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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Dec 01. 2017

충주 세계무술축제에는 무술만 있지 않다.

충청북도 충주시

                  

충주를 상징하는 택견 조형물

아마 제 또래의 남자들은 어린 시절 티브이에서 이소룡과 성룡의 영화가 방영되면 며칠 동안 동네 공터에 모여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어설픈 쿵후를 흉내 내곤 했습니다. 남들보다 왜소했던 저는 남들보다 고수가 되고자 하는 꿈이 컸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무술 도장을 다니지 못한 저는 용돈을 모은 뒤 헌책방으로 달려가 당랑권 책을 샀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혼자 무술 수련을 하여 고수가 되고 싶었지만 사진으로만 나와있는 책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 며칠 만에 꿈을 접어야 했던 추억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일까 아직도 무술은 할 줄 모르지만 무술 고수가 되고자 하는 동경은 갖고 있습니다. 격투기처럼 우람한 근육을 가진 선수들이 경기를 하는 것보다 영화의 고수처럼 평범한 외모를 가진 주인공이 자신보다 더 우람한 사람을 순식간에 바닥에 눕혀버리는  무술 영화와 같은 현실을 꿈꿉니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이종격투기를 시청하는 것보다 각국의 무술을 소개하거나 비교하는 동영상을 자주 감탄하곤 합니다. 당랑권 책을 사서 연습하던 어린 시절이 30년 전인데 아직도 가슴속 어딘가에 꿈이 남아있는지 가끔씩 덩치들을 쓰러뜨리는 장면을 상상하며 희열을 느끼고 있습니다.





소망등으로 만들어진 터널

어느 날 인터넷에서 충주 세계무술축제를 알리는 광고를 보면서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기존의 여행에서 접하지 못했던 무술이라는 주제가 색다른 체험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습니다. 그래서 2015년 8월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계곡과 바다가 아닌 충주로 출발했습니다. 토요일 근무를 하고 출발하다 보니 충주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해가 기울어져 주변이 어둑 컴컴해져 있었습니다. 너무 늦게 도착한 것은 아닌지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밤에도 많은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축제가 벌어지는 장소에는 많은 인파들로 북적이며 축제의 열기가 가득했습니다. 특히 충주 mbc어린이 합창단의 귀여운 춤과 노래를 보고 있자니 아빠의 미소가 저절로 지어집니다. 그 외에도 재미있고 흥겨웠던 뮤지컬 '영웅의 노래'와 조명으로 빛을 내는 조롱박 축제도 멋있어서 가족들과 연신 사진을 찍으며 축제를 즐겼습니다.





먹거리와 볼거리가 풍부했던 야시장

1998년부터 시작되어 충주를 대표하게 된 세계무술축제에는 정말 많은 인파들이 모여서 왁자지껄했습니다. 사람들이 공연을 보고 박수를 치며 빛의 축제를 즐기느라 여기저기 분주하게 다니는 세계무술축제는 여타의 축제보다 흥겹고 즐거움이 가득했습니다. 축제장에서 무엇보다 제일 좋았던 것은 야시장이었습니다. 야시장의 규모가 매우 커서 디스코 팡팡 같은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새벽 1시가 지나있었습니다. 아이들도 늦은 시간의 야시장이 재미있는지 보채지도 않고 여기저기 구경하며 놀기에 바빴습니다. 결국 아이들보다 먼저 지쳐버린 저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 갖은 감언이설로 꼬신 다음에야 충주 시내의 찜질방으로 이동하여 잠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무술박물관

찜질방에서 잠을 자고 샤워를 한 후 다시 찾은 세계무술축제는 어젯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밤새 어지러이 돌아다니던 많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아이들과 손을 잡고 체험을 하는 가족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화려한 밤의 축제였던 어제와는 다른 차분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연히 어제 저녁에 축제장에 도착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무술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무술이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라 어떤 자료들을 소장하고 구성했을지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세계 각국의 무술 사진

박물관에 들어서며 역동적이면서도 대륙별로 대표적인 무술을 보여주는 사진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맨 위에 자리한 택견의 모습은 강렬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대한민국의 무술 하면 태권도를 떠올리지만 수천 년간 한국인의 심신을 단련시키며 국난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 준 무술은 택견입니다.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 했던 택견이 보급되지 않고 맥이 끊길 뻔한 것을 신한승이라는 분이 1973년 충주에 택견전수관을 세우면서 후대에 계승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점차 택견을 접하고 배우는 사람들도 늘어나며 전국적으로 보급되고 있습니다. 


충주는 택견을 중심으로 전통무예를 지키고 보급하는 지역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세계 무술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메카로 거듭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세계무술연맹 본부를 충주에 두고 있을 뿐 아니라  매해마다 많은 국가와 무술단체들이 참여하는 세계무술축제를 개최하여 국내 세계의 무술을 알리고, 세계에는 한국의 무술을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박물관 내부

박물관은 전체적으로 규모에 비해 내용이 빈약했으며, 사진과 설명을 적어놓은 패널 위주로 전시가 되어 흥미 유발을 일으키는데 부족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또한 무술 분류가 잘 되어있지 않았으며, 택견에 대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 다른 국가의 무술은 맛보기에 그치는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래도 무술이라는 특정 주제를 가지고 활성화시키려 한다는 점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보통 지역축제를 가보면 다른 축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포맷으로 운영되어 특별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충주는 타 축제와는 달리 무술이라는 색다른 주제로 축제가 열리며, 무술박물관과 공원이 조성된 것은 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세계적으로도 무술을 지역 축제로 발전시키며 자국의 무술을 지켜가려는 모습은 보기 힘든 소중한 움직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충주 세계무술축제가 시간이 지나면서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해봅니다.






택견의 중심이 되는 12가지 동작

무술박물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택견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후대에 전승되던 전통 무술입니다. 부여의 영고나 고구려의 동맹과 같은 제천행사가 있으면 선조들은 택견을 겨루며 흥을 돋웠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무용총 벽화에서도 택견을 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어 택견은 일상생활 속에서 선조들과 언제 어디서나 함께 했음을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택견을 수박 또는 수박희라고 부르며 임금 앞에서 시합을 열기도 했으며, 조선시대에는 무과 시험의 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했습니다. 선조들에게 있어 택견을 익히는 것은 출세를 위한 방편이 되면서도 단오 같은 명절날 흥겨움을 이끌어내는 일상생활의 유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시절 택견을 통해 한국인들이 심신을 단련시키며,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는 것이 못마땅한 일제는 택견을 일절 금지시켜버립니다. 일본보다 강인한 정신을 지니고 체격이 더 컸던 한국인들은 35년간 식민지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수천 년 동안 한국의 정신을 계승하고 뛰어난 체력을 키웠던 택견은 일제에게 매우 위험한 무술이며 전통문화였을 것입니다. 다행히 일제의 눈을 피해 전국 곳곳에 택견의 명맥을 지켜온 분들이 계셨습니다.





택견을 하는 신한승 모형

택견의 명맥을 이어오신 분 중에 송덕기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수많은 택견 시합을 보고 경기를 치르면서 익힌 것을 일제의 눈을 피해 정리하고 체계화시켰습니다. 독립 후 1958년 이승만 대통령 생일날 택견 시범을 보이면서 택견을 다시 세상에 내보이며 송덕기 선생의 이름도 전국적으로 알리게 됩니다. 택견을 다시 세상에 내놓은 송덕기 선생에게 신한승이라는 젊은이가 찾아와 택견을 익히게 됩니다.


신한승은 어렸을 적부터 작은할아버지 집에서 열리는 택견 시합을 보고 자라면서 무예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많은 무술을 익히던 신한승은 오늘날 경희대학교의 전신인 신흥대학 체육과에 입학하여 레슬링을 익히고 졸업 후에는 유도를 하는 등 여러 무술을 익혔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 전통 무예인 택견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전국의 택견 고수들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배우다가 1970년 송덕기 선생을 만나면서 택견을 집대성하게 됩니다. 그 이후 충주에서 택견을 전수하고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그 결과 지금은 전국적으로 보급이 되어 택견을 익히는 과정이 대학 학점으로 인정되는 등 발전하고 있습니다. 일제에 의해 우리의 전통 무예들이 사장되어 가던 시절 우리의 전통 무술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송덕기, 신한승 두 분은 위대한 독립운동가이며 민족의 영웅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무술인 씨름과 활쏘기

택견 외에도 국난 때마다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 무술로 씨름과 활쏘기 그리고, 돌을 던져 승패를 가리는 석전이 있습니다. 각 무술을 보면 우리의 환경과 현실에 맞게 발전했음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한중일을 비교해보면 넓은 평야를 가진 중국은 많은 적을 상대하기 위해 창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관우나 장비가 사용하던 무기가 창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반면 섬으로 이루어진 일본은 배에 올라가 싸우는 경우가 많아 주로 짧은 칼을 가지고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의 무사인 사무라이를 생각하면 먼저 칼을 떠올리게 됩니다.


한국은 중국•일본과 다른 무기체계와 무술이 발달했습니다. 평소에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살던 선조들은 특별한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침략을 받을 때마다 가족과 마을을 지키기 위해 맨손을 사용하는 무술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기가 없는 상황에서 적이 칼이나 창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몸을 잡아 넘어뜨리는 씨름이나 택견이 이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가장 효과적인 방어는 적이 가까이 오기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돌과 산이 많은 우리의 산천을 이용하여 적이 오면 산으로 올라가 돌을 던지거나 활을 쏘아 쫓아버리는 석전과 활쏘기가 발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의 뛰어난 무장은 주로 활을 잘 다루는 것으로 묘사가 됩니다. 예를 들어 고구려를 개국한 고주몽이나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는 명궁이라 전해지고 있습니다.





따라 해보는 무술체험관

박물관을 둘러보다 보니 무술 체험관이 있었습니다. 남들이 보고 있으면 잘하던 것도 늘 실수하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저는 앞에 나서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하고 꺼려합니다. 그런데 마침 아무도 없어서 무술체험 버튼을 누르고 따라 해 봤습니다. 택견의 동작을 따라 하는 것이라 큰 기대를 했는데 표시되는 지점에 손만 뻗으면 되는 시시한 게임이어서 실망이 컸습니다. 다른 장소는 거울을 보면서 택견 동작을 따라 하도록 되어있어 택견 동작을 취했보면서도 누가 무술체험관에 들어올까 봐 뒤를 자꾸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남의 시선을 덜 의식할 줄 알았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네요.







물놀이 존 이벤트

무술박물관을 나오니 어느새 무더운 날씨가 되어 조금만 있어도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습니다. 아이들은 무더위에 쉽게 지쳐버려 연신 아이스크림과 물을 찾으며 축축 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체험 부스장에서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게임을 통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물놀이장에 보내 고 그늘에 앉아 태권도 공연을 관람하니 아이들도 좋고 저도 편안해졌습니다.

그러나 부모란 아이들을 무대에 내보낼 기회만 있으면 밀어 넣기 바쁜 존재인 것 같습니다. 저는 앞에 나서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면서 훌라후프 대회가 열리자 딸들을 부추겨서 결국 무대 위로 올려 보냈습니다. 하기 싫으면서도 혹시 일등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올라간 큰 딸은 곧 후회를 하고 표정이 어두워지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합니다. 시간이 흘러 사진을 보다 보면 아이들이 어리니까 가능했던 행복한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 만약 딸들에게 무대에 나가라고 하면 아마도 잔소리를 한 바가지 듣지 않을까 싶습니다.






출발 드림팀을 따라한 체험장.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을 때 메인 무대에서 진행되는 태권도 시범을 보러 갔습니다. 무더운 야외에서 진행되기도 했지만 관람석 중앙은 태권도 시범을 하러 온 학생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태권도 시범을 제대로 보기 어려웠습니다. 진행도 더디게 진행되면서 자연스레 관심도가 낮아져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에게 가보니 다른 체험을 하고 싶어 하는 눈치를 보입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출발드림팀을 연상시키는 체험장으로 갔습니다. 많은 아버지들이 도전을 외치며 도전하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물속으로 떨어져 버리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성공하는 모습보다는 밑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두 딸도 저에게 해보라고 등을 떠밀었지만 다행히도 손가락을 다쳤다는 핑계로 도전을 외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싫다고 해도 반강제로 무대에 올라가도록 떠밀면서 정작 저는 남들 앞에 나설 용기 없어 핑계를 대는 부끄러운 아빠였습니다. 그래도 마음속으로 '다행이다'를 먼저 외치는 소심한 남자가 변치 않는 바로 저입니다.







군악대와 한국 전통무예 공연

어린이용 드림팀 체험장은 사회자 진행에 맞추어 등을 선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습니다. 큰 딸이 고학년으로 주변 또래보다 우세를 점하는 가운데 등을 사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 그만 살이 쓸려버리면서 화상을 입었습니다. 힘차게 응원을 하며 빠르게 달리라고 소리친 나의 잘못으로 다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치료를 받고 나서도 우는 딸에게 괜찮다고 위로를 건네며 맛있는 음식으로 달래고자 매점으로 향하던 중 군악대의 연주에 맞추어 전통무예를 선보이는 공연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제가 축제에서 보고 싶었던 무술 시연에 얼굴 한 가득 미소를 담고 시연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보냈습니다. 어떤 무술인지정확히 모르지만 아마도 정조 때 저술된 무예도보통지를 재현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외국인과 춤을 추는 무술 사범

그러나 정작 인상이 깊었던 것은 무술 사범과 외국인이 함께 춤을 추장면이었습니다. 무술 시연이 끝나고 군악대 연주에 맞추어 이동하던 무술 사범단 중 한 분이 외국인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그들에게 달려갔습니다. 외국인들의 춤을 따라 무술 사범이 조금 늦은 박자로 춤을 추자 외국인들이 무술 사범과 눈을 맞추며 천천히 춤을 알려주며 하나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무술 공연에 박수를 보내던 외국인들이 이제는 반대로 자국의 춤을 알려주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저를 비롯한 모든 관람객들이 손바닥으로 박자를 맞추며 응원하는 모습에서 흥겨움과 훈훈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보여주기만 하는 축제, 돈을 내야 체험할 수 있는 축제가 아닌, 이런 모습이 제대로 된 축제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실제로 세계무술축제에서 판매되는 음식의 가격이나 체험비는 정직하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잔디밭에 나들이 온 가족들과 외국인 노동자

충주에서 열린 세계무술축제를 보고 나오면서 너른 잔디밭 그늘에 가족들이 돗자리를 펴놓고 음식을 드시는 분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일요일을 맞아 외국인 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하는 모습도 습니다. 우리보다 피부색이 어두운 외국인들을 비하하고 차별하는 행태들을 주변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종 차별은 한국의 어두운 면을 만들며 많은 우려를 자아냅니다. 이러한 소식과는 반대로 충주 시민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서로 어우러져 있는 모습은 오랜 시간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지내오며 만들어진 높은 시민 의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체적으로 충주 세계무술축제에 대한 저의 평가는 깨끗한 축제였습니다. 축제는 바가지 거품이 없는 정직한 가격으로 사람들을 맞으며, 낮보다는 밤에 더 볼거리가 많은 축제였습니다. 그러나 세계무술축제라고는 하지만 다른 나라의 무술을 볼 수 없었다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축제 일정을 보니까 여러 대회도 있었지만 9일간의 축제이기 때문에 정작 볼 수 있는 무술은 몇 가지 되지 않았습니다. 세계무술을 볼 수 있다는 기대와는 달리 전통무예와 태권도 공연밖에 없어서 세계의 무술을 보고 왔다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재미있고 유익한 축제였습니다. 혹시 세계무술축제를 간다면 한낮보다는 늦은 오후에 행사장에 도착해야 제대로 보고 즐길 수 있다고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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