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풍어와 안전에 대한 욕구를 해소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옛 것이 사라지고 있는 오늘날은 전설과 함께 많은 무속행위가 무관심 속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삼척 어촌민속전시관에 애랑을 위한 무속신앙이 인형으로 재현되어 있는 모습에서 안타까움과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은 고정되지 않고 변화되어 움직이는 거라지만, 선조들의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 중요 의식과 가치관이 사라져 버려 기억하지 못하는 풍토가 매정하기만 합니다. 아마도 수십 년 뒤에는 많은 전통과 의식들의 맥이 끊겨버리는 현상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사라질지 모르겠습니다.





삼척 어촌민속전시관 실내

어촌민속전시관에는 옛 어촌의 모습부터 현재 어업 전반적인 것을 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더불어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다니는 작은 수족관에는 어린아이들이 호기심을 보이며 몰려들기도 했습니다. 전시관 지하에는 세계 남근석 문화도 엿볼 수 있는 공간이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성을 유희로 즐기는 동물은 인간과 침팬지 정도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을 문화로 발전시켜 삶에 반영시키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습니다. 성을 억압했던 조선 시대에도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던 우리나라의 성문화 외에도 다른 국가들의 성과 관련된 문화를 어떻게 만들고 발전시켰는지를 보여주는 전시관은 저에게 매우 흥미로왔습니다. 다른 일행에게는 어떠했는지는 모르지만 저에게는 어촌민속전시관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내용은 알차게 구성되어 있는 재미있는 여행코스였습니다.





어촌민속전시관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해바다

어촌민속전시관에는 전망대가 있어 푸른 동해를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장호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해신당 공원에서 바라보는 동해는 바닷속까지 보일 정도로 투명했습니다. 짙푸른 녹음의 숲과 기암 그리고 옥빛을 띄는 동해를 보면서 장호항에서의 스노클링이 떠올랐습니다. 몇 년 사이에 장호항 스노클링이 유명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사진으로 접한 장호항의 멋진 전경을 보고 저도 가보았지만, 많이 실망스러웠습니다. 많은 인파들이 모여들면서 본래의 자연이 가진 매력이 감쇄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해신당 공원과 마주한 동해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으면서 오염되지 않은 경관과 함께 한적한 어촌의 모습도 같이 볼 수 있습니다.





바다 너머로 보이는 애바위

어촌민속전시관을 나와 애랑이를 모시고 있는 사당으로 가는 길에 애랑이가 해초를 바위에 널다 높은 파도에 휩쓸려 죽었던 애바위를 볼 수 있습니다. 안내판에 애바위 전설이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으며, 애바위를 관찰할 수 있도록 전망경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동전을 넣어야 볼 수 있는 전망경과 달리 자유롭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전망경으로 애바위에 초점을 맞추다가 애바위에 사람이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먼 애바위까지 누가 배를 타고 갔는지 그곳에서 한 손을 위로 치켜들고 있었습니다. 낚시꾼이 조난당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 저는 신고를 할 목적으로 전망경으로 초점을 다시 맞추어 애바위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자세힌 관찰해보니 실제 사람이 아니라 애랑이가 손을 흔들며 도와달라고 외치는 조형물이었습니다. 허탈하면서도 다행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서 전설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삼척이 최근 관광지로 발전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혹시 해신당 공원을 방문한다면 꼭 애바위를 전망경으로 바라보는 추천합니다.





애랑을 모셔놓은 사당

애바위를 뒤로 하고 애랑을 모셔놓은 해신당을 가는 길목에서 둘째 딸의 말에 웃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딸이 오래 걸어 힘이 드는데 난간을 잡고 걸을 수가 없다는 투덜거렸습니다. 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재차 물어보며 난간을 기대서 쉬라고 했습니다. 난간을 잡고 쉬라는 말에 난색을 취하는 딸 뒤로 난간을 바라보니 기둥 전체가 남근석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저의 말에 어쩔 줄 몰라하는 딸을 보니 귀여움이 느껴져 저절로 웃음이 지어졌습니다. 귀여운 딸과 눈여겨보지 않았던 남근석을 보면서 추억도 남기고 애바위의 조형물처럼 디테일을 신경 쓴 부분에 또 놀라기도 했습니다.


해신당 안에는 애랑을 그린 그림과 함께 남근석이 굴비 엮어놓 듯 걸려 있었습니다. 남근석을 굴비처럼 엮은 모습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습니다. 그러면서 실제 과거에도 남근석을 굴비 엮듯이 해놓았는지 아니면 오늘날의 창조물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남근석을 생선처럼 묶어놓은 어촌이라는 특수성을 반영된 사당 내의 모습을 통해 삼척을 대표하는 관광 상품으로 애바위 전설이 가치가 있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여행 일정인 삼척 박물관에서 애랑이를 만나자 일행 모두는 원래부터 애랑 전설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모두 아는 것을 토해내며 자랑하기 바빴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애랑이를 알게 된 아이들도 박물관에서 애랑이를 보자, 아는 척하는 모습 속에서 글로 배우는 것보다 실제 경험하고 체험하는 학습이 더 효과적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7월 초의 장호항 바닷물이 차가워 스노클링을 하지 못한 경험을 한 우리들은 해신당 공원 앞바다에서 물길질을 하는 해녀가 얼마나 힘들게 일을 하는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힘든 환경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할머니 해녀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찌 보면 낯부끄러운 애랑 전설을 통해 풍어를 꿈꿨던 선조들과 힘든 물길질을 하는 해녀, 그리고 아이들이 변화되는 모습에 기뻐하는 많은 부모들을 통해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자신의 삶보다는 자손을 귀중하게 여기며 희생을 달게 감수하는 부모들에게서 인간은 이기적으로 태어나 이타적인 삶으로 변화되어 간다는 사실을 배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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