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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Dec 18. 2017

전통과 술을 만드는 산사원

경기도 포천시

              

포천에 위치한 산사원 입구

포천에는 배상면주라는 기업에서 운영하고 있는 술박물관 산사원이 있습니다. 산사원을 방문하면서 기업의 홍보관으로 사용하는 매장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산사원은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다양한 술을 구경하며 간단한 시음을 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산사 정원이나 술항아리 등 볼거리도 다양했습니다. 술자리는 좋아하지만 술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도 산사원은 충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산사원은 기업의 홍보관이라는 이미지보다는 전통주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한 인물의 삶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전통주에 대해 알 수 있었던 공간이었습니다.





배상면주를 창업한 배상면

위 사진 속 주인공이 배상면주를 창업한 배상면입니다. 술에 관심이 없는 저만 몰랐을 뿐 배상면주라는 기업이 생산한 유명한 술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배상면주를 대표하는 기린 소주, 국순당, 백세주는 성인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거나 드셔 보셨을 주류들입니다. 배상면이 만든 술이라는 뜻을 가진 배상면주가 창업된 목적이 돈만 벌기 위함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전통주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면서 전통주를 만드는 환경은 열악해져 갔습니다. 수천 년간 이어져왔던 비법을 가지고 전통주를 만드는 사람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다른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처럼 전통주가 사라져 가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끼던 배상면은 전통주를 개발하고 보급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나라를 되찾는 일은 다양한 방면에서 이루어졌는데 배상면이란 분은 전통주를 살리기 위한 독립운동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통주의 종류만 2000가지가 넘는다는 것을 라디오에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배상면은 전통주를 유지하면서도 더 나은 술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노트에 기록해두었습니다. 그리고 노트에 적어둔 주요 기록들을 벽에 붙여놓으며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던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기업에서 창업주를 강조하고 좋게 포장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우리의 전통주를 어려운 악조건 속에서도 수많은 실패를 이겨내며 포기하지

았다는 점이 자랑스러웠습니다.





배상면 기념관의 실내 모습

배상면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전통주를 살리고 보급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전통주에 대한 인식은 점점 나빠져만 갔습니다. 1960~80년대 서민들이 즐겨먹던 막걸리 생산을 늘리기 위해 주류업체들이 화학첨가물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화학첨가물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인 줄 모르고 막걸리를 먹으면 유난히 머리가 아프며 뒤끝이 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습니다.


또한 서양에 대한 사대주의 의식으로 인해 양주는 고급술로 여기고 우리의 전통주는 맛이 없을 뿐 아니라 없이 사는 사람들이 먹는 술로 여기게 된 것도 한몫을 차지합니다. 그런 인식에 맞서 전통주를 명품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평생을 살았다는 점에서 배상면이라는 분이 대단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뜻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기념관을 만든 자녀도 훌륭하다고 봅니다.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배경에는 선조나 스승에 대한 자부심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특정 주류회사를 광고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처럼 가업을 몇 대가 이어가며 명품과 명작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풍토가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배상면주에서 생산된 주류 판매

산사원을 방문할 때 어린이들은 입장료가 없지만, 성인에게는 2000원을 받습니다. 2000원을 입장료로 지불하면 조그마한 술과 잔을 줍니다. 작은 술병과 잔이 너무 앙증맞아서 귀여운 캐릭터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대만족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셔서 장식장에 술을 모아두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산사원을 오면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저도 산사원을 다녀간 이후 여기서 구입한 술병을 모아 집 작은 선반에 한동안 진열하기도 했습니다. 일률적으로 같은 모양의 술병이 아니라 다양한 모양의 술병은 마치 고급 와인병처럼 귀티가 흘렀습니다. 이런 평가조차 잣대를 서양에 둔 잘못된 생각이지만 비교할 잣대가 마땅치 않습니다.




무료로 시음할 수 있는 공간

산사원 입장료를 내고 받은 잔은 이곳에서 무료 시음하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산사원에는 배상면주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술을 시음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술을 잘 하지 못하는 저로서도 다양한 술의 향을 맡으며 조금씩 맛을 보는 특혜는 즐거웠습니다. 마치 소믈리에가 된 것처럼 향을 맡고 맛을 음미하며 나름 평가도 내리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얼마 뒤 관광버스에서 내린 중년의 아저씨와 아줌마들이 들어오는 순간 분위 급변해버렸습니다. 우르르 몰려오는 일행 중에는 이미 어느 정도 얼큰하게 취하신 분들도 여럿 보였습니다. 시음코너에 준비된 술을  마구 마시며 큰 소리로 떠들거나, 아예 술병을 들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여 술을 따라 마시는 모습은 눈길을 찌푸리게 만들었습니다. 자녀와 함께 있던 저희로서는 어른들의 무질서하고 막무가내적인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인 것 같아 부끄럽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한지 직원들은 화도 내지 않고 웃으면서 술병은 가져가지 말고 드시라고 설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산사원의 친절한 직원들 모습을 보며 불쾌함이 가득했던 저의 얼굴은 조금씩 펴질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주안상 차림

산사원은 술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이 가득한 박물관이기도 합니다. 우르르 밀려왔던 일행들이 나간 이후 다시 평온을 되찾은 산사원을 천천히 돌아보며 관람을 했습니다. 관람을 하면서 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주안상이 거기서 거기라 생각했던 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술과 계절의 궁합에 맞추어 주안상에 오르는 음식은 달랐습니다. 전시되어 있는 여러 주안상을 보면서 훗날 나이가 들면 친구와 작은 주안상에 마주 앉아, 지나간 옛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해보았습니다. 치열한 삶에서 벗어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술 한잔을 목으로 탁 털어 넘길 수 있는 노년을 기대해봅니다.


박물관에는 이 외에도 전국의 다양한 전통주들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다양한 전통주들을 바라보며 우리의 소중한 것을 홀대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도 하게 됩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산사원은 꼭 와볼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저도 술을 마시면서 풍류를 즐기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즐거우니 말입니다.





쉽게 알려주는 술 빚는 과정

2층으로 올라가면 빙글빙글 돌아가며 술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전달해주는 재미난 모형이 있습니다. 빽빽한 글씨로만 술 빚는 과정을 설명했다면 재미도 없고 이해하기 어려워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좋아하는 인형들로 설명을 재현하고 있어 쉽게 이해하면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술을 만드는 과정을 보니 첫 번째 순서가 마음을 가다듬어 잡스러운 것들이 꼬이지 않도록 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 이후 재료를 준비하고 누룩을 딛는 것으로 1단계가 끝이 납니다. 그 이후 술을 담그고 발효하기를 기다리는 시간을 갖습니다. 술이 다 발효되면 소주를 내린 이후 탁주를 거릅니다. 그 이후는 주안상을 차리고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며 잔을 기울이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이제는 집에서 술을 내리는 않고 대중화된 소주와 맥주를 사서 마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집에서  약주를 만드는 경우는 있어도 탁주를 만드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술을 만드는 과정이 생소하고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2층 박물관을 구경하다가 문득 어린 시절 부모님이  술을 담가 아랫목에서 발효시키던 기억을 떠올랐습니다. 술 담그는 모습을 처음 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름과 동시에 부모님 세대의 려운 시절이 아련하게 다가왔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던 시절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무엇이든 직접 만들며 살았던 부모님에 비해 현재의 나는 언제든 필요한 물건을 쉽게 구입하며 편안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식들을 위해 쉽고 편한 삶을 기꺼이 내려놓은 부모님이 보고 싶은 순간이었습니다.





술 = 풍류

사람들에게 술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먹고살아야 하는 일상생활 속에서 술은 필수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귀한 물건일 것입니다. 부모님에게 술은 어떤 의미를 지녔기에 집에서 술을 담가 드셨는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나에게 술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지 생각해보니 세월에 따라 달랐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술은 어른이 되는 길이였습니다. 어른들처럼 술을 마시는 것은 또래에게 선망의 대상이었고, 성인이 되는 통과의례였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술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주선해주며 유지시켜주는 도구였습니다. 평상시에 하지 못하던 말들도 술자리에서는 술술 풀렸습니다. 그리고 힘이 들 때 술은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는 못했지만, 술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큰 힘이 됐습니다.


그러나 산사원에 적혀있는 글을 읽어보니 우리 선조들에게 술은 고차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가 봅니다.


현대의 술과 다리 건조한 지성을 극복하는 감성 해방구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전통술을 마시면서 삶의 굴레를 벗어나 궁극적으로 자연과 영적인 존재와 하나 되고자 했습니다.
전통술은 음료가 아닌 우리 조상들의 풍류문화에서 뗄 수 없는 신성한 음식입니다.
술을 통하여 놀이와 예술로서 소통하고 세상사의 모순을 극복하며 통합과 초월의 세상을 이루는 풍류문화,
그것의 핵심에 전통술이 있습니다.





딸과 만든 작은 눈사람

산사원 박물관을 나와 야외로 나오자 딸들은 우리 속에 갇혔다 탈출한 강아지들마냥 뛰어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 눈을 밟으며 돌아다니는 애들을 보며 아무 관심도 없는 박물관에 가두어놓은 것 같아 미안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어울려 눈싸움을 하며 신나게 놀았습니다. 눈싸움 이후 정원으로 가는 길목에서 둘째 딸과 작은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눈사람을 만드는 딸의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습니다. 그리고 둘째가 만든 눈사람도 딸을 닮아 앙증맞고 귀여웠습니다. 저는 눈사람 하면 연탄재에 눈을 묻혀서 사람처럼 크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눈사람 만들자고 하면 큰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고생해야 한다는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핑계를 대기 바빴습니다. 작은 눈사람을 보며 정작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르고 키우고 있다는 반성을 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500여 개의 항아리로 채워진 세월랑

박물관을 나와서 아이들과 놀다 보니 날이 어두워지면서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산사 정원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어두워지는 풍경에 깜짝 놀라 다급히 아이들의 손을 잡고 산사 정원으로 향했습니다. 좀 전까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놀아주지 못했음을 반성하던 나의 모습은 금세 사라지고 내가 원하는 데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카메라에 잘 담지 못할 것을 잘 알면서도 아이들을 집사람에게 맡겨둔 채 산사 정원을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며 연신 카메라 버튼을 눌렀습니다. 사람은 이기적인 존재이며, 순자가 말한 것처럼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며 애써 핑계를 돼봅니다.


산사 정원에서 500여 개의 술항아리로 채워진 곳이 세월랑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1년 동안 술을 숙성시키는 장소입니다. 엄청난 크기의 항아리들이 많이 모여 있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저 항아리에 술이 가득 담겨있으면 장정 몇 명이 달려들어도 쉽게 옮기지 못할 텐데 어떻게 2차 숙성 장소로 옮기는지도 궁금했습니다. 특히 독을 씻고 소독하기 위해 저 항아리 속에 사람이 들어가야 하는 것을 고려하면 술을 만드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 일임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부안에서 옮겨온 창고

부안당은 전라남도 부안의 만석꾼 집에서 사용하던 창고를 옮겨온 것입니다. 만석꾼의 좋은 기를 이어받아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경주 최부자댁의 창고도 그러하듯 부안당의 실제 크기는 생각보다 작습니다. 만석을 쌓아 올릴 공간으로 보이지 않아 보입니다. 곳간이 작은데 만석을 다 집어넣을 수 있까만 생각하다 문득 저의 어리석음에 기가 찼습니다. 쌀을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했을 생각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아직까지 분산투자를 할 많은 재물을 가져보지 못한 저의 경험인 것 같습니다. 부자들을 여럿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은 재산을 분산 관리하며 어떻게 하면 수익을 높일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을 봤습니다. 반면 저의 경우는 분산 투자할 만큼 돈을 가진 것이 아니라서, 여유가 있으면 통장 하나에 돈 넣어두기 바쁩니다. 한 곳에 전 재산을 모와 두다 보니 생각의 폭이 넓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니면, 재물을 나누지 않고 혼자 독식하고자 하는 욕심에 시야가 좁아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안당을 먼 거리에서 옮겨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리나라 전통가옥의 건축방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가옥은 쇠로 만든 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 홈을 파서 껴맞추는 조립식 건축물입니다. 즉, 언제든지 건물을 해체하고 옮겨 재조립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무와 쇠는 상극으로 서로를 해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오랜 세월을 함께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선조들은 집을 지을 때 후손들까지도 사용할 수 있도록 상극의 재료를 쓰지 않았습니다. 또한 자손들이 용도에 맞게 고쳐살 수 있도록 조립식으로 짓는 것에서 선조들의 혜안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부안당을 이곳에 옮겨온 이유도 번영과 상생, 그리고 혜안을 얻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산사 정원의 우곡루

산사 정원 제일 안쪽에 위치한 건물은 우곡루라 부릅니다. 우곡루는 산사 정원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핵심이 되는 곳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우곡루 1층 둥근 대문 위에 다주현이라 쓰인 현판은 배상면주 초장기에 역삼동에서 운영했던 주점에 걸어둔 것이라고 합니다. 전통이란 이런 모습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과거에서 전통을 찾는 것도 좋지만, 지금부터 전통을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우곡루 2층에 올라가면 술과 음식을 펼쳐놓을 수 있는 탁자들이 여러 있습니다. 이곳에 앉아 산사 정원을 내려다보니 경주 포석정을 따라 만든 유상곡수가 보입니다. 유상곡수에 흐르는 물을 따라가 보니 취성각 앞에 위치한 못이 나옵니다. 박물관에서 보았던 풍류와 관련된 문구가 떠오릅니다. 머릿속에 문구를 떠올리며 풍류를 즐기려는 순간 저 멀리서 집으로 가자며 손짓하는 가족들이 보입니다. 가족들이 나를 부르는 모습에 풍류는 사라지고 어느새 종종걸음으로 뛰어가는 저의 모습만 남아있을 뿐이었습니다.





취성각에서 바라본 정취

산사 정원을 나오면서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면서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우곡루와 운악산 주변을 옅은 운무가 뒤덮고 있는 풍취를 통해 한국의 미를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좋았지만 제대로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진 속 풍경을 보면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의 술보다는 전통주가 잘 어울리지 않는가 싶습니다.


산사원을 방문할 때 기업적 홍보관이 아닐까 생각했던 우려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오히려, 전통을 지켜나가려고 하는 모습을 엿봤습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으로 많은 전통이 끊기면서 옛 것에 대한 갈구만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옛 향수갇힌 채 현재의 가치를 간과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전통이란 보존만이 아니라 계승과 발전이라는 단어가 함께 들어가 있음을 산사원을 통해 배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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