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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Dec 14. 2017

다시 가고픈 전주비빔밥 축제

전라북도 전주시

한지박물관의 전경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던 초기에는 번잡함이 싫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축제는 피했습니다.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에서 천천히 걸으며 여유를 즐기고, 주변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전주비빔밥 축제를 다녀온 이후 여행 코스를 계획할 때 축제를 여행 항목으로 고려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실망스러운 축제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사람살이의 내음과 함께 그 지역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축제를 이제는 좋아합니다.


전주는 맛있는 먹거리가 유명하여 식도락 여행으로 2013년 전주비빔밥 축제 때 방문했습니다. 저의 여행 스타일 데로 새벽에 출발하여 전주에 도착하니 채 8시가 되지 않았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 떠난 여행이지만,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체험시키고자 하는 목적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전주 여행 첫 번째 코스는 한지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는 한지박물관으로 정했습니다. 한지박물관에 도착해서 아침을 먹으려 했지만, 이른 시간이라 식당들이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편의점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침으로 사발면과 삼각김밥을 먹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점심에는 맛난 거 사줄게'라고 연신 변명을 하고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종이를 생산하고 있는 전주 페이퍼

한지박물관은 전주페이퍼 공장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입장료는 없지만 한지에 대한 알찬 정보와 함께 종이를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어 아이들에게 매우 유익한 공간이었습니다. 박물관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으나 촬영 금지로 기록을 남기지 못한 아쉬움은 남았지만, 한지에 대해 많은 것을 공부할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그리고, 생각의 전환도 이루어졌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로 '무구정광대다라니경'만 외웠을 뿐 인쇄물이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여름에 습도가 높고, 겨울에는 건조해서 종이를 보관하기에는 최악의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한지의 우수성 때문이라는 것을 박물관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의 한지는 천년을 간다고 해서 아시아에서는 가장 으뜸으로 여겼음도 알았습니다. 또한 한지가 중국의 漢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韓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선 시대 기술을 천시하는 풍조 속에서 한지를 만드는 기술은 후대에 전해지지 않아 한 때 사장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한지를 다시 생산하기 시작했고, 한지와는 다르지만 근대의 종이를 생산하는 기업들이 전주에 터를 잡았습니다. 현재도 전주페이퍼 등 종이를 만드는 기업들이 선전하면서 선조들의 일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과거 한솔제지였던 전주페이퍼 기업에서 45년 동안 생산한 종이가 2천만 톤이 넘는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게만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종이를 만드는 기술이 발전하여 역사에서 다시 사장되는 일이 없기를 기원해봅니다.





생소했던 완판본 문화관

한지박물관을 뒤로하고 전주 한옥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있는 완판본 문화관을 방문했습니다. 완판본 문화관을 방문하면서 전주는 맛있는 음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책과 관련된 유물과 자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 전주에 서포(출판사)가 많이 위치하면서 많은 책을 발간했는데, 완판본이란 전주에서 발간한 옛 책과 판본을 이야기합니다. 과거 전주 사대문을 중심으로 다가서포, 문명서관, 양책방, 칠서방 등 다양한 서포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서포마다 발간하는 책도 전문적이어서 다가서포는 삼국지와 구운몽을, 문명서관은 통감류를 그리고, 칠서방은 사서삼경을 주로 출간했습니다. 이처럼 서포가 많을 수 있던 것은 전주에 식자 계층이 넓게 분포되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훗날 일제강점기 시절 뜻이 있는 많은 양반들이 우리의 문화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 교동으로 모여들면서 전주 한옥마을이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서책을 설명해주는 용어

서책이라는 것에 크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완판본 문화관을 방문하면서 배운 것이 한국의 서책을 구별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한중일이  서책을 만드는 방법이 달라 모양이 같지 않았 것이 신선하고 놀랍기만 했습니다.


책의 겉표지만 보고 한국의 서책을 선별하는 방법이 이렇게 쉬운 줄 몰랐습니다. 위 사진을 보면 붉은색으로 표시된 부분에서 책을 묶는 가로줄로 철장이라고 합니다. 중국과 일본은 4, 6 침식 철장법을 사용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5침식 철장법을 사용했습니다. 설명이 어렵다면 고서적을 볼 때 가로줄이 5개면 한국에서 만든 서책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문화관에서 서책 구분법을 배운 이후로 한동안 박물관에만 가면 서책들의 철장만 바라만 보고 있는 저를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옛 풍경이 살아있는 전주

서울은 과거의 옛 모습을 잃어버리고 고층 건물들로 가득 채워지는 미래형 도시라면 전주는 과거와 공존하는 도시였습니다. 전주비빔밥 축제장소로 가는 도중 70~80년대의 건축물이 아직도 살아 숨 쉬며 사람들을 맞이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중 이발소는 옛 향수를 자극하며 감상에 빠지게 했습니다. 만화책을 사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어린 시절 자유롭게 만화책을 볼 수 있는 곳은 이발소가 유일했습니다. 엄마에게 이발비를 받으면 이발소가 가장 붐빌 시간에 맞추어 갔습니다. 아이큐 점프 같이 두꺼웠던 만화책을 다 보기 위해서는 최대한 이발하기 위해 온 사람들의 대기줄이 길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시간을 맞추어 가도 월간 만화잡지 한 권을 다 보기란 쉽지가 않았습니다. 저와 같은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보고 싶은 만화책을 얼마 읽지 못한 채 이발소 아저씨가 부르는 소리에 일어나야 했습니다. 의자에 앉아 앞에 보이는 거울 얼마 전까지 내가 보던 만화책을 잽싸게 들고 가는 아이들을 원망 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머리를 깎아야만 했습니다.


이 외에도 목덜미에 난 잔털을 제거할 때 움츠리다 살짝 베인 들, 또래보다 키가 작아서 이발용 의자 위에 얹혀놓은 나무판자에 앉으면서 '나는 언제쯤 푹신한 의자에 앉을 수 있을까' 속상해하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머리를 감겨주던 털보 아저씨의 짓궂은 장난으로 이발소에 안 가겠다고 울던 시절도 있었는데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 중년의 나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발소를 모르는 딸들에게 저의 어린 시절을 들려주는 추억의 공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이발소를 가서 얼굴에 크림을 바르고 면도를 받아보고 싶은 생각을 지금도 가끔씩 합니다.






자신만의 색채를 가진 가게

전주 한옥마을 주변의 가게들은 일률 단편적인 모습을 가지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개성이 뚜렷한 아름다운 한글로 만들어진 상호명과 화려한 색으로 맞추어놓은 가게들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쇼핑을 즐기지 않는 저도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가게와 소품을 구경하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지역이 활성화된 지역을 가보면 오랫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오며 손수 하나하나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서 자신만의 삶을 투영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서울의 북촌이나 서촌 같은 지역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면, 지역 발전에 이바지했던 가게들은 건물주의 높은 임대료와 대형 브랜드의 막강한 자본력에 쫓겨납니다. 오히려 명소로 이름을 알려지면 현지인들이 상처만 입고 내쫓기는 현상이 전주에서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전주 한옥마을 입구

전주 한옥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정말 수많은 인파들로 북적였습니다. 한옥으로 만들어진 상점에서는 고풍스러운 멋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팔거나 지역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전주 한옥마을로 들어가면서 보였던 모습과는 달리 중심지는 상업적인 냄새가 많이 났습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전주 한옥마을은 자신들만의 특색을 보존하면서 다양한 구경거리를 만들어 볼거리가 풍부했습니다. 그리고 거리에 쓰레기가 없어 매우 깔끔했습니다.


전주 한옥마을 안에 있는 한옥 숙박 시설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겉으로는 전통한옥의 모습이지만 실내는 리모델링하여 현대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전통가옥의 특성상 작은 방이었지만 하룻밤을 묵어가는 데 있어 하나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작은 공간에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한옥마을을 밤늦게까지 구경을 해도 부담이 없었습니다.


전주 한옥마을이 조성된 시기를 따져보면 다른 지역의 한옥마을보다는 역사가 짧습니다. 그러나 한옥마을이 조성된 이유와 과정을 생각해보면 그 가치는 매우 높습니다. 구한 말 일제는 우리 민족의 생활터를 조금씩 잠식하다가 국권을 상실한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한국인을 내쫓았습니다. 새로운 도로 즉 신작로를 만들면서 일본인들이 중요 지역을 장악하게 됩니다. 신작로에 대한 아무 정보가 없던 한국인들은 자연스레 주변으로 밀려나면서 상권이 몰락하고 경제권을 일본인들에게 넘겨주어야 했습니다. 전주도 이러한 일제의 침탈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전주성 서문 쪽에 자리를 잡던 일본인들이 상권을 장악하고 위세를 떨치자 뜻이 있는 전주 사람들은 교동 쪽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1930년대부터 일본 가옥에 맞서 전통 기와집으로 한국인만의 마을을 만들며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지켜왔습니다. 특히 전주 한옥마을 옆으로 전주 이씨의 시조와 이성계의 어진을 보관하고 있는 경기전이 있어 흡사 조선을 지키려는 민족의 방파제가 아닌가 상상하게 됩니다.






한지로 만든 아름다운 전등

13년도 비빔밥축제에서는 스탬프를 다 찍으면 사은품을 주는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행사 취지는 한옥마을의 곳곳을 둘러보며 관광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었지만, 기념품 한정수량이란 단어는 우리를 미치듯 뛰어다니게 했습니다. 티브이에서 인기가 높았던 런닝맨을 즐겨보던 아이들이 미션 수행이라는 독특한 체험을 마주하자 마치 런닝맨의 주인공이 된 듯 매우 재미있어했습니다. 천천히 구경하고자 하는 제 마음과는 달리 아이들에 이끌려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스탬프 도장을 받기 위해서는 때때로 질문에 답을 해야 하거나 증표를 찾아야 습니다. 예를 들어 오방색을 나열하며 각각의 색깔을 가진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대답하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정답을 몰라 검색을 하고 건물을 돌아다니며 힘들게 찾아야 했습니다. 오방색에 해당하는 물건을 어렵게 찾으면 기쁜 나머지 아이들에게 큰 목소리로 알려주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정답을 외치는 제 큰 소리에 아이들은 화난 얼굴로 다가오며 조용히 하라며 얼마나 타박을 하는지 모릅니다. 이런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사은품으로 열쇠고리를 받고 나서야 천천히 한옥마을을 구경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스탬프 투어 덕분에 전주 한옥마을의 완판본 문학관, 부채 전시장 등 작은 박물관들을 둘러볼 수 있어 훌륭한 축제 아이디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주비빔밥 축제 하이라이트

한옥마을을 천천히 구경하다가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비빔밥 경연대회를 구경하러 갔습니다. 중앙 무대에서는 춤과 노래로 흥겨움을 만들어내며 많은 사람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었습니다. 축제는 흥겨운 공연 이후 전주의 지역 대표들이 거리에서 비빔밥을 즉석에서 만든 후 관람객들에게 무료를 나누어주는 것으로 행사는 막을 내립니다.


지역의 대표들이 준비해온 비빔밥 재료가 조금씩 다른 것을 확인한 저는 모두 맛보고 싶은 욕구가 끓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비빔밥을 맛보기 위해서 부지런히 뛰어다닐 생각하자 공연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비빔밥을 나누어주는 순간 사람들의 어깨싸움에 밀리지 않으며 가족들의 수만큼 열심히 받아왔건만, 여러 군것질로 배를 채운 가족들은 한 숟가락씩만 먹고 남겨버립니다. 힘들게 받아온 것을 알아주지 않는 가족들이 조금은 야속하기도 했지만, 남은 비빔밥도 문제였습니다. 비빔밥을 버릴 수도 없어 4인분을 배속에 집어넣는 내내 욕심을 부린 모습에 반성을 했습니다. 그래도 후회는 잠시일 뿐, 맛있어 보이는 음식만 보면 식탐이 발동하여 배부름은 잊어버리고 또다시 입속으로 음식을 흡입하기 바빴습니다. 이런 모습 가족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다 맛있어 보이는지 어느새 음식을 나누어 같이 먹곤 했습니다.


전주비빔밥축제를 평가하라면 너무 맛있는 음식과 끊임없이 펼쳐지는 다양한 공연으로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또한 작은 박물관들을 돌아다니며 소소한 재미를 얻는 즐거움도 좋았습니다. 전주에서의 1박 2일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족들에게 많은 추억을 남긴 재미있는 여행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좀 더 크면 다양한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남겨준 축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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